바람난 수도... 서울은 거대한 홍등가?
주간조선 1999. 11. 18.
지난 9월 서울의 대표적 홍등가인 성북구 하월곡동 속칭 ‘미아리 텍사스’ 단속에 나선 서울경찰청 형사과 직원들은 깜짝 놀랐다. 한 업소에서 10대 소녀 접대부들과 윤락행위를 벌이던 사람들이 일본인 관광객이었기 때문이다. 이들 14명은 택시기사의 안내를 받아 단체로 ‘영계 관광’을 즐겼던 것. 서울의 치부인 대표적 윤락가가 관광명소(?)로 등장한 셈이다. 지난 7월 주택가인 서초구 반포동 N이발소에선 음란서비스를 받던 미국인(39)이 현장에서 적발됐다. 이 미국인은 벌거벗은 채 여자 면도사로부터 서비스를 받고 있었다는 것이다. 이태원 부근에서나 서성댈 것으로 예상됐던 서양인들까지 버젓이 주택가 퇴폐 이발소에 진출한 데 대해 단속 경관도 입을 다물지 못했다. IMF의 영향으로 한때 주춤했던 서울의 섹스산업이 올 들어 지속적인 상승곡선을 타고 있다.
특정 유흥가에 국한됐던 매춘이 이제 한정된 구역을 벗어나 오피스 타운, 주택가 등으로 종횡무진 확산되고 있다. 또 휴대전화, 인터넷 등 첨단 통신장비의 도움으로 ‘출장 매춘’이 활성화함에 따라 매춘이 생활저변으로 급속히 번지고 있다. 작년 10월 국무총리 산하 청소년보호위원회가 꼽은 서울의 대표적 유흥가는 25곳. 미요리 텍사스, 청량리 588 등 기존 윤락가에서부터 회현동, 화곡동 등의 여관촌, 그리고 신천역 주변, 천호동 텍사스, 신촌역 주변 등 일반 유흥가, 강남역 타워레코드 주변, 신사동 압구정 등과 같은 고급 유흥가가 포함되어 있다. 업종으로는 사창가, 룸살롱, 단란주점, 안마시술소, 여관 등이 대표적인 매춘 제공업소로 지적됐다.
하지만 ‘가출 청소녀와 매춘 여성에게 열린 전화’를 운영하는 한국교회여성연합회 정현숙 간사는 “IMF 이전까지만 해도 섹스산업은 이들 밀집구역을 중심으로 이루어져 왔지만, 요즘은 매춘의 형태가 다양해져 마음만 먹으면 서울시내 어디서나 손쉽게 섹스를 살 수 있게 됐다”라고 지적했다. 강력한 단속으로 한동안 자취를 감췄던 퇴폐 이발소가 다시 활기를 띠고 있는가 하면 불법 증기탕, 출장 마사지 등의 신종 윤락이 주택가로 파고들고 있다. 또 직업소개소, 결혼상담소, 이벤트회사, 속칭 ‘보도방’ 등을 매개로 한 ‘소개 매춘’은 굳이 섹스 구매자가 유흥가를 찾지 않아도 되는 편리함까지 제공하고 있다는 것이다. 지난 11월 초 서울 세종문화회관 뒤편 한 이발소를 찾은 회사원 박모(35)씨는 찜찜한 기분을 떨칠 수 없었다.
자연스레 퇴폐 서비스를 제공하던 여자 면도사가 “우리 가게를 찾는 사람들 중에는 공무원들도 적지 않다”며 은근히 자랑(?)을 늘어놓았기 때문. 그는 “퇴폐 이발소가 정부종합청사 인근에까지 파고든 현실에 착잡한 느낌이었다”라고 말했다. 서울경찰청 방범지도과 문종석 계장은 “단속 나갈 때마다 밀실에 목욕시설까지 갖춘 퇴폐 이발소가 곳곳에서 적발된다”며 “이곳에서 외국인 손님이 발견되는 경우도 종종 본다”라고 말했다. 동대문구 장안동 등 일부 지역의 퇴폐 이발소에는 술집 앞에서나 보았던 삐끼(호객꾼)까지 등장했다. 요즘 단속경찰의 골칫거리는 주택가에 파고든 불법 증기탕. 기존 증기탕에서 여성들의 목욕서비스가 금지됨에 따라 이곳에서 일하던 여성들이 주택가에 불법으로 증기탕 시설을 갖추고 영업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는 것이다.
이들은 음성적으로 일대일 호객행위를 하기 때문에 적발하기도 쉽지 않다. 출장 마사지의 경우 주택가 승용차 등에 ‘자택, 사무실 출장 마사지 가능’이라고 적힌 명함 쪽지를 끼워 놓은 뒤 전화연락이 오면 여관 등으로 출장, 윤락행위를 하기 때문에 단속이 힘든 것으로 알려졌다. 서울시내 섹스산업의 확산을 주도하는 것은 뭐니 해도 ‘소개 매춘’. 어디서나 전화 한 통으로 매춘여성을 자신이 원하는 장소로 부를 수 있기 때문이다. 사업을 하는 오모(40)씨는 지난 10월 말 야릇한 내용의 이메일 한통을 받았다. ‘깊어가는 가을, 쓸쓸함을 느끼지 않으십니까’로 시작되는 이 편지는 좋은 만남을 주선한다는 것이었다. 호기심이 발동한 오 씨가 적혀 있는 휴대전화 번호로 전화를 걸자 30대로 짐작되는 남성이 “회비 10만 원을 입금하면 3개월 동안 손님이 원하는 타입의 여성을 원하는 장소로 보내 주겠다”라고 말했다.
“성관계도 가능하냐”라고 묻자 그는 “사례비가 15만 원이다”라고 대답했다. 이 같은 매춘 소개업소들은 주택가에 스티커나 명함 형태의 광고물을 무차별 살포, 불법 윤락 알선을 공공연히 하고 있다. 직장인의 원룸 빌라와 오피스텔이 밀집해 있는 서울 강남역과 역삼동 등 주택가 주차장에는 ‘은밀한 만남, 짜릿한 느낌!’ ‘전화하면 그날로 멋진 여성을 소개해 드립니다’ 등의 광고물이 광범위하게 살포되고 있는 실정이다. 역삼동 한 아파트에 사는 김 모(47․의사)씨는 “출근길에 승용차 문틈과 윈도 브러시에 꽂혀 있는 이런 광고물들을 하루 서너 장씩 치워야 한다”라고 말했다. 이들 업체는 인터넷 사이트에 노골적인 광고를 게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 같은 속칭 ‘보도방’에 대해 지난 7월 서울지검 소년부는 “서울지역에만 보도방 업체가 3000여 개나 되고 각각 5~20명가량의 접대부를 고용하고 있다”라고 밝혔다.
검찰에 적발된 보도방 접대부 중에는 직업적인 매춘여성 외에 여대생, 주부, 간호사, 유치원 보모, 회사원 등이 포함돼 있어 충격을 던졌다. 청소년보호위원회 금보연 사무관은 “휴대전화, 호출기, 인터넷 등 통신수단의 발달로 매춘 소개업소들이 익명성과 기동성을 확보함에 따라 잇따른 단속에도 불구하고 확산될 위험성이 높다”라고 지적했다. 최근에는 직업소개소, 결혼상담소 등에서도 이 같은 매춘 소개 영업을 하다 적발되는 사례가 생겨나고 있다는 것이다. 전화방이나 폰팅업체를 통한 성거래도 일상화하고 있다. 지난 10월 초 신천역 일대 유흥가의 한 남성 전용 전화방을 찾았다는 이모(44․자영업)씨는 한 시간 동안 20대에서 40대에 이르기까지 주부, 회사원 등 6명의 여성과 통화하면서 4명으로부터 “한번 만나자”는 은밀한 유혹을 받았다고 했다.
이후 이들 중 2명은 금품수수를 전제로 한 성관계를 제의했다는 것이다. 섹스산업이 이처럼 기존 유흥가를 벗어나 서울시내 전역으로 확산됨에 따라 기존 유흥가는 고객을 붙잡기 위해 안간힘을 쏟고 있다. 일부 단란주점에서는 나체쇼가 스스럼없이 행해지는 등 서비스가 더욱 음란화, 노골화하고 있다. 최근 세종문화회관 뒤편 한 단란주점을 찾은 임모(36․회사원)씨는 그동안 말로만 들었던 ‘홀딱쇼’를 구경했다고 했다. 일행 5명과 함께 양주 두병을 비우자 동석했던 접대부가 수고비를 주면 홀딱쇼를 보여주겠다고 제의, 팬티까지 벗어던진 채 테이블 위로 올라가 음악에 맞춰 술을 몸에 부으며 요란한 춤을 추었다는 것. 강남에서 단란주점을 운영하는 최모(38․여)씨는 “한때 이 같은 홀딱쇼는 북창동 일대에서만 유행했지만 지금은 여의도, 종로, 장안동, 세종문화회관 뒤편 등 대부분의 지역으로 확산되고 있다”라고 말했다.
또 강남구 논현동의 E술집은 무희로 하여금 완전나체로 성행위를 묘사하는 ‘하와이안 쇼’를 손님들 앞에서 공연하게 하다 경찰에 적발됐다. 신촌역 부근, 종로 등 일부 지역 룸살롱과 단란주점에선 접대부가 상반신을 모두 벗고 팬티만 입은 채 술시중을 드는 곳도 생겨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일부 업소들은 술값을 깎아준다는 할인권을 발행, 거리에서 나눠 주기도 한다. 이처럼 매춘과 연결된 향락업소들의 규모는 지난 6월 말 기준 서울시내 유흥․단란주점 업소수만 8000여 곳으로 파악됐을 뿐 가늠하기도 힘든 실정이다. 서울지검 강력부는 ‘미아리 텍사스’ 일대 윤락업소의 연간 매출액이 1000억 원대에 이를 것으로 추정해 눈길을 모으기도 했다. 그럼에도 전문가들은 “수치화할 수 없지만 그 규모가 계속 커지고 있는 것만은 분명한 것 같다”라고 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