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카테고리 없음

영어

728x90
반응형

“21세기 지구촌엔 영어가 공용어

 

주간조선 1999. 10. 28. 

 

독일의 <철혈 재상> 비스마르크는 말년에 한 언론인으로부터 <금세기 가장 결정적인 사실>이 무엇이냐는 질문을 받았다. 그의 대답은 이랬다. 북미인들이 영어를 사용한다는 것이다.앵글로색슨족의 한 방언으로 출발한 영어가 21세기를 코앞에 둔 지금 <지구촌 언어>로 맹위를 떨치고 있다. 대영제국의 왕성한 식민지 개척으로 성장 기반을 닦은 영어는 비스마르크의 예측대로 20세기 중반 아메리카의 부흥을 타고 지구촌을 하나로 묶어내고 있다. 1930년대 2억 명에 불과하던 영어 사용인구는 현재 최소 14억 명으로 불어났다. 지구촌에서 매 순간 영어로 대화를 나누는 사람들의 70%는 영어를 모국어로 사용하지 않는 인구라는 통계가 있을 정도이다. 인터넷 등 컴퓨터 통신기술의 폭발적인 발달은 21세기에 영어를 더욱 극적인 지위로 밀어 올릴 것이라는 예측이 무성하다. 10여 년 전 컴퓨터 관련 언어의 80%를 점유하면서 사이버 세계의 단일 언어로 떠오른 영어는 현재 인터넷 웹사이트의 90%, 지구촌에서 오가는 이메일의 90%<점령>하고 있다.

 

컴퓨터가 영어로 얘기해요.영어의 이방지대인 중앙아시아 소국 키르기스스탄의 아카예프 대통령의 어린 아들이 밝힌 소박한 학습 동기처럼, 영어는 이제 지적 탐구의 대상이 아니라 생활의 편익을 위한 필수 도구가 됐다. 영어의 위력이 극적으로 나타나고 있는 곳은 다름 아닌 유럽이다. 단일통화를 만들어냄으로써 정치경제적 통합을 향해 큰 걸음을 내디딘 유럽은 정작 단일 의사소통 수단에 대해서는 딜레마에 빠져 있다. 현재 유럽연합(EU)은 회원국 11개국의 언어를 모두 공식 언어로 인정하고 있다. 유럽의회에서는 626명의 의원들이 제각각 모국어로 얘기하면 동시 통역사들이 10종의 언어로 통역한다. 유럽의회에는 200명의 동시통역사와 500명의 번역사들이 일하고 있는데 이는 전체 직원의 15%에 이르는 숫자다. 하지만 유럽의회의 이러한 모습은 영어의 위력 앞에서 모국어를 지키기 위한 몸부림으로 비치는 게 사실이다. 이미 EU 집행기구들 상당수가 영어를 실무 언어로 사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독일 프랑크푸르트에 있는 유럽 중앙은행의 경우 직원 중단 10%만이 영국인이지만, 실무 언어는 영어이고 이사회도 영어로 진행된다. 또 지난 50년대 모두 프랑스어로 발간되던 EU 집행부의 공식 문서중 42%가 현재 영어로 기록된다. 문서의 40%인 프랑스어, 6%인 독일어에 비해 영어가 유럽연합의 공식 기록 언어가 되고 있는 셈이다. EU 각국을 연결하는 비즈니스 네트워크도 영어로 서비스되고 있다. 유럽에서 영어는 공용어의 지위에 올라서고 있다. 지금도 유럽인 3명 중1명은 영어로 의사소통이 가능한 수준이다. 자국어 사용자를 제외하고, 15%의 유럽인들이 구사하는 프랑스어나 독일어(9%) 스페인어(5%)에 비해 이미 우월한 지위를 얻고 있다. 더욱이 영어의 지위는 젊은 세대가 성장하면서 더욱 탄탄해질 전망이다. 흔재 55세 이상 유럽인 중 3분의 정도가 제2 외국어를 구사하며 이중 15%가 영어지만, 15세에서 24세의 유럽인의 경우는 70%가 제2외국어를 구사하고 이중 절반이 영어다. 현재 유럽의 학교에서 가르치는 제2 외국어 중 영어는 60%를 차지하고 있다. 이는 프랑스어(30.4%) 독일어(5.2%) 스페인어(3.5%)에 비해 압도적이다.

 

작년에 스위스 의회는 6세 이상 어린이들에게 의무적으로 영어를 가르쳐야 한다는 법안을 논란 끝에 통과시키기도 했다. 영어가 급속히 확산되면서 프랑스어 독일어 등 과거 유럽 언어의 맹주들은 힘겨운 저항을 하고 있다. 지난해 초 독일에서는 시끌벅적한 소동이 벌어졌다. 최대 통신회사인 도이치 텔레콤이 <ortsgesprache(시내통화)> <ferngesprache(시외통화)>라는 광고 간판을 <city call> <german call>로 바꾸었기 때문이다. 독일 최고의 어문정책기관인 <독일어 연구원(Deutsche Institute)>이 항의했지만, 도이치 텔레콤 측은 요지부동이었다. 이 사건을 두고 독일 시사주간지 슈피겔은 <시대정신이 영어를 얘기하고 있다>고 썼다. 현재 독일어를 모국어로 사용하는 유럽 8개국은 지난해 8월부터 오는 2005년까지를 목표로 독일어의 까다로운 문법규칙과 철자법을 바꾸는 계획을 추진 중인데, 이 역시 영어의 확산에 저항하려는 몸부림에 다름 아니다.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언어>로 자부하는 프랑스어도 악전고투 중이다.

 

프랑스 정부는 얼마 전 홈페이지에 영어로 교과목을 소개한 몇몇 대학을 법원에 고소하는 조치를 취했다. 모든 광고는 모국어로 기재돼야 한다는 법을 어겼다는 이유였다. 하지만 이 고소는 법원에 의해 취하됐다. 프랑스 정부는 <e-mail><mel>로 표기하는 등 물밀듯이 쏟아져 들어오는 컴퓨터 관련 영어를 자국어로 번역하는 데 안간힘을 쓰고 있다. 프랑스 법무상 자크 뚜봉은 이러한 현실을 두고 우리가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영어의 식민지가 된다며 위기감을 표시하기도 했다. 하지만 프랑스 컴퓨터 산업 종사자들은 그를 <Mr. Allgood(이름을 영어식으로 풀이한 것)>이라고 부르며 조롱하고 있다. 현실감이 없다는 이유다. 루이뷔통 상표로 유명한 프랑스 최대 사치품 회사인 LVMH사의 사내 공식어가 영어인 현실을 인정하라는 것이다. 사실 프랑스 정부도 해외 학술회의에서 영어를 사용한다는 조건으로 학자들에게 연구비를 지원하는 등 일부 분야에서는 세계 무대에서 따돌림을 당하지 않기 위해 영어 지원책을 펴는 게 사실이다.

 

지난 30년간 영어를 유창하게 구사하는 프랑스인들이 2배로 늘었다는 통계도 있다. 영어의 확산 현상은 범 지구적이다. 런던의 영국문화원(British Council)에 따르면, 러시아와 동유럽에서 영어를 배우고 있는 인구만 해도 5000만 명이 넘는다. 특히 구 소련 몰락 이후 동유럽에서 영어 학습은 붐을 이루고 있다. 예컨대 폴란드의 경우 10년 안에 수천 명의 영어교사를 배출해야 할 정도로 영어는 수요 과잉을 보이고 있다. 헝가리에서는 구 소련 몰락 이후 3000명의 러시아어 교사가 영어로 <전공>을 바꿨다. 영어학원마다 장사진을 이루는 우리와 마찬가지로 아시아에서도 영어 학습 붐은 공통적인 현상이다. 10여 년 전부터 초등학교 4학년 이상을 대상으로 의무 영어교육을 시키고 있는 중국의 경우 현재 영어 구사 인구가 4000만 명 정도로 추산되고 있다. 영어는 중국어에 이어 세계 2위의 언어다. 그러나 사용지역 범위로 따지면 단연 1위다. 중국어는 10억 이상의 인구가 쓰고 있지만, 영어를 모국어와 공영어로 쓰는 나라는 전 세계 75개국 수준이다.

 

영어는 약 3억 8000만 명 정도가 모국어로 쓰고 있으며, 모국어 사용자 외에 영어를 공용어(second language)로 쓰는 인구가 3억 7000만 명, 외국어로 학습하는 인구는 7억 5000만 명 정도로 추산되고 있다. 세계 영어 인구는 앞으로 급증할 전망이다. 지난 97년 영국문화원이 <영어 2000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펴낸 <영어의 미래(The Future of English)>라는 보고서에 따르면, 오는 2050년 영어를 모국어로 사용하는 인구는 대략 5억 명 정도로 추산되고 있다. 또 영어를 공용어로 사용하는 인구도 6억 명 선으로 급증할 것으로 예측돼 전체로는 10억 명을 넘어설 전망이다. 또 영어 학습자는 영어 공용어권으로, 영어 공용어권 인구는 영어 모국어권으로 이동할 것이라는 분석이다. 중요한 점은 2020년 무렵부터 영어를 모국어로 사용하는 사람보다 영어를 공용어로 사용하는 사람들의 숫자가 더 많아진다는 사실.

 

<영어의 미래>는 아르헨티나 벨기에 코스타리카 덴마크 에티오피아 온두라스 레바논 미얀마 네팔 네덜란드 니카라과 노르웨이 파나마 소말리아 수단 수리남 스웨덴 스위스 아랍 에미리트 연방 등 현재 영어를 외국어로 학습하는 19개국이 영어 공영어권으로 이동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결국 21세기에는 <네이티브 스피커>들이 소수로 몰리고, 인도 파키스탄 나이지리아 필리핀 등 기존의 영어 공용 국가와 이들 신흥 영어 공용 국가들이 영어의 미래를 주도할 것이라는 전망이다. <세계어로서의 영어>의 저자 데이비드 크리스탈이 한 언어가 국제어가 되는 가장 중요한 요인은 군사력이라고 갈파했지만, 사실 영어의 확산은 경제적인 요인이 가장 큰 원인이 되고 있다는 지적이다. 현재 영어 사용 국가들은 전 세계 국가총생산의 40%를 점유하고 있을 만큼 막강한 경제력을 과시하고 있다.

 

<영어의 미래>가 영국 <English Company>의 분석 결과를 인용한 바에 따르면, 각국의 국내총생산(GDP)을 언어권별로 구분한 언어총생산(GLP)은 영어가 7조 8150억 달러로 2위인 일본어(4조 2400억 달러)를 크게 앞질렀다. 또 언어총생산 중 무역부문이 차지하는 액수도 영어가 2조 3380억 달러로 독어(1조 1196억 달러) 프랑스어(8030억 달러) 등 유럽 선진국 언어보다 훨씬 많았다. 컴퓨터 등 첨단 기술 분야는 말할 것도 없고, 학술 외교 등 각 전문 분야에서도 영어는 세계 1등 언어로서의 위치를 확고히 굳히고 있다. <영어의 미래>에 따르면, 매년 전 세계에서 출간되는 서적 중 28%가 영어를 쓰고 있고, 중국어(13.3%) 독일어(11.8%) 등이 그 뒤를 따르고 있다. 네덜란드 스웨덴 등 유럽 일부 국가는 영어로 출간되는 서적의 숫자가 자국어 서적을 능가할 정도다. 과거 불어가 지배했던 외교 분야도 이제 상황이 바뀌었다. 데이비드 크리스탈에 따르면, 국제기구의 85%가 실무 언어 중 하나로 영어를 사용한다. 반면 국제기구 중 49%만이 프랑스어를 쓰고 있고, 아랍어 스페인어 독일어 등이 각각 10% 미만으로 쓰인다고 한다.

 

<영어의 미래>가 인구와 경제적 파워 등 제반 요소 등을 고려해 주요 언어의 <세계적 영향력(global influence)>을 분석한 바에 따르면, 영어를 100으로 할 때 영향력은 독일어가 42, 프랑스어가 33, 일본어가 32, 스페인어가 31, 중국어가 22 순이었다. 영어의 지구적 확산이라는 현상 이면에는 소수 언어의 소멸이라는 서글픈 현실도 자리 잡고 있는 게 사실이다. 미국 워싱턴에 있는 세계미래학회(WFS)가 지난 97년 발표한 <21세기 전망 톱 10>에서 1위를 차지한 항목은 바로 현존 세계 언어의 90%가 소멸한다는 것이었다. 앞으로 첨단 정보기술이 발달해 인간 몸속에 내장하는 초소형 컴퓨터 칩이 개발되면 <실용성>이라는 명분을 쫓아 인간의 언어 능력이 영어로 단일화된다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다소 공상과학적인 전망을 빌리지 않더라도, 현재 전 세계 6000여 개의 토착 언어 중 3분의 1100년 안에 소멸될 것이라는 게 언어학자들의 전망이다.

호주 대륙에서 식민통치가 시작된 18세기말 250여 개에 이르던 토착 언어가 지금은 25개 밖에 남지 않은 현실이 이러한 전망을 가능하게 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영어는 현재의 지배적인 영향력을 더욱 확대해 과연 21세기 지구촌 공용어(Lingua Franca)가 될 수 있을 것인가. 이와 관련, 데이비드 크리스탈은 인류 언어역사에서 우리는 결정적 순간으로 접근하고 있다. 세계어는 오직 한 번만 생겨날 가능성이 있고 그것은 영어가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이러한 전망을 주저케 하는 요소들도 있다. 지구촌에 불어닥치는 세계화 바람이 지역주의 득세, 경제 블록화라는 현상도 동반하고 있기 때문이다. 역사상 토착언어 보존 운동이 가장 활발한 때가 바로 20세기말이라는 역설도 성립하고 있다. 때문에 영어의 미래21세기 영어의 지위에 대해 신중한 결론을 내리고 있다. 앞으로 50년간 지구촌 언어로서 영어의 영향력은 계속될 것으로 보이지만, 지역 맹주 언어들과 그 지위를 분점 할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예컨대 중국어 힌디어 스페인어 아랍어 등이 현재의 영어 프랑스어와 같은 세계적인 대형 언어로 성장하고, 독일어 불어 등 기존의 영향력이 큰 언어들은 위상이 추락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이와 함께 현재 6000여 개의 토착 언어들이 오는 2050년이면 1000개 수준으로 줄어들 것이라는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