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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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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따 된 중앙일보

 

주간동아 1999. 10. 21. 

 

10월 2일 중앙일보 홍석현사장이 탈세혐의로 구속된 이후 중앙일보가 언론탄압주장을 거세게 펼쳤다. 중앙일보는 10월 2일 자부터 ‘국민의 정부 언론탄압 실상을 밝힌다라는 제목의 시리즈를 5회에 걸쳐 내보내고 박지원 문화관광부장관 박준영 청와대대변인 등 현 정부의 핵심인사들이 중앙일보의 편집과 인사에 간섭한 사례를 연일 폭로했다. 중앙일보가 이판사판식 폭로전에 나선 것은 무엇보다도 홍사장 구속이 현 정부에 비판적인 태도를 보여온 중앙일보에 대한 보복이자 탄압이라는 점을 부각하려는 데 있는 듯했다. 그러나 중앙일보의 정부 공격은 의도와는 달리 성공적이지 못했던 것으로 보인다.

 

시민단체나 여론의 호응을 이끌어내지 못했고 오히려 범법을 저지른 홍사장 감싸기가 아니냐는 지적까지 나왔다. 삼성그룹으로부터 분리된 이후 독립언론을 자처해 온 중앙일보가 권력의 요구에 따라 스스로 기사를 뜯어고치고 삭제했다는 자가당착적인 치부를 그대로 드러냈을 뿐이라는 비판도 적지 않다. 미디어오늘이 10월 5일 한길리서치에 긴급 의뢰한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중앙일보의 태도에 대한 여론의 반응이 매우 냉담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조사 결과에 따르면 홍사장의 구속에 대해 응답자의 64.1%아주 잘한 조치(21.1%)’ 또는 잘한 조치(43%)’라고 응답한 것으로 나타났다. 또 홍사장 구속의 성격에 대해서는 언론문제와 상관없는 탈세에 대한 조치라는 인식이 53.3%로 가장 많았고 언론탄압이라고 답한 사람은 20.5%였다. 중앙일보의 언론탄압주장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대해서는 동의하지 않는다’(전혀 동의 안 함 18.3%, 별로 동의안 함 29.8%)는 응답이 48.1%동의한다’(어느 정도 동의 36.2%, 전적으로 동의 8.2%)는 응답 42.6% 보다 많았다.

 

언론탄압과 무관” 53%

시민단체의 반응은 중앙일보의 주장대로 정권의 핵심인사가 언론에 간섭한 것이 사실이라면 진상을 가려 문책해야 한다는 점을 분명히 하면서도 홍사장 구속과 언론탄압은 별개의 문제라는 시각이 주류를 이뤘다. 참여연대는 탈세범에 대한 법집행을 놓고 언론탄압 운운하는 것은 온당치 않다는 성명을 냈고 경실련은 부패와 비리의 당사자가 재벌총수든 정치인이든 언론사 사장이든 엄정하게 처리하는 것이 법치주의의 원리라고 밝혔다. 특히 중앙일보와 정부가 한창 극한 대결을 벌이고 있던 시점인 10월 5일 참여연대가 내놓은 성명의 한 부분은 중앙일보로서는 뼈아픈 대목이 아닐 수 없었다.

 

참여연대는 이 성명에서 중앙일보가 진정으로 언론자유를 수호할 의지가 있었다면 왜 그 당시에 실상을 공개하지 않았는지 묻고 싶다언론 탄압을 주장하기에 앞서 사주의 탈세행위와 그동안 언론자유를 지켜 오지 못한 과거에 대한 진솔한 사과와 반성이 선행돼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나 최근 중앙일보의 지면 어디에서도 부끄러운 과거에 대한 철저한 자기반성의 모습은 찾아보기 어려웠다. 중앙일보는 특히 홍사장은 보광그룹의 대주주일 뿐 경영에 전혀 간여하지 않았다고 주장하고 있는데 보광 사무실에서 압수된 서류들을 보면 이 주장도 설득력을 잃고 있다. 여기에는 그룹의 최고의사결정권자에게 올리는 300페이지 분량의 보고서 책자 3권이 들어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994월까지의 월말 정기보고서와 수시보고서로 이루어진 이 서류철에는 홍사장과 홍사장 어머니의 자금관리 등에 관한 중요의사결정에 필요한 자료들이 담겨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중앙일보주식매매, 한남동집 건축문제 등과 관련해 어떤 것을 팔아서 어떤 주식을 사고, 어디서 돈을 빌리고 어떻게 갚고 하는지 등의 자료가 들어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중앙일보 사태는 10월 6일 국민회의 이영일대변인이 중앙일보에 보내는 공개질의서에서 97년 당시 중앙일보가 이회창후보를 지지한 것은 이회창 대통령-홍석현 국무총리밀약이 있었기 때문이고 실제로 그러한 문건까지 만들었다는 주장을 펴면서 2라운드로 접어든 양상이다.

 

국민회의의 한 당직자는 국세청이 보광 사무실 금고에서 밀약설의 근거가 되는 문건을 발견해 확보하고 있는 것으로 안다당에서 그 문건을 입수하지는 못했지만 공개질의서를 작성할 때 나름대로 확인할 부분은 확인해 봤다”라고 밝혔다. 이문건은 “대통령 이회창, 국무총리 홍석현, ××장관 ○○○, △△장관 ○○○`식으로 돼있는 조각명단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국세청 측은 이에 대해 과장됐다고만 언급할 뿐 자세한 설명은 피하고 있다. 중앙일보는 10월 7일 자 지면을 통해 누가 대통령이 되면 누구는 국무총리가 되기로 밀약했다는 대목에 아연실색하지 않을 수 없다. 전혀 근거도 없는 사실이며 이는 중대한 명예훼손이라고 반박했다.

 

밀약설의 또 다른 당사자인 한나라당 역시 국민회의는 유언비어 제조창인가”라고 일축하면서 국민회의 이만섭 총재권한대행과 이영일대변인을 고발키로 해 여야 간 법정공방으로까지 비화할 조짐이다. 그러나 중앙일보가 10월 7일 이후 현 정부에 대한 공격을 다소 누그러뜨리는 태도를 보이면서 한나라당 내부에서는 이번 사태에 대한 대응전략을 수정해야 한다는 의견이 대두되는 등 혼란에 빠진 모습이다. 밀약설이 사실 여부를 떠나 시중에 널리 퍼지면서 수세에 몰리고 있다는 판단 때문인 듯하다. 당내 일각에서 이회창총재를 비롯한 당 지도부가 중앙일보를 적극 두둔하고 나선 것은 과거 대선 때 도움을 받은 데 대한 보은(報恩) 차원의 것이 아니냐는 시각까지 대두되고 있다.

 

97 대선 때도 편파보도 구설수

어쨌든 대선 당시 이회창후보와 중앙일보 홍사장간에 어떤 밀약이 있었는지는 확인되지 않고 있다. 그러나 97년 대통령선거 당시 중앙일보의 보도태도는 매우 편파적이었다는 비난을 면치 못하고 있다. 전국언론노동조합연맹이 발행하는 언론비평지인 주간 미디어오늘 97년 12월 10일 자는 당시 중앙일보의 대선보도를 집중분석하면서 중앙일보는 10월 들어 칼럼을 통해 반(反) DJP연합 구축을 주장했고 며칠 뒤에는 다시 칼럼을 통해 반 DJP연합의 구심으로 이회창후보가 어떠냐는 제안까지 내놓았다”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미디어오늘은 또 중앙일보의 친이회창경향은 ‘반김대중-반이인제’ 보도로 구체화됐다”라고 지적했었다. 중앙일보는 이번 사태의 와중에 국제언론인협회(IPI)에 보낸 서한에서 특정후보 편들기에 나섰다는 사실을 스스로 인정하기도 했다. 중앙일보는 9월 30일 IPI에 보낸 서한에서 “9712월 대선 당시 홍석현 씨가 사장 겸 발행인으로 있는 중앙일보는 김대중 씨에게 패배한 이회창후보를 지지했다”라고 밝힌 것이다. 이러한 이유로 과연 중앙일보가 언론탄압을 외치고 언론자유를 주장할 자격이 있는가라는 지적도 나온다. 진정한 언론자유의 대변자로 나서기 위해서는 우선 과거의 편파보도 시비에 대해 뼈를 깎는 자기반성이 전제돼야 한다는 얘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