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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풍보상 500

 

국민일보 1999. 10. 1. 

 

농민 우롱하는 재해복구 행정

태풍 등 자연재해로 막대한 피해를 본 농민들에게 자치단체가 법에 명시돼 있다는 이유를 들어 병충해 방제비 명목으로 불과 5백~1천 원의 복구지원금을 지급키로 해 농민들의 반발을 사는 등 수해복구 지원 행정이 난맥상을 드러내고 있다. 특히 농민들은 버스비도 안 되는 복구지원금을 타러 행정기관에 가야 하며 돈을 받지 않을 경우에는 수령포기 각서까지 제출토록 돼 있어 오히려 번거로움을 안겨주고 있다. 더욱이 행정관서는 쥐꼬리만 한 지원금 지급을 위해 현지조사, 상부기관보고, 해당 농민 통보 등을 거쳐야 돼 행정력이 낭비되고 있는 실정이다. 경남 거창군 남하면 윤 모 씨(61)는 지난 8월 태풍 올가의 영향으로 사과나무 10그루에서 과일이 모두 떨어져 피해 신고를 한 결과 최근 군으로부터 5백 원의 농약지원금을 수령해 가라는 통지를 받고 우롱당한 느낌이었다.

 

윤 씨가 본 피해는 사과나무 한 그루에 3만여 원으로 모두 30여만 원이나, 5백 원을 타가라는 말에 허탈감과 함께 절로 분통이 터졌다. 거창읍 대동리 이 모 씨(46)도 1천여 평의 과수원 사과가 모두 떨어져 1천3백여만 원의 피해가 났으나 농약값으로 1만 7천 원을 타가라는 연락을 받고 허탈감에 빠져 있다. 자연재해대책법에 홍수 등 자연재해로 논 밭 과수원의 침수 피해가 났을 경우 병충해 방제비로 당 4만 9천9백40원을 지급하고, 작물이 손상된 경우엔 다른 작물을 심는 비용 명목으로 당 1백70만 원을 지원토록 규정돼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수해를 당한 농민들이 대부분 1천 평 이하의 영세농이어서 평당 17원대인 농약대 등을 합쳐 1만 원대 미만의 지원비를 받을 수밖에 없으며 이 같은 농가가 군당 수백 가구에 이르는 것으로 파악돼 전국적으로는 그 수가 적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태풍으로 경남 거창군내에서만 19백여 과수농가가 피해를 보았으나 이 중농약지원액이 1천 원도 안 되는 농가가 3백 가구가 넘고, 함양군도 피해 농가가 1천7백여 가구에 이르지만 지원비는 모두 4천만 원 미만인 것으로 집계됐다. 현실성 없는 이 같은 보상액도 문제지만 진작 고쳐졌어야 할 우리의 행정 행태가 아직도 형식에 치우쳐 5백 원의 지원금 때문에 공무원과 농민이 들이는 노력이 그것보다 훨씬 많이 먹힌다는 점이다. 풍수해를 본 농민들은 지원을 받기 위해 먼저 해당 자치단체에 피해 사실을 구두나 서면으로 신고해야 하며 이 신고에 따라 해당 공무원이 현장 실사를 나와 보상액을 산정하는 절차를 거쳐야 한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실제 피해를 본 농민들은 공무원들에게 피해현장을 생생히 보여주기 위해 복구를 미루는 경우도 있다. 윤 씨는 “30여만 원의 과수 피해가 났는데 고작 5백 원을 받기 위해 군청에 피해신고를 하고 담당공무원에게 피해에 대해 설명한 것을 생각하면 분통이 터져 잠이 오지 않는다”라고 말했다. 거창군 담당자는 아무리 작은 피해라도 농민들이 신고해 오면 거부할 명분이 없기 때문에 소액 지원의 경우가 발생한다”라고 밝혔다. 행자부 관계자는 이에 대해 미국이나 일본처럼 민간과 국가가 함께 재원을 마련하는 홍수보험 등을 개발, 재해민들에게 실질적인 도움이 될 수 있는 제도를 이른 시일 내 도입하는 것이 최선의 해결책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