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댕긴 ‘흡연 피해’ 공방
경향신문 1999. 9. 6.
폐암말기 환자 국가․담배공사 상대 국내 첫 손배소송
담배를 오래 피운 폐암 말기 환자가 국가와 담배인삼공사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다. 이는 담배제조회사를 상대로 한 손해배상 청구 소송이 전 세계적으로 잇따르고 있는 가운데 국내에선 처음 일어난 것으로 비상한 관심을 끌고 있다. 36여 년간 외항선원을 지낸 김 모 씨(56․부산)는 5일 『중독성이 있는 담배를 장기간 피우는 바람에 폐암에 걸렸다』며 서울지법에 1억 원의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냈다. 김 씨는 이날 최재천 변호사를 통해 제출한 소장에서『스무 살 때인 63년부터 하루에 1~2갑씩 36년간 담배를 피웠다』며 『최근부산의 모 종합병원에서 폐암 4기 판정을 받은 것은 이 같은 흡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최변호사는 『원고는 담배 이외에는 폐질환에 걸릴 만한 어떠한 작업 환경이나 질환에 노출된 적도 없다』고 폐암과 흡연의 인과관계를 설명했다. 원고 측은 국가와 담배인삼공사가 「흡연으로 인한 폐암」에 책임을 져야 하는 근거로 소비자보호법과 국민건강증 진법상 담배의 해악성에 대한 위험성 고지 및 설명 의무 위반을 지적했다. 최변호사는 『담배인삼공사는 76년 「건강을 위하여 지나친 흡연을 삼갑시다」라는 지극히 빈약한 경고문을 부착했고 89년에야 비로소 폐암을 일으킬 수 있다는 문구를 넣기 시작했다』면서 『초기에 담배의 위험성을 제대로만 알렸다면 원고가 흡연 중독에 빠지지 않았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따라서 이번 소송의 쟁점은 국가가 담배의 위험성을 구체적으로 안 시점 및 담배가 갖는 구체적인 독성 및 중독가능성, 인체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사전고지 의무의 성실한 이행 여부 등이다.
이에 대해 최변호사는 『한국담배인삼공사와 국가는 지난 수십 년간 담배의 중독성과 해악성에 대해 충분한 자료를 갖고 있었으나 담배 판매 부진으로 국가의 재정 수입이 줄 것을 우려해 고의적으로 은폐했을 가능성이 높다』고 주장했다. 현재 미국에서는 흡연자 및 가족들이 필립모리스 등 담배회사를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제기해 1심에서 최고 8천만 달러까지 모두 5건의 승소판결을 받아냈다. 또 주정부 차원에서도 피해자들을 대표한 집단소송을 제기해 98년 2천60억 달러라는 천문학적인 금액의 배상 합의를 이끌어내기도 했다. 우리나라는 미국과 담배 제조 및 판매 환경 등이 달라 어떤 결론이 내려질지 속단할 수 없지만 국민건강권을 둘러싸고 흡연자와 비흡연자 사이에 논란을 촉발시킬 전망이다. 또 직․간접흡연 피해자로부터 유사소송이 잇따를 것으로 보여 국가의 피해 구제 방법 및 절차에 관한 법률적 논쟁도 가열될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