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교선 흡연실 마련… 초등생들도 “빠꿈”
국민일보 1999. 8. 30.
고교생으로 보이는 사복 차림의 10대 청소년이 버젓이 담배를 입에 물고 가는 모습이 거리에서 자주 눈에 띈다. 계속 늘고 있는 중고교생들의 흡연. 그러나 이런 모습을 지켜본 어른들이 선뜻 나무라지 못하는 것도 현 세태다. 청소년들의 흡연은 이처럼 사회도덕률의 해이와 함께 급증하는 추세인데도 사회는 물론 학교에서도 실질적으로 학생들의 흡연을 막지 못하고 있다. 중고교생들의 흡연을 막을 수 있는 길은 학교 사회 가정 등 3자가 모두 발 벗고 나서는 길밖에 없다. 위험수위에 이른 청소년들의 흡연 실태와 방지 대책을 살펴본다.
◇ 남학생은 2명 중 1명, 여학생은 4명 중 1명 흡연
남학생은 2명 중 1명꼴로, 여학생은 4명 중 1명꼴로 담배를 피운다는 것이 최근 YMCA가 국내 고교생 1천6백53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흡연율 조사결과다. 이 같은 계산을 고교생 전체에 그대로 대입하는 것은 무리일 수 있지만 분명한 것은 생각보다 많은 수의 남녀 고교생들이 담배를 피운다는 사실이다. 흡연 학생에 대한 처벌도 도시와 농촌 간, 학교장의 대응방침 등에 따라 천차만별이다. 학교에 따라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담배를 피우다 적발된 학생에 대해서는 대개 ‘유기정학’ 1주일 정도의 처벌이 내려진다. 흡연에 대해 비교적 관대한 학교는 ‘근신’ 정도로 그치고, 흡연을 강력히 규제하는 학교는 ‘무기정학’을 내리는 경우도 있다.
서울 강남지역의 S고교는 몇 해 전 학생들의 흡연이 일일이 단속할 수 없을 정도로 크게 늘자 단속 위주에서 벗어나 계도 위주로 바꾸면서 학교 내에‘흡연교실’을 마련, 흡연학생들을 차츰 줄여나가는 방안을 시행했다. 학교 측은 흡연교실을 찾는 학생들에게 흡연의 해악을 깨우치고 점진적으로 담배를 끊도록 지도할 계획이었다. 그러나 학생들은 학교 측의 이런 방침을 믿지 않았다. 단 한 명의 학생도 흡연교실을 찾지 않았던 것이다. 중고교생들이 학교 안팎에서 담배를 공공연하게 피우는 지경에 이르렀다는 사실은 그만큼 교육의 위기를 반증하는 것이다. 수업이 끝나기가 무섭게 화장실을 찾아 담배를 피우는 학생들. 학교 측도 담배를 피우는 학생이 한 두 명도 아니고 이처럼 대량(?)으로 늘어나자 아예 단속을 포기할 지경이다.
교사들은 이제 수업과 수업사이의 휴식시간에 학생들이 사용하는 화장실 근처에 가기를 꺼리고 있다. 피차 어색하기 때문이다. 서울 강남의 K고교는 최근 학교 내 쓰레기장 근처에 비공식 흡연구역을 만들었다. 강남의 아파트단지 내에 위치한 이 학교는 등․하교 시 학교 주변 아파트 계단 등에 숨어서 담배를 피우는 학생들 때문에 주민들의 항의가 빗발치자 궁여지책으로 교내 구석진 곳에 흡연공간을 마련해 준 것이다. 이 학교 교사 최 모 씨(48)는 “교내에서 학생의 흡연을 목격하고도 그냥 지나치는 교사가 많다”라고 말한다. 이는 흡연학생에 대한 교육이나 처벌이 해당 학생과학부모의 반발로 종전처럼 엄하게 다뤄지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란 설명.
◇ 흡연연령 갈수록 낮아져 강력한 제동대책 마련 시급
흡연학생들의 범위도 크게 넓어져 예전에는 문제학생들이 주로 흡연을 했지만 최근에는 이른바 범생이(모범학생)들도 담배를 피우는 경우가 많다고 교사들은 전한다. 불과 몇 해 전까지만 해도 주로 고교생들이 담배를 피웠으나 지금은 중학생, 심지어 초등학생까지 담배를 피우고 있다. 교육부 통계에 따르면 현재 흡연으로 징계를 받는 중고교생 중 중학생은 4분의 1 수준인 24%에 이른다. 흡연학생의 저학년화가 최근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또 징계를 당한 흡연학생 중엔 여학생도 14%나 된다. 담배를 피우는 여학생을 학교 인근의 만화가게나 제과점 등에서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는 것도 최근 나타난 현상이다.
흡연학생이 늘어나는 원인은 우리 사회 도덕률의 실추와 정부의 저가 담배판매 정책 등에 있다. 길거리에서 담배를 피워도 누구 하나 제지하지 않는 세태는 불에 기름을 부은 듯 청소년들의 흡연율 증가를 부채질하고 있다. 청소년기의 흡연행위가 잘못된 일임을 따끔하게 야단치는 ‘어른다운 어른’이 없는 사회는 건강한 사회가 될 수 없다. 실추된 사회 도덕률의 회복이 시급하다. 한국금연운동협의회 김일순 회장은 “우리나라 담뱃값이 외국에 비해 너무 낮은 것도 청소년들의 흡연을 조장하는 한 원인”이라며 “담뱃값을 대폭 올려 용돈이 많지 않은 흡연 청소년들을 부담스럽게 해야 한다”라고 주장한다.
실제로 담배 한 갑의 값이 적어도 2천~3천 원 하는 싱가포르 태국 말레이시아 등의 경우 담배를 피우는 학생들을 찾아보기 힘들다. 담배를 피우고 싶어도 용돈이 궁해 사서 피울 수 없는 처지이기 때문이다. “너 나 없이 피우기 때문에 어쩔 수 없는 일”이라며 교내 흡연을 적발하고도 ‘근신’ 정도의 가벼운 훈계에 그칠 것이 아니라 보다 강력한 처벌에 의한 제재가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싱가포르의 경우 학생이 담배를 피우다 적발되면 곧바로 퇴학처분의 중징계를 내림으로써 거의 0%에 가까운 청소년 흡연율을 실현하고 있다.
◇ 학교 사회 가정 3자가 합심해야 뿌리 뽑을 수 있다
서울 강북지역의 Y고교 2학년 B군(16)은 “PC게임방이나 노래방에 가면 교복을 입고 있어도 쉽게 담배를 내준다”라고 말한다. 청소년보호법에 의해 청소년에게 술 담배를 팔 수 없게 돼있지만 우리 사회 모두가 이를 긍정적으로 수용하지 않는 한 법은 언제까지나 현실로부터 외면당할 게 뻔하다. 더구나 우리의 학교 현실은 흡연의 위험성을 알리는 교육과 금연지도를 위한 프로그램이 초보적인 수준을 넘지 못하고 있다. 일선 중고교에서의 금연교육은 한해 한 두 차례 비디오테이프를 보여주는 정도이며 그나마 일반인을 대상으로 제작된 철 지난 TV프로그램을 녹화해 보여주는 것이 고작이다. 이제 학생흡연은 교사와 학교에만 맡겨두기에는 너무 심각한 지경에 이르렀다. 우리 사회 전체가 청소년흡연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근절대책을 마련해야 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