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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킨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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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발이 왜 이러지 제 멋대로 떠네

 

 뉴스플러스 1999. 8. 19.

 

지난해 겨울, 시골에 사는 한 할아버지(75)가 진료실을 찾았다. 무척 마른 체격에다 피곤에 지친 표정이던 그 할아버지는 사고능력이나 생활능력은 나이에 비해 좋은 편이었지만 심한 손떨림이 큰 문제였다. 다른 사람의 도움 없이는 물 한 컵도 제대로 마시지 못해 모두 쏟을 정도였다. 50대의 남자 P 씨. 오른쪽 팔다리의 과도한 운동강직 때문에 병원을 찾아왔다. 그는 다른 병원에서 파킨슨병으로 진단받고 약물 치료를 해 왔다. 그러나 약물치료 후 떨림증과 강직은 호전됐지만, 팔다리에 전에 없던 이상운동증이 나타나 다시 병원을 찾은 경우였다. 팔과 다리가 본인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춤추는 듯한 이상운동증을 나타낸 것. 약을 끊으면 이런 증상은 호전됐지만, 원래의 떨림증과 강직이 심해져 약을 중단할 수도, 계속 복용할 수도 없는 처지였다.

 

앞의 두 환자와 같이 뇌기능 장애로 이상운동증을 일으키는 대표적인 질환으로는 파킨슨병을 들 수 있다. 교황 요한 바오로 2, 권투 선수 무하마드 알리 등이 앓고 있는 이 병은 대표적인 노인성 신경계질환으로, 인간의 수명 연장에 따라 점차 그 빈도가 늘고 있다. 파킨슨병 외에 수전증, 근(筋) 긴장 이상, 무도병 등 여러 신경계 질환에서도 다양한 종류의 이상운동증이 나타난다. 이상운동증이란 말 그대로 본인의 의지와 관계없이 일어나는 비정상적인 운동을 말한다. 즉 행동할 때 비정상적인 팔다리 혹은 전신의 근긴장 이상을 총칭하는 것이다. 파킨슨병의 경우 손과 발을 떨거나 근육이 굳고 행동이 느린 증상을 보이며, 수전증의 경우는 손발의 떨림만이 두드러진다. 무도병은 춤추는 듯한 심한 운동장애를 보인다. 근육의 수축 이완작용에 이상이 생겨 몸 여기저기가 뒤틀리는 질환도 있다.

 

병으로 목이 뒤틀리는 사경증이 대표적이며 눈꺼풀 팔다리는 물론, 드물게 반신 혹은 전신의 근육이 뒤틀리는 수도 있다. 이상운동증의 최신 치료법의 하나로 고주파를 이용한 응고술이 있다. 20마이크론 정도의 아주 가는 미세전극을 뇌에 삽입해 이상운동의 원인이 되는 병소 부위를 찾아낸 뒤 이 부위를 응고시켜 이상 반응을 소멸시키는 치료법이다. 이 수술법을 통해 앞의 75세 할아버지나 P 씨 모두 손떨림증이 완전히 사라졌고 다른 사람의 도움 없이도 정상적인 생활을 할 수 있게 됐다. 이상운동증의 수술적 치료가 가능하게 된 것은 신경과학의 발전으로 뇌의 기능장애를 유발하는 원인들이 상당 부분 밝혀졌고 획기적인 수술방법이 속속 개발되고 있기 때문이다.

 

파킨슨병은 뇌에서 도파민이라는 인간의 운동 등에 중요한 역할을 하는 신경전달물질을 생산하는 신경세포인 흑질 부위가 파괴되고 이로 인해 도파민이 부족해져 일어난다. 이밖에도 이상운동증이 뇌 안에서 나타나는 과정과 그 회로가 상당 부분 밝혀지고 있다. 그러나 뇌의 기능장애 원인을 확인했다 하더라도 고주파 등의 전기 응고술 만으로는 기능이 지나치게 많아져 생기는 질환들만이 치료가 가능했다. 다시 말하면 이상신경을 전기로 응고시켜 비정상적인 활동을 중지시킬 따름이었다. 뇌의 기능저하 때문에 발생하는 질환은 치료할 엄두조차 내지 못했다하지만 최근에는 연필심 굵기만 한 가는 전극을 기능장애를 유발한 뇌의 미세구조물에 삽입한 뒤, 컴퓨터 프로그램의 자극장치를 이용하여 선택적으로 자극을 줌으로써 그 부위의 기능을 촉진하거나 억제하는 것이 가능하게 됐다.

 

이러한 뇌심부 자극치료의 가장 매력적인 점은 병소 부위 뇌를 응고시키지 않고 필요에 따라 일시적으로 자극만 줄 수 있기 때문에 뇌 자체에는 전혀 손상을 주지 않는다는 점이다. 현재 전 세계적으로 수많은 과학자와 의사들이 뇌 기능장애 질환의 원인을 밝혀내고 이를 이용한 환자의 치료를 시도하고 있다. 1990년 미국에서 뇌의 10’(The Decade of Brain)이라는 슬로건 아래 뇌신경과학의 기초 및 임상 연구에 집중적인 연구비 지원이 이루어지면서 기하학적으로 연구과제가 증가됐고 일본에서는 뇌의 100운동이 추진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뇌연구 촉진법입법화가 추진되어 최근에는 뇌기술 2000’(Brain Tech 2000)이라는 뇌신경과학 연구를 집중 지원하는 국가적 프로그램이 준비돼 있다. 우리나라에는 파킨슨병 환자만 해도 현재 약 8만 명이 있을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노년층의 증가에 따라 환자는 점진적으로 증가될 것으로 예상된다. 물론 이들 환자 전부가 수술로 치료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국내의 경우 수술에 필요한 심부(深部) 뇌자극장치가 보건복지부의 사용허가심사를 받고 있다. 어려운 문제는 이러한 심부뇌전기자극장치가 기계가격만 대당 1만 달러의 고가여서 국내에서 사용허가가 난다고 해도 의료보험이 적용되지 않는다면 임상에서 적용이 어려울 것이란 점이다. 외국의 경우 파킨슨병 등의 이상운동증에 대한 심부뇌자극치료는 프랑스의 베나바드 교수와 토론토대학의 로자노 교수 등에 의하여 활성화돼 현재 미국의 뉴욕대학과 일본의 니혼의대 등 많은 대학병원에서 응용되고 있다. 파킨슨병 외에도 다양한 질환에 대하여 적응 유무를 많은 기관에서 현재 연구실험 중이다. 일본의 니혼의대 신경외과에서는 난치성 통증과 의식장애에 대한 심부뇌자극장치의 임상연구를 중점적으로 시행하고 있고, 미국 뉴욕의대에서는 심부뇌전기자극장치를 사용하기 전과 후의 뇌의 변화를 객관적으로 관찰하여 향후 이를 난치성 간질, 사회생활이 불가능한 우울증, 강박증 환자 등에 대해 시도하려 계획 중이다.

 

식물인간 등의 의식장애, 심각한 신경성 비만증 또는 식욕부진증, 심각한 정신분열증, 협심증 등에 대한 치료방법도 연구 중이다. 국내의 경우 연세대 의대 정위기능 신경외과수술팀에 의해 심부 뇌전기자극 장치를 국산화하기 위한 프로젝트가 진행 중이다. 또 뉴욕 의대 정위기능 신경외과의 레자이 교수와 공동 연구프로젝트도 시행될 예정이다. 우리가 모르는 사이 현대의학으로 치료할 수 있는 영역들은 우리가 생각하던 것보다 저만큼 앞서 발전해 간다. 머잖은 장래에 심부뇌자극치료 등 신경외과적인 처치 혹은 약물 등 다양한 치료로 수많은 난치성 기능성 신경계질환이 치료될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앞으로 뇌전기자극장치 치료의 안정성과 효과가 입증되면 한 외국만화처럼 언젠가는 많은 환자가 몸 안에 컴퓨터 전기자극장치를 가지고 살게 될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