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휴가 ‘극과 극’ 부유층 “해외로”… 서민층 72%는 “집에서”
한국일보 1999. 6. 30.
휴가철이 시작되면서 해외로 빠져나가려는 여행객들로 공항이 북새통을 이루고 있는 반면 대다수 국민들은 올여름휴가를 가지 않거나 계획도 짜지 않고 있는 것으로 나타나 대조가 되고 있다. 김포공항 국제선 청사에는 무더위가 시작되면서 연일 해외로 나가려는 여행객들로 항공사 창구마다 장사진을 이루고 있다. 번잡스런 휴가철을 피해 미리 해외로 여행을 다녀오려는 여행객들이 크게 늘어나고 있으며 방학을 맞은 대학생들이 배낭여행까지 가세하고 있다. 이달 들어 26일까지 김포공항을 통해 출국한 여행객은 26만 4,900여 명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30%나 늘어나는 등 올 들어 해외여행객은 또다시 크게 늘어나고 있다. 여름휴가 피크인 7월 15~8월 15일 한 달간 해외 항공권은 거의 바닥난 상태. 미주 유럽 일본 호주권 등 주요 지역을 연결하는 항공권은 대부분 매진됐고 항공편별 대기예약자들로 20~30%에 이르고 있으며 동남아지역은 90% 이상 좌석이 찼다.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의 경우 도쿄(東京) 오사카 등 일본노선과 LA 샌프란시스코 등 미주노선, 파리 로마 등 유럽노선, 호주 뉴질랜드 등 대양주노선은 1개월 전부터 예약이 끝난 상태다. 이로 인해 각 여행사와 항공사엔 이 기간 해외항공권을 구하기 위한 전쟁이 벌어지고 있다. 하지만 국민 대다수를 차지하는 서민들에겐 해외여행은 물론 휴가여행은 남의 나라 이야기다. 경기가 회복되면서 소비심리가 살아난다고 하지만 국민 10명 중 7명은 올여름휴가를 가지 못한다. 현대경제연구원이 29일 발표한 전국 20세 이상 기혼남녀 985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 결과에 따르면 응답자의 72.2%가 올여름휴가 여행을 가지 않거나 전혀 생각하지 않고 있다.
특히 월평균 소득 100만 원 미만 가구는 80% 이상이 여름휴가를 포기하겠다고 답했다. 이는 외환위기 이전인 96년과 97년의 52.7%와 57.4%에 비해 훨씬 많으며 IMF 직후인 지난해(72.4%)와 거의 비슷한 수준이다. 연구원은 이에 대해 경기와 소비의 회복세는 실생활에 필요한 품목을 중심으로 이뤄지고 있으며 중산층 이하는 고용 불안등에서 완전히 회복하지 못해 소비심리가 여가나 레저로까지 확산되고 있지 않은 결과라고 분석하고 있다. 설문조사를 맡은 김범구연구원은 ‘IMF이후 더욱 심해진 소비의 양극화현상이 휴가 여행에도 반영된 결과’라며 ‘이 같은 현상은 우리 경제가 정상궤도를 회복할 때까지 계속될 것이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