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 못 이루는 밤… 불면증에 술 - 담배는 ‘독약’
주간조선 1999. 7. 8.
카페인 삼가고 운동도 잠자리 들기 3~4시간 전 적당히
이부자리를 깔고도 밤새껏 이리 뒤척, 저리 뒤척 잠들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 떠나간 연인을 생각하며 베겟잇을 적시는 젊은 여성, 막막해진 생계 걱정에 전전반측하는 실직 가장…. 최근 가벼운 언행으로 온 나라를 들쑤셔 놓은 한 전직 고관은 후회막급한 심정에 뜬 눈으로 밤을 새울지도 모를 일이다. ‘잠 못 드는 밤’은 대부분 그럴 만한 이유들이 있다. 그러나 뚜렷한 까닭도 없이 쉽게 잠들지 못하고, 일단 잠이 들어도 새벽에 일찍 깨 다시 눈을 붙이기 힘든 사람도 적지 않다. 견디지 못하게 졸리다가도 잠자리에만 누우면 정신이 말똥말똥해지기도 한다. 이런 사람들은 혹시 불면증이 아닌지 진찰받아 볼 필요가 있다.
▷ 원인과 진단
불면증은 아주 흔한 증상이다. 성인 세 명 중 한 명은 불면증을 경험하고, 열 명 중 한 명 정도가 만성 불면증에 시달린다. 나이가 들수록 늘며 여자에게 많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단순히 잠이 오지 않는 것만으로는 불면증이 아니다. 보통 자리에 들고도 30분 이상 잠들지 못하고, 일단 잠이 든 뒤에도 자꾸 잠이 깨며 일단 깨면 쉽게 잠들지 못하고, 자고 일어나도 피로 회복이 안되고 기분도 개운치 못한 증상이 한 달 이상 계속되면 불면증이라 진단한다.
우울증 등 정신질환, 코를 골다 호흡이 되풀이해 끊어지는 수면무호흡증, 잠잘 때 다리가 죄어드는 하지불안증, 약물 남용, 알코올중독 등 다른 질병이 원인인 불면증은 원인 질환을 치료하면 대부분 낫지만, 전체 환자의 60~80%는 특별한 원인 질환도 없고 정확한 원인도 밝혀지지 않은 ‘원발성 불면증’이다. 원발성 불면증은 만성 스트레스가 제일 큰 요인이고, 커피 등 카페인이 든 음료, 부적절한 수면 환경 등이 관계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부적절한 수면 환경’에는 침실 환경, 침대 위치, 심지어 침대보 색깔까지 포함된다고 한다. 부부관계에 자신이 없어도 불면증에 걸릴 수 있다.
불면 증상이 한 달에 1~2회 정도 찾아오는 정도라면 병원을 찾지 않아도 무방하나, 1주일에 2~3회 이상 한 달간 계속되면 반드시 전문의에게 진찰받아 원인과 증상을 밝혀야 한다. 환자 본인은 수면 중 자신의 상태를 정확히 파악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으므로, 우선 같은 침실을 쓰는 사람이 곁에서 지켜본 환자상태를 의사에게 정확히 전하는 게 필수적. 최근 큰 병원을 중심으로 수면다원검사가 도입돼 정확한 진단에 도움이 되고 있다. 이 검사는 수면 중 8시간 동안 뇌파 안구운동 근전도 심전도 호흡 혈압 코골이 등을 검사하면서 동시에 환자의 수면 중 행동을 VTR로 촬영하며, 이로써 잠들지 못하는 이유, 수면 중 문제, 정상인의 수면과 다른 점등이 비교적 정확히 파악된다. 비용은 병원에 따라 다르나 대개 검사자체에만 45만 원 정도 든다.
▷ 치료는 이렇게
원발성 불면증은 저절로 낫기도 하며, 대부분 비약물 치료로 좋은 효과를 보인다. 우선 잠이 잘 들도록 하는 10가지 방법을 잘 따르고, 침대에는 잠자거나 성행위를 할 때에만 들어가며, 침대에 누워 10분이 지나도 잠이 들지 않으면 침대에서 나와 다른 방에 가 책을 읽거나 조용한 활동을 한다. 낮잠을 피하고, 복식호흡 요가명상 등 몸과 마음의 긴장을 풀어주는 방법을 골라 꾸준히 하는 것도 도움이 된다. 여기에 수면다원검사 등으로 밝혀진 문제점을 전문의의 처방에 따라 해결하면 상당수는 어렵잖게 잃어버린 잠을 되찾는다. 비약물 치료로 뚜렷한 효과를 보지 못하면 수면제를 투여하는 약물 치료를 병행하기도 한다. 큰 부작용 없이 일시적 불면증에 좋은 효과를 보이는 벤조디아제핀 제제를 흔히 쓰며, 수면 유도 작용이 있는 항우울제를 투약하는 경우도 많다.
그러나 수면제는 강제로 잠이 들게 하는 대증 요법일 뿐 원인치료제는 아니다. ‘수면제를 꼭 써야 하는 경우는 환자가 병원을 찾기 전부터 수면제를 오래 써서 갑자기 끊으면 금단 증상으로 불면증이 더 심해질 때뿐’이라고 밝히는 의사들도 있다. 반드시 의사 처방에 따라 2~3주를 넘지 않는 단기간에만 복용해야 하며, 연속 복용하면 내성이 생겨 사용량이 늘기 때문에 되도록 이틀~사흘에 한 번씩 띄엄띄엄 복용하고, 1주일 이상 매일 먹는 것은 피해야 한다. 불면증 환자 중에는 ‘습관성이 없다’는 이유로 동네 약국에서 항히스타민성분이 든 수면제를 마음대로 사 먹는 사람이 적지 않다. 콧물감기약 성분인 항히스타민제는 ‘감기약 먹으면 졸음이 쏟아지는’ 원인 제공자. 그러나 남용하면 중장년층에게 배뇨 장애를 일으키는 등 부작용이 적지 않으므로 의사 처방 없는 복용은 금물이다.
▷ 운동 요법
매일 적당히 운동하면 쉽고 빨리 잠드는 데 큰 도움이 되며, 일단 잠든 뒤에도 깊은 잠을 자게 해 준다. 적절한 운동은 인체의 호르몬 분비를 자극해 기분을 고조시키지만, 몇 시간 지나면 몸을 적당히 느슨하게 해 잠들기 좋은 상태로 만들어 준다. 취침 직전의 격렬한 운동은 오히려 잠을 쫓으므로 삼가야 한다. 매주 사나흘씩 저녁을 든 뒤 20~30분 정도 조깅 실내자전거 타기 수영 체조 등 유산소 운동을 하는 게 효과적이며, 취침 3시간 전까지는 운동을 마쳐야 한다. 운동을 마치고 잠자리에 들기 전 따뜻한 물로 목욕을 하면 더 좋다.
▷ 쉽게 잠드는 10가지 방법
1. 늘 같은 시각에 일어난다.
2. 침대에 들기 4~6시간부터 카페인 섭취를 피한다.
3. 담배를 끊는다. 특히 자다 깼을 때 담배를 피우지 않는다.
4. 술기운을 빌려 잠들지 않는다.
5. 잠자기 전 가벼운 간식은 좋으나, 과식은 피한다.
6. 오후에 규칙적으로 운동한다.
7. 소음, 빛, 실내 온도는 되도록 낮게 유지한다.
8. 자명종을 치운다.
9. 낮잠을 자지 않는다.
10. 자기 전 20분 정도 더운물로 목욕한다.
▷ 낮잠 “밤잠 방해 안되면 나쁘지 않다”
‘하늘이 무너져도 낮잠을 잔다’는 사람들이 있다. 점심 식사 뒤 깜빡 졸면 오후 업무 효율이 훨씬 오른다는 직장인도 많다. 2차 대전 중의 히틀러도 점심 식사 후 반드시 낮잠을 잤다고 한다. 반면, ‘낮에 자면 밤잠을 못 자 해롭다’는 사람도 없지 않다. 낮잠은 건강에 좋을까 나쁠까. ‘낮잠 예찬론자들’처럼 낮에 반드시 자야 한다는 의학적 근거는 없다. 그러나, 밤잠에 방해만 되지 않으면 낮잠은 나쁠 게 없다는 게 전문의들의 설명이다.
가톨릭의대 여의도성모병원 전태연(신경정신과) 교수는 ‘우리 몸은 자주 휴식을 갖는 게 좋다’며 ‘낮잠으로 일과 중에 한번 쉬어 주면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그러나 밤에 충분히 자고도 낮에 아무 때나 졸음이 쏟아지는 사람은 주간졸림증이라는 병일 수 있으므로 전문의를 찾을 필요가 있다. 이 병은 식사 뒤나 따분한 강의 시간 등 잠이 올 만한 상황이 아니라 운전을 하거나 시험을 보는 도중, 심지어 성행위 중 등 도저히 잠들면 안 될 때에도 갑자기 졸음이 쏟아진다. 일단 잠들면 수분~15분쯤 뒤 비교적 맑은 정신으로 깨어난다. 암페타민 등 중추신경 자극제를 투여해 치료하며, 일정한 시간에 낮잠을 자는 것도 도움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