똑같은 것을 거부하는 신세대, 왜 유행 앞에서는 맥을 못 추나?
매일경제 1999. 5. 8.
‘X세대 Y세대, Z세대….’ 요즘 젊은이는 누군가에 의해 여러 가지 기준으로 분류된다. 그만큼 다양한 이름으로 불리고, 남다른 특징도 많다. 이들 세대는 △개성이 강하다 △틀에 짜인 형식을 싫어한다 △쇼핑을 즐긴다 △서구문화에 거부감이 없다 △자의식이 뚜렷하다 등 기성세대와는 차별화된 특성들로 대변된다. 하지만 이들은 자신들의 문화 테두리 속에서 명백한 이중성을 보이기도 한다.
◇ “똑같은 것은 싫다” 대 “하지만 유행은 필수”
서울 Y여고 2학년 김 모양은 최근 머리를 스포츠형으로 짧게 잘랐다. 여름이 가까워 날씨가 더워지는 것도 이유였지만, 단정한 단발머리나 긴 생머리 일색인 친구들과 달라 보이고 싶었다. “모두 똑같은 교복에 똑같은 머리스타일이 싫었죠. 염색도 하고 싶었지만 학교규제 때문에 못했죠.” 신세대들은 남과 똑같은 것을 거부한다. Y세대로 대변되는 15~20세의 청소년들에게 이런 현상은 특히 두드러진다. 뭔가 차별화되고 튀는 것이면 일단 매력을 느끼고 접근한다. 하지만 이들은 남들과 차별화되려고 끊임없이 시도하면서도, 유행은 무섭게 좇는다.
남과 같은 것은 싫지만 남들이 모두 하는 것에 혼자서만 빠질 수 없다는 논리다. 요즘 10만 원대 고급 브랜드 청바지와 이스트팩 가방 하나쯤 갖고 있지 않는 학생들이 없다. 일본 만화에 나오는 루주삭스(loose socks)를 신고 무리 지어 가는 여학생들의 뒷모습을 보면 누가 누군지 구분할 수 없다. 학부모 신인정 씨(42)는 “친구가 똑같은 옷을 사면 절대 입지 않는 중3 딸애가 유행하는 머리핀과 옷은 꼭 사달라고 한다”며 “어차피 같은 것은 마찬가지인데 ‘유행’이란 이름으로 뭐가 달라지는지 모르겠다”라고 의아해했다.
◇ ‘전통적 직업관은 고리타분’ 대 ‘결국 자격증이 최고’
H 대 1학년 서창현 군은 고등학교 때 교내 밴드에서 활동하던 기타리스트 지망생이었다. 대학에선 더 열심히 음악을 할 수 있으리라 생각했지만, 서 군은 지금 공인회계사 시험을 준비하고 있다. 음악가로 평생을 살 만큼 재능이 있는지도 회의적이었고, 경제난 속에 극심한 취업난을 겪고 있는 선배들의 모습에도 자극이 됐다. 신세대들은 의사 판사 박사 등 ‘사’ 자 직업에 예전만큼 열광하지 않는다. 전통적으로 최고라고 인정받던 직업을 고리타분하다고 여기는 것은 신세대가 중시하는 삶의 가치와는 거리가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명예보다 자신이 원하는 일을 하고 싶다는 신세대들의 소망은 점차 안정된 직업을 향해 과거로 회귀하고 있다.
현재 각 대학 도서관은 자격증 시험준비로 연일 붐비고 있다. 신입생부터 졸업생까지 너도나도 고시열풍이다. 기성세대의 가치관에 반대하던 신세대들도 결국 안정된 삶에의 유혹을 거부하지 못하는 것. 이러한 신세대의 이중성을 두고 전문가들은 그들이 가지고 있는 새로운 가치를 펼칠 만큼 기성세대가 장을 열어주지 못하는데 원인이 있다고 지적한다. 서강대 교육대학원 정유성 교수는 “외부여건은 급속히 변화함에도 제도교육은 크게 달라지지 않아 잠깐동안 세대의 특성을 보이던 그들이 결국은 사회에 순응하게 되는 것”이라고 분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