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칼과 쇠말뚝인가?
뉴스플러스 1999. 5. 6.
효험인가 아니면 속설인가. ‘묘란’(墓亂)이 잇따르고 있다. 지난해 충남 예산 가야산도립공원 안에 불법으로 터를 잡은 육관도사묘가 말썽을 빚더니, 올 초엔 롯데 신격호 회장의 부친 묘를 발굴해 시신을 훼손하는 엽기적인 사건이 발생했다. 이어 3월에는 한나라당 이회창총재의 조상묘소(충남 예산)에 쇠말뚝이 박혔던 사실이 1년 만에 공개됐고, ‘성웅’으로 국민의 추앙을 받아온 충무공 이순신장군의 묘소에서까지 식칼과 쇠말뚝이 꽂혀 있는 게 발견된 것. 경찰은 충무공 묘소에 해코지한 혐의자들을 추궁하는 과정에서 경기도 여주의 세종과 효종릉에도 이들이 똑같은 짓을 했음을 밝혀냈다. 이 같은 ‘묘지범죄’, 그것도 쇠말뚝 등을 이용한 범죄가 왜 빈발하는 것일까. 풍수계에선 묘소에 쇠말뚝이나 칼을 꽂는 행위가 기와 맥을 차단하거나 자르는 의미라고 설명한다.
즉 피장자와의 원한관계 또는 피장자의 후손을 쇠약하게 하기 위한 행위라는 것. 그런가 하면 피장자 또는 그의 묘터에서 나오는 기(氣)를 다른 쪽으로 흐르게 하는 주술적 의미도 있다고 한다. 이른바 정기(精氣) 도용설(盜用說)로서, 힘 있는 사람의 기운을 빌려 난치병을 고치거나 액운을 퇴치한다는 것이다. 또 쇠말뚝은 기와 맥을 차단할 수 있지만 영구적으로 자르진 못해 칼이 사용된다고 한다. 이충무공과 그 집안사람들의 묘에서 식칼과 쇠말뚝이 처음 발견됐을 때 풍수학자들은 이 같은 설명을 내놓았다. 사실 묘지범죄의 역사는 대단히 길다. 풍수연구가들은 명나라 이여송장군이 속리산 법주사의 수정봉 꼭대기에 있는 거북바위 목 부위에 대못을 꽂은 게 거의 효시에 가깝다고 말한다. 그는 중국 재물이 조선으로 몰리게 되자 조선의 기운을 꺾기 위해 명산 대혈에 대못을 꽂았다는 것이다.
이후 스님들이 못을 뽑았지만 지금도 자국은 선명하다. 일제는 한반도 백두대간 명혈에 쇠말뚝을 박아 정기를 막으려 했다. 지금까지 쇠말뚝이 발견된 곳만도 전국에 100여 곳 81년부터 이 쇠말뚝 뽑기 운동을 펼쳐온 서강대 서길수교수는 “실제 효과 여부를 떠나 민족적 자존심이 걸린 문제”라고 지적했다. 지난해 9월에는 경북 구미시 장천면 신장리 경북도 지방기념물 제12호인 천생산성내 쌍룡사 뒤편 바위굴 속에서 쇠말뚝이 제거된 일도 있다. 풍수연구가나 지리학자들은 “일본이 천생산 산세인 용의 목에 해당하는 혈장소에 쇠말뚝을 박은 것은 임진왜란 때 이곳에서 자신들이 대패한 것에 대한 앙갚음”이라고 해석했다.
96년 9월에는 김해김 씨의 시조인 김수로왕릉에서 식칼과 쇠말뚝이 발견된 것으로 알려졌다. 김수로왕은 그다음 해 야당 대통령후보로 나설 예정이던 김대중 김종필 씨의 조상에 해당된다. 이여송장군의 쇠못이나 일제가 박아놓은 쇠말뚝이 불특정 다수의 조선인을 겨냥했다면, 최근 이회창총재의 조상묘나 이충무공묘에서 발견된 쇠말뚝과 칼은 특정인을 겨냥했다는 점에서 사뭇 그 성격이 다르다. 풍수학자들의 주장대로라면 이회창총재의 조상묘와 김수로왕릉의 ‘묘란’은 대통령선거와 관련된 것으로 해석할 수도 있다. 상대의 정기를 차단하려는 주술적 목적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얘기다. 그렇다면 현재의 인물이 아닌 충무공과 그 문중 묘지의 식칼과 쇠말뚝은 원한관계가 아닌 정기 도용설로 해석할 수 있다. 사실 이충무공 묘소사건이 발생하자 경찰은 곧바로 풍수가들의 조언을 들었다. 수사방향을 정하기 위해서였다.
초능력 풍수가로 불리는 모종수 씨(45)가 경찰에게 무속인이 간여했을 것으로 조언한 것은 바로 칼과 쇠말뚝의 역할이 주술적 의미를 갖고 있었기 때문. 그의 예상대로 충무공묘소의 해코지 범인은 무속인으로 밝혀졌다. 경찰은 애초 문중 간 또는 문중 내의 원한관계에서 비롯됐을 가능성도 배제하지 않았으나 결국 속설에서 비롯된 것으로 드러났다. 부산에서 철학관을 10여 년째 운영해 온 40대 후반의 여자 무속인은 최근 들어 악화되는 자신의 두통을 꿈에 나타난 충무공 때문이라고 믿었다. 충무공이 자신의 기(氣)를 빼앗아 갔다고 생각한 것이다. 그는 자신의 두통 해결을 위해선 충무공과 그 후손의 정기(精氣)를 끊는 방법밖에 없다고 믿고 이를 행동에 옮기기에 이른 것이다.
이 같은 해괴망측한 일이 조상묘에 벌어진 것을 경험한 후손들은 이를 집안의 흉사로 받아들여 좀처럼 쉽게 드러내지 않으려 한다. 충무공 후손들은 “일제가 민족말살을 위해 명산 대혈에 무쇠 말뚝을 박을 때에도 ‘일본의 천적(天敵)’ 충무공 묘는 안전했다”며 참담한 표정을 지었다. 풍수가 들은 ‘후손이 잘못되면 조상묘 탓’이라는 묘에 대한 정서가 깊게 배어 있는 한 이 같은 일이 계속될 것으로 입을 모은다. 지금도 누구의 무덤에 얼마만큼의 식칼과 쇠말뚝이 꽂혀 있는지 모를 일이다. 각 자치단체들이 관할 사적지 내의 묘소관리를 철저히 하도록 긴급 지시하고 ‘묘소에 경보장치를 해 두어야겠다’는 말이 나올 정도다.
조상묘와 거기에 박힌 쇠말뚝의 효험이 어떻든, 유사사건이 다시는 일어나지 않아야 한다는 데에는 이견이 없다. 장묘문화의 근본적 개선이 뒤따라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10여 년째 장묘문화의 개선을 위해 일해온 중부대 김태복교수는 “묘지에 대한 우리의 관념이 근본적으로 바뀌지 않고 이 같은 속설이 깊게 배어 있는 한 유사사건은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다”는 지적이다. 그는 묘지가 전 국토를 잠식할 날이 그리 멀지 않았다는 점에서도 이제 매장문화를 깊이 있게 재고해야 할 때라고 덧붙인다. 묘를 숭상하는 우리 정서가 당분간은 사라지지 않을 것으로 보고 우선 이 같은 ‘터무니없는 무속행위’에 대한 처벌을 강화하는 방안을 찾아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실제 이회창총재의 조상묘에서 쇠말뚝이 발견됐을 때 경찰은 마땅한 처벌근거를 찾지 못해 고민했다. ‘롯데사건’처럼 시신을 훼손했다면 모를까 현행 형법 제159조의 사체에 대한 오욕죄는 분묘를 개장하거나 사체를 훼손한 경우에만 처벌할 수 있도록 돼 있다. 개인의 묘에 식칼이나 쇠말뚝을 꽂는 주술행위 등에 대해서도 언급이 없기는 마찬가지다. 다만 이충무공 묘소에 해코지한 범인을 사법처리 할 수 있는 것은 이곳이 국가사적지로 지정돼 있기 때문.
문화재보호법 제20조에는 ‘문화부장관의 허가를 받지 않고 국가지정 문화재의 현상(現狀)을 변경하거나 보존에 영향을 미칠 행위를 한 자는 3년 이하의 징역이나 300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할 수 있도록 돼 있다. 그러나 국가사적지가 아닌 개인 묘소에 대해선 국가와 법률이 보호해 줄 길이 없는 것이다. 결국 장묘문화의 근본적 개선, 나아가 비뚤어진 무속적 사고방식의 타파가 이루어질 날을 하릴없이 기다려야 하는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