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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민등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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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민등록 제도... 너를 고발한다

 

시사저널 1999. 3. 25. 

 

= 국민 통제하는 악습전면 개편목소리 커져 =

주민최근 주민등록 관련 제도를 둘러싸고 두 가지 큰 변화가 있었다. 하나는 논란 많던 전자주민 카드 계획이 중단된 것이고, 또 하나는 현재의 주민등록증이 플라스틱으로 바뀐다는 것이다. 전자주민카드 계획의 핵심 골자는, 주민등록증에 들어 있는 정보들을 전산화해 이를 국가가 통합 관리하겠다는 것이었다. 국가가 이전보다 훨씬 더 쉽게 개인 정보에 접근해 인권을 침해할 소지가 있고, 개인 정보를 허술하게 관리할 경우 자칫 엄청난 혼란을 초래할 수 있다는 비판이 제기되자 이 계획은 진통 끝에 최근에 와서야 백지화했다.

 

그렇다면 이제 남은 것은 플라스틱 주민증을 어떻게 효율적으로 쓸 것인가 하는 문제뿐일까? 결코 그렇지 않다. 전자주민카드 논쟁을 계기로, 주민등록증은 물론 이를 떠받치고 있는 주민등록 제도 자체를 뜯어고쳐야 한다는 주장이 고개를 들고 있다. 문제를 제기하는 이들의 주장에 따르면, 현행 주민등록 제도 자체가 이미 충분히 인권 침해의 기제로 기능해 왔고, 세계에서 유례를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엄격히 국민을 통제하는 수단이다. 거기에다 위헌적인 요소까지 갖고 있다. 제도를 시행해 온 37년 동안 아무런 문제의식 없이받아들여졌던 현행 제도에 대해 일대 의문이 일고 있는 것이다.

 

주민등록표에 개인 정보 140개나 수록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17세가 넘으면 누구나 발급받게 되어 있는 주민등록증은 생각만큼 간단한 물건이 아니다. 주민등록증은 62년 박정희 군사 정권 시절 통과된 주민등록법에 법적 근거를 두고 태어났다. 625월 국가재건 최고회의는 이전에 있었던 기류법을 폐지하고, 대체 법률로써 주민의 거주 관계를 파악하고 상시로 인구 동태를 명확히 한다’는 취지로 주민등록법을 제정했다. 당시 이 법률이 정한 바에 따르면 대한민국 국민은 누구나 이름성별생년월일주소본적을 시면에 등록하고 세대의 전부 또는 일부가 이동할 때 반드시 퇴거와 전입 신고를 해야 한다. 주민등록 제도의 중요한 뼈대를 이루는 주민등록증 제도와 주민등록번호 제도는 이보다 한참 뒤인 68년에 만들어졌다.

 

주민등록법을 개정하면서 ‘18세 이상 주민에 대하여 주민등록증을 발급할 수 있다는 규정을 두고, 이에 따라 개인 식별 번호를 부여한 것이다. ‘18세 이상규정은 753차 개정 때 ‘17세 이상으로 바뀌었으며, 주민등록번호(개인식별 번호) 역시 75년 시행령을 개정하면서 지금의 모습을 갖추었다. 즉 열세 자리 숫자에 생년월일성별출신 지역 등을 순서에 따라 기재하는 방식이 도입된 것이다. 이전까지 주민등록번호는 앞의 여섯 자리에 거주 세대를 표시하고, 뒤의 여섯 자리에 개인 번호를 표시했다. 오늘날의 주민등록 제도에서 가장 문제가 되는 것은, 세대별 주민등록표와 개인별 주민등록표에 광범위한 개인 정보가 수록된다는 사실에 있다. 이른바 개인 정보 과잉 노출문제가 발생하는 것이다.

 

현행 주민등록표에는 140개 항목에 이르는 개인 정보가 수록된다. 이들 140개 항목의 개인 정보는 크게 11개 범주로 나뉘는데, 23개 항목에 이르는 기본 사항 외에 병역예비군민방위자격 면허생활 보호의료 보장보훈 관계 정보가 이들 범주의 주요 내용이다. 문제는 과연 이 많은 정보가 국가가 국민 관리 체계를 구성하는 데 꼭 필요한가 하는 물음에서 비롯한다. 물론 현행 주민등록제도를 비판하는 쪽의 결론은 필요 없다이다. 사회주의권이든 자본주의권이든, 오늘날의 국가는 저마다 국민 등록 제도를 두고 있다. 이는 체제가 아무리 다르더라도 국가가 국가로 유지되기 위해서는 자국민의 신분을 확인관리해야 할 필요성에 따른 것이다. 대부분의 국가는 조세 징수사회 보장 따위 필요에 의해 자국민에 대해 개인 식별 번호 등을 부여하는 국가 신분 등록 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그런데 독일프랑스 등 일부 선진국에서는 개인식별 번호에 일련번호를 쓰거나 일련번호 사용마저 엄격하게 제한하는 등 개인 정보 남용유출을 막기 위해 이중삼중의 ‘안전장치’를 두고 있다.

 

국가 기관들, 개인 정보 오용남용 잦아

이와 달리 우리나라 주민등록 제도는 신분 확인에 필요한 사항 말고도, 군번주특기전역 일자 등 병역 사항은 물론 국가 유공자 등 보훈 사항, 심지어 개인의 건강 상태와 월평균 소득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한 정보를 담도록 의무화하고 있다. 국가가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지 완벽하게 한 개인을 관리통제할 수 있을 정도로 막대한 정보량을 확보하고 있는 것이다. 최근에 와서 정부여당은 개인 정보를 보호한다는 차원에서 앞으로 나올 플라스틱주민증에는 일부 사항을 기재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하지만 이는 주민등록증에만 국한하는 얘기다. 등록표 상의 정보 과잉은 여전히 남아 있게 된다. 더욱 심각한 문제는 개인 정보를 보호해야 할 국가 기관이 주민등록의 각종 정보를 오히려 오용남용하는 데 있다. 검찰과 함께 공권력의 한 축인 경찰의 경우, 연간 1억 건․하루 30만 건 이상 컴퓨터 조회를 하는데, 이 중 20% 이상이 주민등록 관련 조회이다.

 

최근 말썽을 빚은 이른바 청와대 사직동팀À 재계 인사의 사생활을 추적한 것이나, 안기부(현 국가정보원)검찰의 불법 도청과 감청 등은 개인 정보 오용과 밀접하게 연관된 사례이다. 주민등록 제도가 가진 이 같은 특성은 이미 여러 차례 그 위력을 실증했다. 대표적인 사례가 90년 발생했던 윤석양 이병의 민간 사찰 카드폭로 사건이다. 당시 윤이병이 공개한 국군보안사(현 기무사)의 개인 카드에는 요주의 인물 450명의 인물가족경력병역 사항 등 수십 개에 이르는 개인 정보 항목이 수록되어 있었다. 이들 정보의 대부분이 주민등록표에 의해 ‘누워서 떡 먹기식으로 수집되었음은 물론이다. 성격은 조금 다르지만 972월 발생한 이한영 씨 피살 사건 역시 현행 주민등록 제도의 결함에서 말미암았다. 김정일의 조카로서 성혜림 사건을 폭로하여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던 이한영 씨는, 사건 폭로 직후부터 거주지를 자주 옮기는 등 신분 노출을 피하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그러나 이 씨는 주소지를 옮긴 지 꼭 1주일 만에 은신하고 있던 친지의 아파트 통로에서 살해되었다. 이 씨를 비명에 가게 한 단서는 살인범들이 경찰에서 빼낸 주민등록번호였다.

 

공적 서류는 물론 사적 계약서자동차보험 영수증연금 납부 영수증신용카드, 심지어 비행기표에까지 개인 정보를 마구 사용하는 관행은 또 다른 차원의 재앙을 예고한다. 공적영역에서 관리되어야 할 개인 정보가 사적 영역으로 함부로 유출됨으로써, 기업체나 개인이 국가 기관 못지않은 정보 침해자로 등장할 공산이 높아가고 있는 것이다. 94년 충남 논산전남 광양경기도 양평 등지를 돌며 연쇄 살인 행각을 벌여 세상을 발칵 뒤집어놓았던 지존파 사건은 이 같은 가능성을 현실로 입증한 경우다. 경찰 수사 과정에서 범인들은 주소․이름․전화번호가 적힌 서울 강남의 한 백화점 고액 거래자 명단을 입수해 추가 범행을 기도하려 했던 사실이 밝혀져 충격을 주었다. 이 같은 사례들은 주민등록 제도를 국가가 오용하거나 잘못 관리할 경우, 어떤 재앙이 닥칠 수 있는가를 잘 보여준다. 그러나 문제는 여기에서 그치지 않는다. 세계에서 유례를 찾아보기 힘들 만큼 완벽한주민등록 제도는 30여 년간 시행되면서 주민등록증이나 주민등록번호 없이는 살 수 없는 독특한 신분증 문화를 이 땅에 정착시켰다.

 

주민등록제는 국가에 굴종 강요하는 장치

한 예로 주민등록증 소지 의무80125차 주민등록법 개정 때부터 시행된 이래 20년 가까이 시민 생활을 규제해 왔다. 비록 이 같은 의무 조항이 9712월 폐지되었지만, 여전히 많은 시민들이 주민등록증이 없으면 외출을 제대로 못할 정도로 강박 관념을 갖고 있다. 주민등록제도라는 바늘처럼 따라다니는 지문 날인 제도 역시 비슷하다. 일본에서 재일 동포들이 지문 날인을 강요받는 데 대해서는 외국인(또는 이민족) 차별이라고 울분을 토하는 사람들마저, 국내에서 주민등록표(또는 주민등록증)에 지문 찍는 일을 당연하게 여기는 풍토가 있는 것이다. 현행 주민등록 제도에 대해 일각에서 국가에 굴종을 강요하는 장치라는 비판이 쏟아지는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물론 이에 대한 반론도 만만치 않다.

 

예컨대 강경근 교수(숭실대법학과)와 같은 전문가들은 이 제도가 국가의 안전 보장이나 질서 유지 또는 공공복리 차원에서 기본권을 제한할 수 있다는 헌법 조항에 합치된다라며 그 정당성을 주장한다. 반론자들은 또한 94년 제정된 공공 기관의 개인 정보 보호에 관한 법률을 예로 들면서 안전장치가 있음을 강조한다. 그러나 이 제도의 문제점을 가장 먼저 제기한 김기중 변호사(덕수합동)현행 제도는 사생활에 대한 자의적 침해를 금지하고 있는 국제 규약에도 어긋나는 제도로서 당장 전면 개편해야 한다라고 반론을 편다. 전체주의 색채가 강한 현행 주민등록 제도를 대폭 손질하지 않고서는 인권 보장이나 민주주의는 말 그대로 요원하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