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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얼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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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두 얼굴……

 

중앙일보 1999. 3. 16. 

 

겉으론 세계경찰, 뒤로는 무기판매

지난 10일 코언 미 국방장관이 이스라엘을 방문했다. 그는 하루 동안 예루살렘에 머무르며 모쉐 아렌 국방장관과 만나 미국의 F15. F16전투기 판매문제를 논의했다. 당시 네타냐후 총리가 만날 것을 제의했지만 그는 시간이 없다는 이유로 회피했다. 이를 지켜본 영국의 BBC방송 등 유럽 언론들은 의전을 팽개친 철저한 실무외교’라며 무기판매에만 매달린 그의 행각을 비아냥댔다. 틈만 나면 세계평화를 외치는 미국. 그러나 장관은 물론이고 대통령까지 나서 평화파괴의 수단인 무기를 팔려고 안간힘을 쏟는 나라. 국방부에는 아예 해외 무기판매 담당부서까지 있을 정도다. 이 이율배반을 어떻게 해석해야 하나. 오늘도 미국은 세계 곳곳에서 자국 회사가 만들어낸 무기 팔기에 열을 올리며 세계시장 점유율을 높여가고 있다.

 

태국이 90년대 중반 구매키로 합의한 6억 달러 규모의 FA18 전투기를 97년 아시아경제위기로 취소했을 때, 미국은 정부대표단을 태국에 파견해 전투기구매 취소 대신 태국 해병대가 수송용 비행기를 구매하도록 유도했다. 미국은 80년대 파키스탄에 F16 전투기 28대를 팔기로 계약했다. 그러나 이 전투기에 핵무기 탑재 가능성이 제기되자 지난해 미국은 파키스탄에 4억 6천만 달러의 위약금을 물고 이 계약을 취소했다. 이 때도 미국은 자국 업체의 손해를 고려해 뉴질랜드에 비슷한 규모의 제트기 판매를 중개했다. 최근 그리스에 10억 달러 규모의 패트리어트 미사일 시스템 수출에 합의한 레이던사의 존 위버 해외판매담당 사장은 최근에는 국무부나 국방부보다 상무부에서 무기의 해외판매를 적극 도와주고 있다”라고 말했다. 이처럼 미국이 해외무기 판매에 사력을 다하고 있는 이유는 냉전체제의 붕괴 때문.

 

미국 정부의 자국산 무기구매는 레이건 대통령 재임 당시 1천억 달러에 달했으나 클린턴 대통령 집권 이후 5백억 달러에도 못 미치다 보니 정부와 업체가 단합, 해외판매에 열을 올리고 있는 것. 이 때문에 미국 무기의 세계시장 점유율은 9017%에 불과했으나 97년 말 현재 44%까지 급상승했고 올해 더 늘어날 전망이다. 무기수출 부문에선 7년째 부동의 세계 1위다. 액수로는 지난 7년 동안 매년 1백40억 달러대를 유지하고 있으며 97년에는 1백60억 달러로 늘었다. 아랍에미리트 수도 아부다비에서는 14일부터 5일간의 일정으로 국제 방위전시회가 열리고 있는데 미국의 관심이 어느 때보다 큰 것도 이 같은 이유.

 

전 세계 41개국 8백여 무기회사들과 고위 국방 관계자들이 참석하고 있지만 첨단무기의 질과 물량, 판매전략과 로비력 등 모든 면에서 미국 한나라가 주도를 하고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 특히 미국은 지난해 5월 고어 부통령 방문 때 아랍에미리트와 합의한 50억 달러의 무기구매를 구체화하기 위해 전력을 쏟고 있다. 미국 무기의 세계지배를 위한 첨단무기 개발도 계속되고 있다. 록히드사는 이미 차세대 전투기인 F22 전투기를 개발 중이고, 미 정부가 계획하고 있는 21세기 연합공격전투기(JSF)' 개발을 위해 보잉사와 다투고 있는 실정. 예비역 해군제독인 잭사나한 장군은 “국제사회에서 오늘의 친구는 내일의 적이 될 수도 있기 때문에 미국은 무기를 팔되 그 무기를 능가할 수 있는 새로운 무기를 끊임없이 개발해야 하는 악순환이 계속되고 있다”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