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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타지 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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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적 흐름인가? 반짝 열풍인가?

 

뉴스메이커 1999. 2. 18. 

 

판타지 소설 열풍이 불고 있다. 기존 리얼리즘 위주의 정통문학에 정반대 되는 판타지 소설은 말 그대로 ‘환상’ 소설. 중대학생을 중심으로 한 젊은 층의 폭발적 지지를 힘입고 출판 시장의 주류로 떠오르고 있다. 열풍의 근원은 작년 한 해 동안 40만 부의 판매고를 올렸던 이영도 씨의 〈드래곤 라자(황금가지). 대학생 작가 김예리 씨의용의 신전(자음과 모음)15만 권 가까이 팔려나갔으며 최근 나온 귀환병 이야기(황금가지), 마왕의 육아일기(자음과 모음등도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불황에 빠진 출판계 사정을 감안한다면 엄청난 판매량이다. 이외에도 화제를 모으고 있는 판타지 소설은 수십 종이다. 시중에 나와 있는 것으로는 뱀파이어 헌터D〉(시공사), 〈저녁만찬〉(자음과모음), 〈하얀 로냐프강(자음과 모음), 파이로매니악(미컴), 로도스 전설(들녘), 메그(중앙 M&B), 악마의 묘약(황금가지),오트란토 성(황금가지) 등이 있고 속속 새로운 작품들이 쏟아져 나올 태세다.

 

게다가 판타지 작가가 되겠다는 지망생들도 엄청나게 늘어가고 있다. 판타지 소설은 순수문학작품과 다르다. 자유롭게 시공간을 넘나들면서 황당하고 환상적인 이야기 전개 형식을 갖는다. 어린 시절에 읽었을 법한 마녀나 마법사 이야기, 인어공주와 같은 환상적인 동화, 요정과 기사의 사랑이야기 등이 모두 판타지에 포함된다. 쉽게 생각해 현실적으로 있을 수 없는 일을 소재로 삼았다고 보면 된다. 문학장르로서의 판타지 소설이 정립된 것은 옥스퍼드 대학 교수이자 저명한 언어문헌학자였던 J.R.R. 톨킨에 의해서다. 1957, 그는 대표작 반지전쟁을 발표했는데 이 작품이 문학장르로서의 판타지소설의 효시로 꼽힌다. 그는 이 작품으로 96타임이 선정한 20세기 50대 작가에 선정되기도 했다. 톨킨은 주로 북구켈트 신화를 바탕으로 환상 세계를 창조해 냈으며 그 신화에 근거해 요정족(엘프), 난장이(드워프), 돼지처럼 생긴 괴물(오크), 드래곤, 그리고 인간 이외의 다양한 종족들을 만들어 냈다.

 

검과 마법이 다스리는 서양 중세풍 분위기에 모험 또는 역사나 전쟁이 주요한 소재. 서양작가들뿐 아니라 우리나라 작가들이 발표하는 대부분 판타지 소설도 톨킨이 만든 윤곽을 소설의 형식으로 따르고 있다. 서구에선 이미 판타지 소설이 문학의 주류로 편입되었으며 문학성 높은 작품들도 많이 나와 있다. 검은 고양이의 작가 에드거 앨런 포의 작품 아서 고든 핌의 모험은 대표적인 판타지 소설에 속한다. 일본에선 출판 시장의 3분의 1을 판타지 소설이 점령하고 있다. 판타지 문학은 출판 시장뿐 아니라 만화, 애니메이션, 컴퓨터 게임, 캐릭터 산업, 팬시용품 등 전반적인 문화상품과 연결돼 이미 거대한 문화산업으로 자리 잡고 있다. 국내에 판타지 소설이 상륙했던 것은 90년대 초 일본을 통해서다. 초창기엔 소설, 만화, 게임 등이 보급됐는데 일부 마니아들이 동호회를 만들어 PC통신상에서 돌려보는 수준이었다.

 

판타지에 대한 대중적 인식이 확산된 것은 9495년 국내에서 폭발적으로 유행한 컴퓨터 게임의 한 분야인 RPG(role playing game) 때문이다. 울티마〉 〈파이널 판타지등 대히트를 했던 RPG는 배경이나 등장인물, 줄거리 등 모든 면에서 판타지를 원용했다. 이런 RPG게임은 판타지에 대한 대중의 관심을 증폭시켰고 시간이 지나면서 직접 판타지 소설 쓰기에 나서는 마니아들도 늘어갔다. 이들의 주 활동 무대는 PC통신이다. PC통신은 본격적인 문학 진영에서 대접받지 못한 작품들이 유통되는 가장 큰 출구. 때문에 우리나라의 판타지 소설은 PC통신문학을 모태로 한다. PC통신은 속성상 문단을 거치지 않은 데뷔를 가능하게 했으며 다수의 작가 지망생들에게 자유롭고 적극적인 창작 활동을 하게 해 주었다. 사이버 공간을 아지트로 를 키워간 판타지 소설의 메가톤급 히트작들은 97년 <드래곤 라자>를 필두로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다.

 

앞서 소개한 판타지 소설 화제작들은 통신에 먼저 발표했던 것으로 대부분 수백만 회의 조회수를 자랑하고 있다. PC통신상의 글 읽기로 끝나지 않고 출판으로 연결된 것은 작년부터다. 40만 부 판매라는 〈드래곤 라자기록은 판타지 소설 출간 붐을 촉발시켰다. 그렇다면 판타지 소설은 왜 이토록 인기를 얻고 있을까. 전문가들은 이전의 정통 문학작품에서 보지 못한 감각적 재미와 자유로운 상상의 즐거움을 주기 때문이라고 평가한다. 또 어려서부터 서구적인 문화에 길들여진 신세대들에게 서양 전설의 마법사, 요정이 등장하는 이야기는 낭만적이고 환상적인 매력을 주는 데다 매우 친숙하게 받아들여진다. 판타지 소설 붐에 어느 정도 거품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PC통신상에 수없이 쏟아지는 글 속에서 출판할 책을 고르는 잣대는 조회수가 절대적. 독자가 얼마나 재미를 느끼느냐가 우선이기 때문에 문학적 검증은 미처 따르지 못한다. 모든 작품이 그렇다는 것은 아니지만 엉성한 플롯에 조잡하고 유치한 표현, 어그러진 문체가 종종 흠으로 지적된다. 무관심으로 일관하는 순수문학계와는 달리 젊은이들 사이에 이는 판타지 붐은 쉽게 사그라들지 않을 것 같다. 일본문화 개방과 더불어 판타지는 앞으로 문화 산업의 주류로 자리 잡게 되리라는 것이 일본문화전문가들의 전망. 용의 신전을 내놓은 자음과모음 측은 일본 판타지에 대항하겠다며 벌써부터 등장인물에 대한 캐릭터 작업을 마쳤고 게임 소프트웨어 개발 회사와 함께 컴퓨터 게임 개발에도 나섰다.

 

자음과 모음의 기획 담당자 김현주 씨는 “대중문화를 폄하하는 현학적인 문화계 풍토에서 판타지 소설은 하등의 가치 없는 것으로 치부될지 모른다면서도 좋은 작가와 작품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는 추세이기 때문에 문학의 주류로 자리 잡을 날도 멀지 않다”라고 전망한다. 문학평론가 장은수 씨는 비주류에 머물던 판타지 문학이 뜨고 있는 것은 세계적인 흐름이라며 판타지 문학에 대한 새로운 해석과 평가가 필요하다”라고 말했다. 한편 문화평론가 김정란 씨는 지금 유행하는 판타지 소설의 본질은 현실에 만족하지 못하는 갈증을 현실 도피적인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풀어내는 것이라며 지극히 가볍고 오락적인 형태 일색인 것은 바람직하지 못하다”라고 지적했다. 그는 또 판타지 문학이 주류로 편입되기 위해서는 작가들의 치열한 철학적 사유가 반영된 환상적 리얼리즘으로 발전해야 한다”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