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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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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도 무릅쓴 참사랑 만들기

 

중앙일보 1999. 1. 26. 

 

파키스탄 젊은 남녀의 목숨을 건 사랑이 보는 이들을 안타깝게 하고 있다. 거물 정치인의 딸과 천민 (賤民) 청년은 부모의 허락을 받지 않은 결혼으로 중형(重刑)에 처할 위기에 몰려 있다. 여자의 부모는 금지된 결혼에 격노, 신랑. 신부를 고향마을로 잡아와 재판에 회부하려고 한다. 뿐만 아니라 자객을 보내 사위의 목숨까지 노리고 있다. 후마리아 부트는 파키스탄 집권당인 이슬람연맹당 (MPA) 펀자브지구당위원장의 딸이다. 아버지 메흐무드 부트는 그녀를 친척 청년에게 시집보낼 계획이었으나 후마리아는 어려서부터 같은 동네에서 자란 천민출신의 마흐무드에게 이미 마음을 준 상태.

 

부모의 반대와 견고한 사회관습에 부닥친 20대 두 남녀는 눈물의 사랑놀이를 계속하다 가족들의 눈을 피해 결혼식을 올린 뒤 야반도주했다. 이들이 현재 체류 중인 곳은 파키스탄 북동부에 있는 펀자브의 반대편인 남서부의 항구도시 카라치. 이곳에서 후마리아의 부모가 보낸 자객을 피해 경찰의 보호를 받고 있다. 파키스탄 영자지 DAWN지에는 이들의 사연이 자세히 소개돼 있다. 문제는 이에 대한 파키스탄의 형벌이 매우 엄하다는 것. 매매혼 풍습의 영향으로 배우자는 부모가 정하고 부모의 동의 없이 결혼한 남녀는 족법(族法)에 따라 심할 경우 죽음에 이르는 돌팔매를 맞는 등 태형이 가해지기도 한다. 이 같은 관습은 펀자브와 파슈툰 같은 지역에서 완고하게 지켜지고 있다.

 

지난해 4월에는 파슈툰에서 여자 부모의 반대를 무릅쓰고 결혼식을 올렸던 한 청년이 살해되기까지 했다. 당시 칸와르 아산이라는 청년은 자신의 결혼을 인정해 달라는 청원을 내고 재판을 받던 중 법원 앞에서 신부 측에서 보낸 사람들에 의해 암살당했다. 경찰수사도 흐지부지되고 말았다. 후마리아의 부모 역시 무장괴한들에게 마흐무드의 목숨을 빼앗아 올 것을 지시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들의 문제가 부각되자 인권단체들은 두 젊은이의 결혼을 인정하라며 메흐무드를 압박하고 있다. 여성단체들도 여성은 스스로 배후자를 결정할 권리가 있다”라고 주장하고 나섰다.

 

후마리아의 부모는 여론이 불리하게 돌아가자 딸이 집에서 현금 20만 루피아와 귀금속을 가지고 달아났다며 펀자브 법원에 절도죄 혐의로 고소해 놓은 상태. 펀자브 경찰은 부모 편이다. 부모의 주장이 사실로 입증됐으며 두 사람은 펀자브 법원에서 재판을 받아야 한다는 결정을 내렸다. 두 젊은이는 메흐무드의 영향력이 절대적인 펀자브에서 재판을 받아 봐야 결과가 뻔하다”라고 호소하고 있다.

 

특히 후마리아는 펀자브에서 재판을 받으라는 것은 결국 마흐무드와 헤어지라는 것이라며 차라리 자살을 하겠다”라고 버티고 있다. 정부도 고민에 빠져 있다. 이들을 재판을 받게 할 경우 여성단체들이 여성의 결혼 결정권에 대한 헌법소원을 제출하겠다고 벼르고 있기 때문이다. 사연이 BBC 등 외국언론에 보도되면서 국제사회도 주목하기 시작했다. 그렇다고 젊은 부부의 주장을 받아들이기도 쉽지 않다. 사회의 오랜 관습이 무너지기 때문이다. 많은 기혼여성들이 결혼무효를 주장하고 나올 가능성도 있다. 이들의 기구한 사랑이 과연 어떻게 결말날지 관심이다.

 

파키스탄 결혼풍속

파키스탄에서는 민족과 언어. 지역에 따라 결혼문화도 각기 다르다. 그러나 국민 대부분이 이슬람교도이기 때문에 결혼을 앞둔 젊은이들은 ‘니카’라는 이슬람 사원에서 ‘이맘’이라는 사제에게 고하고 신의 허락을 얻어야 한다. 이때 니카에 가기 전 반드시 부모의 허락을 받는 것이 일반적이다. 특히 신족()이 주민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펀자브나 신드지방에서는 결혼 전에 부모의 허락을 받는 전통이 강하게 남아 있다. 부모의 허락을 받지 못한 젊은이들은 법원에서 결혼인정을 받을 수 없다. 법원에 신고조차 않고 결혼을 하면 신부의 부모는 남자를 붙잡아 합법적으로 태형에 처할 수 있다. 이후 경찰에 인계하면 20년가량의 징역형을 받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