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의 사랑이 그토록 깊은 줄은…
국민일보 1999. 1. 25.
아버지의 자식사랑은 자신을 경찰에 신고한 딸을 감싸 안았고 그 사랑에 딸은 참회의 눈물을 흘렸다. 친구와 술을 마시느라 새벽 2시에 귀가한 뒤 아버지가 꾸중하며 뺨을 때리자 경찰에 신고한 여고생 박모양(18). 지난 17일 새벽 서울 서대문경찰서에서 아버지(48․택시기사)와 함께 조사받을 때만 해도 “법대로 처리해 달라”는 뜻을 굽히지 않던 박양은 그 후 밤마다 죄책감에 잠을 자지 못했다. 박양의 ‘변화’는 아버지의 용서가 먼저 있은 뒤 일어났다. 112 신고 뒤 인근 파출소에서 1차 조사를 받을 때 “신고를 취소하라”라고 설득하는 경찰에게 박양이 “그러면 다른 기관에 신고하겠다”라고 고집부릴 동안 아버지는 입을 굳게 다문 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서대문경찰서 형사계로 넘겨져 딸이 피해자 자격으로 먼저 조사를 받고 귀가한 뒤 홀로 남아 담당경찰에게 정황을 진술할 때도 아버지는 “딸이 술을 마셔서 실수한 것 같다”라고 감쌌다. 날이 밝은 뒤에야 경찰서를 나선 아버지는 회사에 휴가를 신청한 뒤 딸을 불러 함께 아침 일찍 문을 여는 집 근처 갈빗집으로 갔다. 따끈한 갈비탕 국물을 놓고 딸과 마주 앉은 아버지는 IMF로 집안 형편이 어려운 얘기, 남의 집에 세 들어 사느라 그동안 잘해주지 못한 일, 경제적으로 어렵다 보니 어머니와 말다툼이 잦았던 얘기를 했다. 이틀 뒤. 서대문경찰서 담당 경찰들이 어머니 진술을 듣기 위해 집으로 찾아왔을 때도 아버지는 “어제 담임선생님을 만났더니 얘가 그래도 학교에선 별 말썽 안 피우고 조용히 잘 지낸답니다”라고 말했다.
“네가 날 신고했을 때 차라리 감옥에 가고 싶었어. 네가 잘못을 깨닫고 뭔가 깨우칠 수만 있다면 그렇게라도 하고 싶었다” 아버지 어머니와 함께 경찰들과 마주 앉아 고개를 숙이고 있던 박양은 아버지의 이 말에 마침내 소리 내 엉엉 울고 말았다. 경찰은 “조서를 작성할 때 박양은 아버지 어머니가 자주 싸우고 자기에겐 신경도 안 쓴다는 말을 했다”며 “경제적으로 어렵다 보니 집안 불화가 생겼던 것 같은데 지금은 오히려 더 화목해진 것 같다”라고 말했다. 경찰은 아버지가 딸을 때린 게 처음이고 사회적 상규에 어긋나지 않는 친권자의 정당행위라고 판단, 무혐의 처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