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부도난 내각제 - 空約된 ‘DJ 公約'
뉴스플러스 1999. 1. 28.
청와대 수석 통해 논의 연기 공식화..... JP 몽니가 태풍의 눈
15대 국회의원 임기(2000 년월) 전에 내각제 개헌을 한다는 97년 김대중-김종필(DJP) 대통령후보 단일화 합의는 많은 사람들이 예상했던 대로 물 건너 가는가. 그래서 국민회의와 자민련간 내각제 대전(大戰)의 포성이 급기야는 울리고 마는가. 집권 이후 내각제 문제에 대해 “경제가 우선”이라며 딴전을 피워오던 김대중대통령의 청와대가 1월 18일 드디어 ‘내각제에 별 뜻이 없어 보이는’ 속마음을 사실상 공개적으로 드러냈다. 김중권 비서실장 이강래 정무수석 박지원 공보수석 등 청와대 고위 참모들이 일제히 기자간담회 등을 갖고 이구동성으로 “지금 내각제 논의를 하면 혼란이 일어나 위기 수습을 못한다. 금년 중반기에도 어려운 상황이 예견된다.
자칫 제2의 브라질 위기가 올 수 있다는 위기의식이 팽배한 것 아닌가. 약속된 내각제 개헌논의 시한을 지키기 어렵다”라고 말했다. 김실장은 나아가 논의시한을 지키기 어렵다는 게 약속된 개헌시한(99년 말)을 지키기 어렵다는 뜻이냐는 질문에 “그게 어렵다는 것”이라고 분명히 말했다. 청와대 수석들이 대통령과 사전 교감 없이 그 같은 중대 사안에 대해 마음대로 왈가왈부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 결국 김대통령의 뜻이 그렇다는 얘기다. 김대통령이 국회 개헌 저지선(99석)을 넘는 105석을 확보한 국민회의의 총재라는 사실, 한나라당에도 내각제 반대세력이 상당하다는 사실 등을 고려하면 적어도 이번 국회의원 임기 내에 내각제 개헌은 ‘확실히’ 물 건너 간일이 됐다.
내각제의 운명이 그렇게 되리라는 것은 이미 예상됐던 일. 그러면서도 사람들은 ‘혹시나’하는 엷은 가능성마저 배제하지는 않았던 것이 사실이다. 99년 말까지 내각제 개헌을 한다는 것이 DJ의 선거공약이요, 공동 정부의 한 축인 김종필 총리와의 합의사항이란 점 때문이다. 또 약속위반이란 비판론과 JP가 예고한 ‘몽니’(심술궂게 욕심부리는 성질)를 어떻게 감당해야 할지 우려했던 것도 사실. 그래서 사람들은 DJ가 개헌의 제스처를 보이거나, 공식선언에 앞서 담판을 통해 JP의 요구를 일정 부분 수용하는 등의 우회로를 택할 것으로 전망해 왔다.
그러나 청와대는 정공법을 택했다. 이제 주목되는 것은 JP 측의 반응. 몽니부리겠다고 예고까지 했던 그가 쉽게 물러날 리 만무하고 보면, 그동안 총풍 세풍으로 바람 잘날 없던 한국정치판에 또 한차례 격동이 더해질 전망이다. 98년 북풍, 세풍이 돌개바람 정도였다면, 이번기의 ‘개헌풍’은 특 A급 태풍이다. 97년 DJP합의 때부터 예고됐던 것이긴 하지만, 막상 불기 시작하면 그 충격파는 엄청날 수밖에 없다. 전조가 심상치 않았다. 김중권실장 등은 99년 말 개헌 약속을 못 지키겠다고 공언하기에 앞서 1월 15일 열린 자민련의 대전-충남북 신년교례회를 꼬투리로 잡았다.
“대통령이 내각제에 대해 JP와 무릎을 맞대고 풀겠다고 말했는데, 그쪽(자민련) 사람들이 자꾸 왈가왈부하며 대통령을 비난까지 하는 것은 너무하지 않느냐”라고 청와대 참모들은 말한다. 자민련이 먼저 ‘도발’했기 때문에 불가피하게 대응한 것일 뿐이라는 논리다. 사실, 자민련 신년교례회에서 나온 발언은 ‘도발적’이었다. 이날 신년 교례회는 김총리와 박태 준총재가 불참한 가운데 시-도지부기주관 형식으로 열렸다고는 하지만, 자민련 주력인 충청권 의원들로서는 바로 그렇기 때문에 더욱 거침없이 속말을 퍼부어 댈 수 있는 기회이기도 했다. DJP합의 이행에 소극적인 김대통령과 청와대-국민회의에 대해 자민련이 불만을 터뜨려 온 것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그러나 1월 15일 신년교례회 발언들은 그 양상이 달랐다. DJ 집권 직후 국민회의와 자민련이 98년부터 내각제를 추진한다는 DJP합의를 일부 수정, “98년엔 경제위기 극복에 주력하고 내각제 논의는 99년에 시작한다”는 묵시적 동의를 지켜온 끝에 나온 ‘계고장’이라는 점이 과거와는 다르다. 원안은 고사하고 수정 합의라기도 지켜야 하지 않느냐는 항변인 만큼 설득력을 얻을 수밖에 없다. 해가 바뀌었는데도 청와대의 태도는 여전히 소극적이고, 국민회의와 자민련의 합당론 같은 ‘엉뚱한’ 소리만 하니 자민련으로서는 격앙되지 않을 수 없었던 것.
합당론에 대해 자민련 사람들은 내각제를 회피하기 수단을 넘어, 자민련에 자중지란을 불러와 완전 무력화시키려는 ‘음모’라는 시각이 팽배하다. “JP가 DJ와 합당하면 자민련은 끝장이다. 설혹 JP가 어물어물 합당에 합의한다 해도 나는 따라가지기 않겠다”는 극단론까지 나오는 실정. 청와대로서는 자민련의 이런 강경기류에 한번 밀리기 시작하면 계속 밀릴 수 있다는 판단을 했음직하다. 1월 18일 청와대 참모들의 정면대응 발언이 나오게 된 계기도 그런 맥락에서 찾을 수 있다.
이에 대해 자민련은 이날 총재단 회의에서 “김대통령과 김총리 두 분의 얘기만 진실이고 주변 사람의 말은 갈등과 정국불안만 야기한다. 대통령을 보좌하는 사람은 언행을 보다 신중히 해야 한다”라고 결론 내는 등 일단은 격한 대응을 자제하기는 모습을 보였다. 한편으로는 청와대의 진의를 탐색하는 데 열중하기는 모습도 보였다. 청와대 참모들도 “약속을 지킨다는 대통령의 뜻은 확실하다. 내각제 문제는 두 분이 풀어갈 것”이라는 유화적 원론을 말하는 것을 잊지 않고 있다. 그러나 이미 불기 시작한 ‘개헌풍’이다. 속으로 부글부글 끓고 있는 자민련으로부터 발생한 개헌풍이 정치권을 강타해 폭풍우를 내리붓기는 것은 어차피 시간문제인 듯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