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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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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은.... 고단한 삶을 먹고

 

뉴스플러스 1999. 1. 21. 

 

한국 행복도 23이웃과 더불어 사는 삶 중요

모두가 희망을 갖고 있다. 때로는 농담도 하고 나라의 장래에 대해 얘기하기도 한다. 내 걱정은 말아라. 이곳에서 내 역할을 다하는 것이 행복하다…. ”97년 2월, 페루 주재 일본대사관저에서 테러범들에게 인질로 잡힌 신부가 동생에게 보낸 편지다. 그는 목덜미에 기관총이 겨눠진 상황에서도 희망과 평정을 잃지 않고 다른 인질들을 위해 미사를 집전하고 고해를 들어줬다. 대치 도중 범인들이 자신을 풀어주자 "나를 필요로 하는 사람이 많다"며 사지(死地)에 남기를 자청했다. 최악의 조건에서 스스로 찾아낸 소임에 기꺼이 행복해한 것이다. 물질적 풍요가 행복의 척도라면 우리는 너무나 불행한 시대를 살고 있다. 많은 것을 잃었고, 그래서 예전과 비교하면 많은 것이 부족하기만 하다.

 

이런 고통을 딛고 우리는 새해에 다시 행복해질 수 있을까? 혹은 이 시대에 우리의 행복의 기준은 무엇일까. 적어도 경제지표는 희망적이다. 경기가 되살아날 조짐을 보이고, 금융가에는 돈이 넘쳐난다. 깎인 봉급을 증권시장에서 넉넉히 보상받은 이들도 적지 않다. 그러나 부의 축적이 곧 행복한 미래를 약속하지 않는다는 진리는 지금처럼 어려운 시기에 더욱 귀담아들을 만하다. 이런 때야 말로 지금껏 우리 사회의 정신적-문화적 불행을 초래했던 물질 만능주의와 성장의 신회를 떨쳐 낼 수 있는 기회다. 영국 런던정경대학에서 54개국 국민이 느끼는 행복도를 조사한 결과 방글라데시 아제르바이잔 나이지리아가 13위를 차지했다.

 

한국은 23, 스위스 독일 캐나다 일본 미국 등은 40위권, 물질적 포만도가 일정한 수준을 넘어서면 소득상승이 더 이상 개인의 행복에 영향을 주지 않는다 비해 가난한 나라의 주민들은 가족 친구 이웃 등의 끈끈한 인간관계에서 안정을 느끼고 이것을 행복한 삶으로 받아들인다는 얘기다. 경기가 좀 좋아진다고 해서 삶의 질까지 덩달아 높아지는 것도 아니다. ‘세계시장이라는 단일화된 경쟁체제에서는 결코 모두가 승리할 수 없다. 오히려 수많은 사람들이 패배하고, 이긴 사람들도 새로운 싸움을 위해 여유로운 삶을 유보한 채 더 많은 시간과 노고를 쏟아부어야 한다. 겨우 20의 사람들만이 좋은 일자리와 안정된 생활을 누리고, 나머지 80는 실업자 상태 혹은 임시직을 전전하며 소수가 생산하는 부에 기생하는 이른바 ‘20대의 80의 사회가 현실로 다가서고 있다.

 

경제학자 찰스 핸디는 “ ‘하나 더를 지향하는 양적 성장 대신 보다 더를 지향하는 질적 성장을 추구해야 하며, 이를 위해서는 부족한 상태를 충분하다고 받아들일 수 있는 헝그리정신이 필요하다”라고 강조한다. 이렇게 본다면 지난해부터 계속된 경제위기는 긍정적인 역할을 한 측면도 있다. 지난해의 월평균 가계소득은 98년에 비해 23.4줄었다. 이와 함께 월평균 사교육비 지출액은 24.4, 외식 횟수는 72.3, 축의금과 조의금 지출액도 23.0줄었다. 과소비 총동구매 고액과외 과시욕 편승구매 등 갖가지 거품이 빠지고 기대 수준이 낮아지면서 합리적인 소비의식이 확산된 것.

 

강북삼성병원 이시형박사(정신과)는 “쉼 없이 올라가기만 하다가 갑자기 내려온 탓에 충격이 크겠지만, 춥고 어려워봐야 비로소 진정한 행복감을 맛볼 수 있다주변의 사소한 일상에서 행복을 느낄 수 있도록 풍부한 상상력과 감상을 동원해 끊임없이 자기 최면을 걸라”라고 충고한다. 대량실업과 부의 편중, 사회적 우대의 단절 등으로 인해 상대적 박탈감을 느끼는 사람들이 늘고 이들을 제대로 포용하지 못하면 비민주적, 국수적, 극우성량의 분위기가 팽배해질 수도 있다. 일각에서는 고통의 희새양을 앞세운 파시즘의 준동 가능성까지 우려하기도 한다. 사회보호 대상자와 실업자 장애인 노인 등에 대한 복지제도를 축소하려는 움직임이 가속화될 수도 있다.

 

거품 속에서 성장기를 보내며 궁핍한 삶을 경험해보지 못한 1020대가 취업에 실패한 채 사회로 방출될 경우 극히 반사회적인 형태로 혼란을 야기할 수도 있다. 이는 개인이 마음을 다잡고 자기 최면을 걸어댄다고 해결될 문제들이 아니다. 이 대목에서 강조돼야 할 것이 지역사회를 기반으로 한 공동체운동이다. 구성원들이 동질감을 잃고 산산이 흩어진 사회에서는 참다운 민주주의가 구현될 수 없고, 개인의 행복도 기대할 수 없다. 시민들 스스로 연대해 동질감을 회복하고, 기본권을 수호하고, 소득의 공평한 분배를 가로막는 잘못된 조세체제를 바로잡고, 소외된 이웃을 지원하기 위해 나서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가족이기주의를 넘어서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서울대 장경섭교수(사회학과)가족만이 불확실성의 시대에 자신을 보호해 주고 자신을 배신하지 않으며, 다라서 가족이 자신의 지원을 받을 자격이 있는 유일한 집단이라고 인식하는 태도 때문에 모든 면에서 가족 중심적인 삶을 추구한다. 따라서 가족은 일종의 기능적 과부하를 겪게 되고, 이 때문에 오히려 가족을 약화, 해체시키는 결과를 초래한다”라고 지적한다. 이기적인 무한경쟁의 논리가 가족에까지 확산되면 사회전체가 불행해진다. ‘헤아림의 폭을 이웃과 지역사회로 확대해 나갈 때 모두의 행복을 꿈꿀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