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우. 옴개구리. 거머리. 살모사 나라 보물창고
국민일보 1998. 12. 25.
우리 주변에는 아직도 외제라면 무조건 좋아하는 사람들이 많다. 가전제 품에서 먹는 물까지 남의 나라 것이면 무조건 갖고 싶어 안달을 한다. 하지만 그들과는 반대로 우리 토종만을 찾고 연구하느라 안달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것도 첨단 기자재와 이론으로 무장한 과학자들이 그렇다. 올해 초 서울대 유전공학연구소 이병재 교수팀이 토종 옴개구리의 피부에서 ‘개구린’으로 명명된 새 항생물질을 분리해 대량생산에 성공했다. 4월에는 재래종 한우의 보존과 활용방안을 연구하는데 30년을 바친 건국대 한상기 교수가 토종 한우의 우유에서 새로운 형태의 칼슘 흡수 촉진물질을 찾아 국내외 특허를 획득했다.
이외에도 여러 과학자들이 거머리에서 ‘거머린’으로 이름 붙인 항응고 물질을 찾았고 토종 살모사의 독에서 ‘살모신’이라는 항암 단백질도 발견했다. 백혈구 증식인자가 함유된 젖을 생산하는 형질전환 토종염소도 나왔다. 토종 찾기는 동물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토종 음식인 신 김치가 암세포의 전이를 억제한다는 연구부터 한국인의 장에서 분리한 유산균으로 요구르트를 만드는 연구소까지 토종을 다루는 과학의 범위는 매우 넓다. 최근에는 서울대 분자미 생물학연구센터가 새로 발견한 3종의 토종미생물에 홍순우 교수의 성(姓)과 우리나라의 영문명을 따서 학명을 짓기도 했다. 과학자들이 이토록 토종을 찾아 헤매는 데는 단지 우리 몸에 우리 것이 제일이라는 상투적인 말보다 더 큰 이유가 있다.
환경보호나 생물다양성 보존 등 자국의 생태계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칠 뿐만 아니라 새로운 의약학이나 생물공학의 발전에 초석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동식물이나 미생물에서 발견되는 생리활성물질이나 기능에 대한 연구는 큰 의미를 가진다. 의약품 개발이나 특허문제에 관련된 이 분야 연구는 총칼 대신 현미경과 펜을 든 전쟁터나 다름없다. 말라리아의 특효약인 키니네가 말라리아 발생지역에서 자라는 식물의 추출물이었듯이 우리가 살고 있는 이 땅의 토종생물들은 무한한 잠재력을 가진 보물창고다. 세계각국이 생물자원 및 유전자자원을 국가적으로 보호하고 상품화하려는 현시점에서 토종 유전자자원을 찾아 보존하고 개량하는 일은 반드시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