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폭투하, 후회하지 않는다
경향신문 2005. 8. 5.
오는 6일은 인류 역사상 처음 원자폭탄이 일본 히로시마에 떨어진 지 60주년이 되는 날이다. 2차 대전이 막바지로 접어든 1945년 8월 6일 오전 8시 15분. 미국의 B-29 폭격기 ‘에놀라 게이’호가 일본 히로시마 상공으로 날아들었다. 히로시마 전역에는 경고 사이렌이 울려 퍼졌고, 시민들은 일상적인 미군 폭격으로 생각하며 방공호로 숨었다.
‘에놀라 게이’호는 히로시마 9,600m 상공에서 길이 3m, 지름 71㎝, 무게 4t짜리 폭탄 1개 만을 떨어뜨리고 북쪽으로 기수를 돌렸다. 폭탄의 이름은 ‘리틀 보이’. 인류가 최초로 실전에 사용한 원자폭탄이었다. ‘리틀 보이’는 히로시마 상공 580m 지점에서 터졌으며 폭발 지점의 온도는 섭씨 100만도, 주변 600m 내는 2천 도까지 치솟았다. 군인 4만 명 등 35만 명이 살던 히로시마는 순식간에 폐허로 변했다.
제2차 세계대전을 종식시키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고 전 세계에 핵무기의 가공할 파괴력을 인식시켜 준 ‘히로시마 원폭투하’. 당시 원폭을 투하했던 승무원들은 어떤 심정이었을까. 4일 영국 BBC 방송에 따르면 히로시마에 원폭을 투하했던 ‘에놀라 게이’호의 한 승무원이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후회하지 않는다”는 내용의 성명을 발표했다.
지난달 25일에는 미국의 타임지가 히로시마․나가사키의 원폭투하에 관한 특집기사에서 원폭투하 작전에 참가했던 폭격기 승무원들의 증언을 실었다. ‘에놀라 게이’에 탑승했던 승무원들은 원폭투하 후 솟아오른 버섯구름을 봤을 때‘전쟁은 끝났다’고 생각했으며, 한 승무원은 투하 당시의 소감에 대해 “음울한 순간이었다. 밑에서는 많은 사람들이 죽어갔으며 ‘기쁨’은 없었다”고 증언했다. 로이터 통신은 6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당시의 참상을 전하는 사진과 영상이 미국에서 금기시되고 있다고 3일 보도했다.
피폭현장을 담은 영상은 미군 승무원이 기록한 컬러판과 일본의 흑백판 두 가지. 살과 뼈가 뜯겨 나간 시신이 널려 있는 화면의 공개를 막기 위해 미군은 전후 이들을 입수해 모두 군사기밀로 분류했으며 일본판은 1960년대 말 기밀이 해제되어 본국으로 돌아갔다. 1980년대까지 당국에 의해 그 존재가 부인되어 한 번도 전파를 탄 적이 없는 미군의 컬러판이 6일 케이블 TV를 통해 방영될 예정이다. 한편 5일 일본 언론은 원폭투하 60년을 앞두고 세계적인 핵 확산 사태를 우려하며 비핵․평화 정신이 담긴 현행 일본헌법의 개정 움직임에 깊은 우려를 표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