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 때문에 갈라선 ‘달동네 이웃’
문화일보 2005. 06. 15.
북한산 자락에 위치한 서울 서대문구 홍은2동 산 1-96번지와 산 1 3번지. 지난 70년대부터 지방 이주민과 도심개발에 쫓겨 온 영세민이 하나, 둘씩 모여 호박을 키워온 이곳은 ‘호박골’로도 불 린다. 오순도순 이웃의 정을 나누면 살던 160여 가구가 이젠 개발 이익을 놓고 ‘재건축파’와 ‘재개발파’로 두 쪽으로 갈라서 등을 돌리고 살고 있다. 이곳에 ‘갈등의 씨앗’이 뿌려지기 시작한 것은 9년 전인 96년 재개발을 추진하면서부터. 주민들은 96년 재개발추진 위원회를 구 성해 재개발을 추진했다.
하지만 98년 북한산 일대 재개발 규제가 강화되자 개발방향은 재 건축으로 선회했다. 재개발은 서울시 심의를 받아야 하지만 재건 축은 구청 전결로 개발이 가능했기 때문에 주민들이 손쉬운 길을 선택한 것이다.
주민들은 마을 소방도로를 경계로 개발지역을 산 1-96 일대와 산 1- 3 일대 등 2개로 나눠 조합 설립인가를 마쳤다. 재건축은 순조롭게 진행되는 듯했다. 그러나 2003년 7월 도심 및 주거환경정비 개정안이 시행되면서 재건축은 ‘된서리’를 맞게 되었다. 개정안에 따라 당초 ‘13층, 용적률 210%’로 돼 있던 개발안이 ‘7층이하, 용적률 180%’로 재조정된 것이다. 용적률 감소로 개 발이익이 크게 감소하면서 주민 간의 갈등이 노골화됐다. 땅을 소유하고 있는 원주민과 투자이익을 노리고 이주했던 주민들은 “계속 재건축을 하자”고 했으나, 소유한 땅이 적은 원주민과 국공유지 무허가 거주자들은 개발이익이 많은 ‘재개발로 하자며 맞서면서 양측의 반목은 깊어만 갔다.
두 패로 나눠진 주민들 중 산 1-96 주민들은 지난해 12월 독자적으로 재건축 사업승인을 신청해 승인을 마쳤다. 그러나 산 13번지는 재개발파 주민과 재건축파 주민들이 입장이 팽팽히 맞서면서 결국 조합장 변경을 싸고 법적 소송까지 벌이고 있다. 원주민과 이주민간의 갈등처럼 시작된 싸움은 시간이 지나면서 경제적 여건이 다른 원주민들도 둘로 나눠지면서 반목과 갈등은 좀처럼 해법을 찾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20년 넘게 이곳에 산 김 모 씨는 “이“ 지역을 재개발할 경우 아파 트 10층 이상 건축이 가능하며 용적률도 상향조정할 수 있다”며 “그런데도 재건축에 연연하는 것은 서둘러 사업을 마무리해 서 한몫 챙기려는 사람들의 수작”이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주민 서 모 씨는 “재개발 규제 강화로 10층 이상 가능하다 는 것은 말도 안 된다”며 “재개발로 갈 경우 설립인가와 구역지 정등 또 3~4년이 더 걸리는데 누가 기다리냐”고 반박했다. 주민들이 싸우는 사이 피해자도 속출하고 있다. 박 모 씨는 지난 2003년 36평 자신의 집을 “시가보다 높은 가격에 사겠다”는 시행대행사의 말만 믿고 계약금 2000만 원에 매매계약서를 작성했다. 그런데 얼마 전 시행대행사가 재건축 동의서나 매매계약을 승낙한 가구에 대해 강제매도 청구를 신청한 것이다.
이럴 경우 집주인은 보상가(평당 420만 원)로 조합에 집을 매도할 수밖에 없게 돼 현 시가보다 1억여 원 손해를 봐야 한다. 주민 손 모 씨는 “주민 중 80~90%가 무허가건물에 거주하는 사람인데 이 들은 불하대금을 갚고 나면 몇 천만 원만 손에 쥐고 거리로 쫓겨 날 판”이라고 말했다. 한 주민은 “주민들이 자기의 이익만 챙기려고 싸우는 사이 돈도 잃고 정도 잃었다”며 “차라리 힘들고 어려웠지만 정이 돌던 옛날이 그립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