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자들 왜 교회를 떠나는가?
크리스찬저널 2005. 03. 05
포스트 크리스천 시대를 맞는 교회의 오늘과 내일
LifeWay(남침례교 소속) 리서치에서 미국과 유럽, 캐나다 성직자들을 대상으로 벌인 설문조사 ‘현대 교회가 당면한 문제 톱 10’의 결과가 매주일 한 가지씩 웹사이트에 올라오고 있다. 10위는 낙태, 9위는 동성애, 그리고 금주에는 8위 관련성을 성직자들이 꼽았다. 오늘날 목회자들은 이상보다는 경험을 추구하고, 성경을 권위 있는 진리의 유일한 근원이라 생각지 않는 ‘포스트 모던 사회, 포스트 크리스천 사회에 다가가고 있는 중이다.
그런 사회의 일원들과 관련을 맺지 못한다면 교회의 미래는 어찌 될 것인가’라고 걱정하는 목회자들이 있는 반면, ‘약한 자들에게는 내가 약한 자와 같이 된 것은 약한 자들을 얻고자 함이요 여러 사람에게 내가 여러 모양이 된 것은 아무쪼록 몇몇 사람들을 구원코자 함이니’(고전 9:9)라면서 바울이 유태인의 회당이 아닌 하나님이 누구인지 모르는 로마인들 가운데서 행한 설교를 떠올리는 이들도 있다. 복음은 현대 이전이나 현대 후기를 살아가는 이들에게 모두 해당된다는 것이다. 부박한 현대인들에게 과연 교회가 빛과 소금이 될 수 있는가? John D. Duncun은 기독교인들이 교회를 떠나는 이유와 그들을 어떻게 다룰 것인가에 대해 분석한 글을 다음과 같이 발표했다.
1. 빈약한 지도력 - 어느 가족이 교회를 떠난다고 하여 그들 가정을 방문하였다. 그들에게 정직하게 이유를 말해달라고 하자, “우리는 당신이 일을 처리하는 방식이 싫어요”라고 답했다. 젊은 성직자 시절에 미숙한 경험은 늘 빈약한 결론을 끌어냈다. 재정적인 문제는 교회를 불안하게 만들었다. 도덕적인 문제들은 교회를 타락시켰다. 비전의 결여는 내적인 병을 키웠다. 신자들이 문젯거리에 대해 비난하기 시작했다. 내가 그들의 지도자였기 때문에 손가락은 늘 나를 향하고 있었다. 그때 시무한 지 겨우 6개월이었는데, 나 나름의 분석과 진단으로 치유를 하려고 노력했지, 사람들의 말을 경청하지 않았다. 나는 혼자서 문제를 해결하려 들었다. 그 결과는 신자들이 교회를 떠나고 말았다.
2. 색다른 양식 - 신자들이 당신의 교회를 떠나면 그들은 아마 다른 교회 순방을 할 것이다. 다른 양식의 목회를 원하기 때문이다. 그들은 설교나 예배의 색다른 양식을 구한다. 그들은 어떤 특별한 음악에 목말라 있다. 또한 다른 교회나 목사, 다른 도시에서 본 경험들에 의거해 자신의 교회 목사에게도 기대를 품는다.
3. 독특한 프로그램 - ‘어떻게 우리 교회를 찾았는가?’ 한 여인에게 물었다. ‘청소년 프로그램에 대한 소문을 들었다. 친구들이 말해 주었다’ ‘왜 우리 교회를 떠났는가?’ 떠나간 신자에게 물었다. ‘새 교회의 음악 선교가 정말 좋다.’
4. 환멸 - 윌리엄 D. 핸드릭스는 교회의 ‘어두운 측면’에 대해 이야기한다. 그는 책에서 교회를 떠나는 사람에 관한 수많은 이야기들을 자세히 그리고 있다. ‘교회 참여율이 올라간다는 빛나는 보고에도 불구하고, 북미의 점점 더 많은 기독교인들이 교회와 기독신앙의 형식적이고 획일적인 표현에 환멸을 느끼고 있다(Chicago: Moody Press, 1993). 이들은 좌절감을 느끼면서 건축 위주의 관료적인 교회를 스스로 떠나버린다.
5. 내적인 상처 - 가까운 신자가 점심 초대를 하더니 교회를 떠난다고 했다. ‘교회에서 즐거웠답니다’라고 부드러운 인사를 했다. 일 년 뒤, 그들 부부가 이혼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들은 교회 안에서 도움을 구하지 않고 달아나 버렸다. 절대절명의 파경을 그들은 도피를 통해 손쉽게 처리해 버렸다. 내적인 상처 때문에 모두가 떠나는 것은 아니다. 어떤 이들은 그들의 상처에 대한 해답을 교회 밖에서 구한다.
6. 교회의 크기 - 교회에서 만나고 싶었다는 일상적인 내 인사에 떠나간 신자는 ‘그렇게 자연스레 말하지 말라. 이 교회가 우리에겐 너무 크다. 더 작은 교회가 편하다’고 답했다. 종종 교회는 지나치게 커진다. 반대로 너무 작은 교회도 문제다.
떠나는 신자를 어떻게 다루나
1. 문제로부터 배운다. 경청하고 배운다. 나 자신에 대해서도 깨우친다. 하나님으로부터 더 많이 배운다. 신학교 학생이 멘토를 찾았다. ‘그만둘 준비가 되었다’고 절망의 음성으로 중얼거렸다. “가장 좋은 부제들 중의 하나가 교회를 떠난다. 그는 나 때문에 떠난다고 말한다” 멘토는 대답했다. “시무한 교회마다 나 역시 많은 신자들을 잃었다. 신의 부르심에 초점을 맞추라. 사람들의 말을 듣고 배워라. 열심히 일하고 주님을 사랑하라. 그런 다음 기억하라. 언제나 모든 이들의 종을 울릴 수 없다는 것을. 신을 신뢰하고 주님 섬기는 일에 최선을 다하라.” 신자들이 교회를 떠날 때 당신이 무엇을 할 수 있는지 배워라. 배우면서 안주하지 말라. 너무 많은 분석은 오히려 당신을 마비시킨다. 배우는 대로 성장하라. 그런 다음 다시 일로 돌아가라.
2. 그들을 위해 기도하라. 그들이 영적인 양식을 먹을 수 있는 교회를 찾도록 기도하라. 하나님에게 그들의 상처를 치유해 달라고 기도하라. 그들이 방황할 때에는 주님의 인도를 청하라. 그들을 위한 기도는 그들의 영적인 삶을 풍요롭게 한다. 또한 떠난다는 아픈 말을 할 때, 그들을 향한 당신의 태도에 용기를 부여한다.
3. 문을 열라. 신자들이 떠나면 가게 하라. 축복해 주되 돌아올 수 있도록 문을 열라. 유진 피터슨은 목회자들에게 자기도취에 빠지지 말라고 경고한다. 하나님은 사람을 통해 당신의 일을 하신다. 교회는 시계의 째깍거림처럼 율동적으로 나아간다. 거칠게 들리겠지만 성직자도 교회의 일원이 되어 강한 믿음을 가지고만 있다면 교회들은 잘 운영될 것이다. 물론 떠나는 신자들이 그립다. 그러나 하나님은 늘 새로운 신자들을 보내주시는 방법을 가지고 있다. 중요한 것은 교회는 주님의 것이라는 점이다. 뒷문을 열어두면 하나님은 정문에 두 배의 신자를 데려오신다.
교회가 유연하게 대처할수록 성장할 수 있다. 신자들이 교회를 떠나지 않게 하는 비결은 높은 기대감이다. 효과적인 일치를 위해 많은 방법이 쓰여지고 있음에도, 기대치가 중요하다는 게 밝혀졌다. 실로 기대치가 높은 오늘의 교회는 일 세기 교회가 지녔던 특징을 가지고 있다. 효율적인 일치의 교회들은 신자들을 교회와 분리시키지 않고 활동적으로 움직이게 만든다. 효율적으로 신자와 일치를 이루는 교회들은 신자들에게 품는 기대감이 높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