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카테고리 없음

서우얼

728x90
반응형

서우얼(首爾)’

 

조선일보 2005. 01. 21.

 

어렵게 가는 유학길이니 너도 열심히 공부해서 덕국(德國)의 변 선생(邊先生)처럼 훌륭한 음악가가 되도록.” 일제시대 어느 문인의 회고록에 나오는 한자식 지명 표기에 관한 일화다. 유학 떠나는 아이에게 독일의 베토벤 같은 대가가 돼 돌아오라는 당부의 말이다. 그 ‘덕국’의 수도가 중국어로 ‘보린(柏林․베를린)’이다. 파리를 巴黎, 런던을 倫敦으로 쓰는 거야 어느 정도 알려져 있지만 시카고를 芝加哥, 암스테르담을 阿姆斯特丹이라고 쓴다는 대목에선 슬며시 웃음이 나온다.

 

이들 도시에 대한 중국어 발음은 그 나라 국민들의 현지 발음에 상당히 가까운 편이다. 문제는 대한민국 수도 ‘서울’에 대한 중국인들의 표기와 호칭이다. 세계 모든 나라가 ‘서울’이라고 부르고 있는데 유독 중국인들만 (한성)’ 으로 쓰고 ‘한청’이라 발음하고 있다. 보다 못한 서울시가 몇 년 작업 끝에 ‘서울’에 적합한 중국어 표기로 首爾(서우얼)’ 을 확정, 중국인들을 상대로 호칭 바꾸기 사업에 나섰다.

 

대한민국 수도를 ‘서울’이라고 부르기 시작한 것은 1946815, 해방 후 첫 광복절 때부터였다. 그전에 임명됐던 두 명의 서울시장은 경성 부윤’으로 취임했다서울의 명칭은 1395년 조선왕조의 한양 천도 후 500년 동안 ‘한성(漢城)’이었다가 1910년 한일병합과 함께 경성(京城)’ 으로 바뀌었다. 광복 후 새나라 출발의 의미를 담아 서울이 됐으나 중국인들은 계속 조선시대 명칭인 ‘한성’을 써오고 있는 것이다.

 

중국에서 누가 서울대 총장에게 초청장을 보냈는데 겉봉에 ‘城大’라고 쓰는 바람에 다른 데로 갔다는 일화가 있다. 중국에 진출한 한국 기업들 가운데 서울 상사’와 ‘한성 상사’가 헷갈린 경우도 있었다고 한다. 이런 세세한 문제 말고도 15억 명이 서울을 제 이름과 달리 부른다는 것은 보통 일이 아니다. 도시의 정체성에까지 관련되는 일이다.

 

▶ ‘서우얼(首爾)’에 대해 모두가 동의하는 것은 아니다. 중요한 것은 일단 정했으면 꾸준히 홍보, 설득해 정착시키는 일이다. 성패는 중국인들의 태도에 달렸다. 그들이 안 쓰면 그만이다우리가 중국 수도 베이징(北京)을 청나라 시대 명칭인 연경(燕京옌징)’ 으로 부르면 좋겠는가. 외국인들은 이 도시를 처음엔 광둥식으로 ‘패킹’이라 부르다 현지 발음에 맞게 불러달라는 중국의 희망에 따라 ‘베이징’이라 부르게 됐다. 이런 역사적 과정을 중국인들에게 돌아보도록 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