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빈층으로 내몰리는 서민층
동아일보 2004. 12. 28.
“어쩌다 이 지경에까지 이르게 됐는지….”
서울 양천구에 사는 김 모 씨(45․여)는 지난 1년이 악몽 같기만 하다. 1년 전만 해도 넉넉지 않은 생활이었지만 분식집에서 일해 버는 150만 원으로 남편과 아들을 포함해 세 가족이 먹고사는 데 큰 지장이 없었다. 생계유지에 문제가 생긴 것은 올해 3월 일하던 분식집이 장사가 안돼 문을 닫으면서부터. 덤프트럭을 운전하다 1997년 외환위기 때 그만둔 남편은 여전히 직장을 못 구한 상태였다. 유일한 수입원이 떨어져 나가면서 남편의 손찌검이 점차 심해졌다. 5월 어느 날 온몸에 멍이 들 정도로 남편에게 얻어맞은 김 씨는 이렇게 살다가는 맞아 죽겠다는 생각에 미련 없이 이혼했다. 딱한 처지를 알게 된 교회 전도사의 도움으로 거처를 마련해 6월부터 지하철역 주변에서 토스트 장사를 했지만 하루 수입은 1만~2만 원 정도. 그나마 남편에게 얻어맞은 후유증 때문인지 허리와 다리가 너무 아파 토스트 장사마저도 지난달에 그만둬야 했다.
서울 구로구에 사는 강모 할머니(71)도 짧은 시간에 극빈층으로 곤두박질쳤다. 군인이었던 남편이 세상을 뜬 뒤에도 할머니는 변호사사무실에서 착실하게 일하던 아들 덕분에 별 걱정 없이 살았다. 그런데 3년 전 사업을 시작한 아들은 2년이 채 못돼 부도를 냈고, 은행과 카드사의 빚 독촉에 견디다 못해 집을 나가버렸다. 곧 며느리마저 가출해 강 할머니는 졸지에 손녀딸 2명을 먹여 살려야 하는 처지가 됐다. 동사무소가 실시하는 취로사업으로 한 달에 버는 돈은 30만 원 선. 최근엔 무릎이 아파 이마저도 쉽지 않다.
▽열 명 중 한 명은 빈곤층 = 김 씨와 강 할머니처럼 어느 날 갑자기 빈곤층으로 추락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10월 현재 소득이 최저생계비(올해 4인 가족 기준 105만 5090원)에 미치지 못해 기초생활보장수급자로 선정된 사람은 141만 5000명으로 지난해 말보다 4만 1000명 늘었다. 보건복지부는 소득이 최저생계비의 100~120% 수준인 ‘잠재적 빈곤층’ (109만여 명)과 소득은 최저생계비 이하지만 전세비 등 재산(중소도시 3100만 원 이상)이 고려돼 기초생활보장 대상자에서 제외된 ‘비(非) 수급 빈곤층’ (248만여 명)을 포함하면 전체 빈곤층이 500여만 명에 이르는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국민 10명 당 한 명은 빈곤층에 속하는 셈이다.
▽늘어나는 실업자와 노숙자=노동부에 따르면 올 1월부터 지난달 말까지 실직으로 인한 실업급여 신청자는 42만 6625명으로 지난해 말보다 무려 5만 명 가까이 늘었다. 이는 1997년 외환위기(43만 8465명) 이후 최대 수치다.
거리의 노숙자들도 다시 늘고 있다. 지난해 말 2700명 선까지 줄었던 서울의 노숙자는 최근 들어 2900명 수준으로 늘었다. 특히 올해는 청년 실업자가 늘어나면서 이전에는 드물었던 20, 30대 청년 노숙자가 전체 노숙자의 10~20%가량을 차지할 정도로 급증했다.
▽여전히 부족한 복지 예산=생계가 막막한 사람들이 늘고 있지만 정부의 복지예산은 선진국과 비교할 때 차이가 크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신영석(辛泳錫․연구위원) 박사는 “불황이 심화되면서 저소득층이 급속히 빈곤층으로 추락하고 있다” 며 “이들을 위한 사회안전망 구축이 시급하다” 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