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지
보리밭의 보리가 파랗게 싹이 트고 풀처럼 큰 키로 자랐을 때 종달새들은 거기에 둥지를 튼다. 그때는 많은 생물들이 사랑을 하고 새끼를 낳는 계절인 것이다. 종달새 한 마리가 어느 해 봄에 자기도 어머니가 되기로 결심했다. 그 종달새는 둥지를 틀고, 알을 낳고 품에서 귀여운 새끼를 까는 데 성공했다. 모든 것들이 마음먹은 대로 잘 되었다. 그런데 새끼 종달새들이 충분히 자라서 날아오르기 전에 보리들도 무럭무럭 자라났다. 어미 종달새는 걱정이 태산이었다.
어미 종달새는 먹이를 찾으러 하늘을 날면서 새끼들에게 항상 조심하라고 일렀다. “얘들아, 잘 들으렴. 만일 이 보리밭의 주인이 아들을 데리고 오면 잘 듣도록 해라. 그가 하는 말을 잘 듣고, 그 말에 따라서 우린 이사를 가야 하니까 말이다.” 그리고는 새끼들에게 먹일 벌레를 잡으러 떠났다. 어미 종달새가 먹이를 찾으러 둥지를 떠난 잠시 후에 보리밭주인이 아들을 데리고 나타났다. “야, 보리가 잘 익었구나. 이웃 사람들에게 내일 새벽부터 보리를 벨 테니까 낫을 가지고 나오라고 부탁해야겠다.”
어미 종달새가 돌아오자 새끼들은 부들부들 떨면서 이구동성으로 외쳤다. “밭주인이 와서 내일 새벽부터 보리를 베겠다고 했어요. 이웃 사람들을 모두 부르겠데요.” 어미 종달새는 새끼들을 진정시켰다. “얘들아, 걱정하지 말렴. 만일 그가 그 말만 했다면 우린 이사할 필요가 없단다. 여기 벌레를 잡아 왔으니 사이좋게 나눠 먹어라. 그리고 내일도 무슨 말을 하는지 잘 듣도록 해라.” 모두들 먹을 것을 먹고는 새끼 종달새들도 어미 종달새도 편안하게 잠이 들었다.
다음날 새벽이 되었다. 이웃사람들을 데리고 밭을 보리를 베겠다고 한 밭주인의 이웃들은 한 사람도 나타나지 않았다. 어미 종달새는 안심하고 먹이를 구하러 하늘 높이 날아올랐다. 조금 후에 밭에 온 주인은 어제처럼 보리밭을 한 바퀴 돌아보고는 아들에게 말했다. “이웃을 믿은 내가 바보야. 그 게을러터지고 은혜도 모르는 것들은 틀렸어. 내일은 친척들에게 부탁해야겠다.”
먹이를 가지고 어미에게 새끼들이 떨면서 말했다. “엄마, 친척들에게 부탁한대요. 내일 아침부터 보리를 베겠대요.” “얘들아, 어서 저녁이나 먹고 자렴. 아직은 이사 갈 필요가 없단다.” 어미 종달새의 말이 맞았다. 다음날 아침에도 사람은 그림자조차 없었으니까 말이다. 주인이 세 번째로 보리밭을 찾았다.
“남을 믿은 우리가 멍청하지. 얘야, 나보다 더 좋은 친구나 친척은 없는 법이란다. 이제 어떻게 해야 할지 알겠지? 내일 당장 우리 식구들이 낫을 들고 나와서 일을 해야겠다. 그러면 우리가 원한 때에 일을 끝낼 수 있을 거다.” 어미새는 이 말을 전해 듣자마자 급히 서둘렀다. “얘들아, 지금 당장 떠나자. 꾸물거릴 시간이 없다.”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어미종달새는 하늘 높이 날아올랐다. 그 뒤를 새끼 종달새들이 줄을 지어 날아올랐다.
자신의 필요를 채워줄 사람은 이 세상 어디에도 없다는 것을 기억하자. 내가 힘들고 어려울 때에 이웃을 의지하거나 친척, 친구들을 의지한다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때로는 자기 자신도 힘들어서 감당을 할 수 없을 때가 있다. 나를 도울 수 있는 분은 오직 그분 한 분이시라는 것을 기억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