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근안
이근안, 도피생활 10년 ‘숨은 배후’는 누구?
주간조선 1999. 11. 25.
검찰, ‘박철원 씨가 도피 권유’... 정권 바뀌어도 “꼭꼭 숨어라”
‘고문기술자’ 이근안 전 경감의 10년 10개월에 걸친 도피 행각을 도와준 사람이 박처원(72) 전 치안본부 5 차장이라는 사실이 검찰 조사 결과 밝혀지면서 이 씨 비호 세력의 실체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과연 박 씨 혼자서 이 씨의 도피를 종용, 지원했고 ‘윗선’의 지시와 도움은 없었느냐는 것. 이와 함께 평소 『부하를 자식보다 더 사랑했다』고 말하던 박 씨의 행동이 보여준 대공수사 요원들의 끈끈한 인간 관계도 새삼 주목을 받고 있다.
이근안 전 경감과 부인 신 모 씨에 대한 검찰 조사 결과에 따르면, 박처원 전 치안감이 이 씨에게 도피를 권유한 것은 지난 88년 12월. 88년 6월 말 치안감으로 정년 퇴직한 박 씨는 그해 12월 이 씨가 김근태 전 민청련 의장(현 국민회의 의원) 고문 사건으로 전격 수배되자 부하였던 백남은 경정, 김수현 경감 등과 함께 이 씨를 전화로 불러내 『언론에 연일 보도되니 본부가 뭐가 되느냐. 일단 피하는 것이 좋겠다』며 도피를 종용했고, 이 씨도 『좋다. 가족들을 잘 보살펴 달라』는 말을 남기고 도피 생활을 시작했다는 것이다.
이후 두 사람은 관계를 유지하며 도움을 주고받았다는 것이 검찰 조사 결과. 이 씨는 95년 5월 자신의 공소시효 및 향후 신병처리가 걱정되자 부인 신 씨를 통해 박 씨 집으로 편지를 보내 신병 문제를 상의했고, 박 씨도 이 씨 집안 형편이 어려워져 빚까지 지게 되자 97년 12월 1500만 원을 이 씨 부인에게 건네주기도 했다고 한다. 사실 경찰 주변에선 박 씨가 이 씨 도피행각의 배후일지 모른다는 말이 오래전부터 떠돌았다. 대공수사요원들의 ‘대부’ 역할을 해온 박 씨의 위치와 끈끈한 인간관계로 뭉친 대공수사요원들의 관계가 이러한 소문의 배경이었다.
특히 이 씨는 박 씨가 아끼던 부하. 재직 시 『고문은 아무나 하는 게 아니다』는 지론을 갖고 있던 박 씨는 취미인 낚시를 갈 때도 이 씨를 자주 데리고 다녔고, 부인들끼리도 잘 아는 사이였다. 박 씨의 부인은 이 씨가 도피행각을 시작한 후에도 이 씨 부인이 운영하던 미장원을 단골로 출입했었다. 87년 박종철 고문치사 은폐사건으로 구속돼 징역 1년 집행유예 3년을 선고받았던 박 씨는 대공수사에서 잔뼈가 굵은 인물. 평남 진남포 출신의 부잣집 외아들이던 박 씨는 광복 후 북한에 진주한 소련군에 의해 부친이 친일파로 몰리면서 집안이 풍비박산이 나자 이후 단신 월남,
47년 5월 종로경찰서 순경으로 경찰 생활을 시작했다. 남로당 중앙본부를 세 번이나 부술 만큼 간첩 잡는 데 평생을 몰두했던 그는 간첩들에게는 공포의 대상이었다. 김일성도 생전에 ‘남한에서 제거해야 할 공적 1호’로 그를 꼽을 정도였다. 실제로 그는 재직 시 간첩들의 암살 위협에 끊임없이 시달렸고, 생포된 간첩이 그의 집 약도를 갖고 있던 적도 있었다. 6․25 직전 체포된 남로당 최대 간첩 김삼룡이 가장 먼저 만나보고 싶어 한 사람도 그였다. 그는 재직 시 ‘박처원 사단’이라고 불릴 만큼 많은 베테랑 대공수사요원들을 키워냈다. 이근안 도피 종용 때 함께 있던 백남운 경감, 김수현 경정 등도 그가 아끼던 부하들이었다. 그는 재직 시 부하들을 위해서라면 몸을 사리지 않았다는 평을 들었다.
남파 간첩 소지품에서 부하들의 집 약도가 발견되면 가족들을 피신시키고 부하와 함께 잠복근무를 하기도 했다. 이 씨와의 관계에서 한 가지 재미있는 것은 박 씨 역시 비슷한 도피 경험이 있다는 사실. 6․25 당시 피난을 못 간 박 씨는 자신의 집 천장에 숨어 죽을 쑤어먹으며 공산 치하를 넘겼다는 것. 도피 중 상당 기간을 집에서 숨어 지낸 이 씨의 경우와 비슷하다. 박 씨가 등장함으로써 이제 당장 풀어야 할 문제는 박 씨가 이 씨 부인에게 건넨 1500만 원의 출처. 현재 중풍으로 거동이 불편한 박 씨는 자신의 명의로 된 재산이 거의 없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는 40년간 경찰에 복무했지만, 대법원 유죄확정 판결로 퇴직금도 받지 못했다. 현재 그가 살고 있던 옥수동 아파트도 자신의 명의가 아니고, 생활비는 두 아들이 대주고 있다. 경찰청의 한 간부는 『과거 대공수사 베테랑으로 명성을 날리던 그가 70이 넘어 옛 부하 때문에 두 번씩이나 고초를 겪는 것을 보면 착잡하기 그지없다』며 『대공수사 요원들의 위상 추락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것 같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