착취
착취 시달리는 ‘밤거리 아이들’
한겨레신문 1999. 11. 10.
“호프집에서 서빙 일을 할 때는 저녁 7시부터 새벽 2시까지 일 하고 시간당 1000원 정도를 받았습니다. 그래도 공장보다는 편하기 때문에 일하려는 애들이 늘 대기상태입니다.”(올해 5월 가출해 공장과 호프집, 주유소 등을 전전한 17살 문 아무개 양)) 유흥업소를 전전하며 노동력을 착취당하는 것은 비단 인천 인현 상가 화재를 낸 임 아무개 군만이 아니다. 전국 도시의 밤을 밝히고 있는 유흥지대 어느 곳을 가나 거리로 던져진 아이들이 몰려다니 고 있다. 화재참사가 일어난 호프집 소유주 정성갑 씨의 8개 업소에서 ‘삐끼’나 아르바이트생으로 일한 아이들만도 40~50명에 이르렀다. 이와 관련해 김지선 서울시 구로청소년쉼터 상담팀장 등 청소년 문제 전문가들은 “10대들 가운데 가출한 경험이 있는 아이들이 100만여 명에 이르고, 이 가운데 한 달 이상 가출을 하고 있는 아이들은 20만 명가량 될 것”이라고 추정한다.
이런 아이들 가운데 상당수가 유흥업소 주변에서 떠돌 것이라는 얘기다. 물론 이는 몇몇 전문가들이 추정하는 것일 뿐이다. 공신력 있는 어느 기관도 가출청소년의 수와 행태를 조사하고 대책을 세우지 않고 있다. 가정 및 학교의 무관심, 말초적인 호기심에 이끌려 유흥가에 발을 내디딘 아이들에게는 대부분 어른들의 가혹한 착취가 기다리고 있다. 인천 주안의 한 호프집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는 하아무개(16)군은 “오갈 데 없는 애들이 밥과 잠자리만 해결해 주면 단란주점 같은 유흥업소에서 허드렛일을 하는 경우가 많다”며 “여자아이들 가운데는 이른바 원조교제를 통해 용돈을 조달하기도 한다”라고 말했다. 지난해 10월 가출했다가 서울 구로동의 속칭 ‘벌집’에서 일했던 권 아무개(17)양은 “지난해 11월 한 달 동안 매춘을 강요당했는데, 화장품과 옷값 등을 빼고 실제 받은 돈은 10만 원에 불과했다”라고 말했다.
인천 화재참사가 일어난 히트노래방에서도 정성갑 사장의 ‘부하’들은 아이들을 밤 11시가 넘어서까지 붙잡아두고 일부러 집에 가지 못하게 했다. 박성자 서울 신림청소년쉼터 상담원은 “주유소만 해도 부모동의서를 요구하는 곳이 있지만, 일부 유흥업소 악덕업주는 ‘너 같은 것 써주면 안 되는데 불쌍해서 써준다’며 마구 부려먹는 게 보통”이라며 “불법이지만 인건비가 싸 미성년자를 오히려 선호한다”라고 말했다. 박재황 청소년대화의 광장 상담팀장은 “주로 결손가정의 아이들이 가출이나 탈선의 유혹을 받기 쉬운 건 당연한 일”이라면서도 “미성년자를 고용하는 업주를 강력히 처벌하고, 학교와 지역사회 등 사회 전체가 가출 청소년에 대한 문제의식을 갖고 꾸준히 노력하는 수밖에 없다”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