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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중 영향력 1, 박정희김구 부활

 

 시사저널 1999. 10. 14.

 

한국은 정치권력과 재벌 권력이 지배하는 사회다. 정치권의 힘은 대통령, 재벌의 힘은 총수에게 집중되어 있다. 지난 10년간 유지되어 온 이 같은 현상은 변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 내부에서는 힘의 이동과 상실이 일어났다. 3김 시대의 한 각을 이루었던 김영삼 전 대통령과 7080년대 한국의 눈부신 성장을 대변했던 김우중 대우그룹 회장은 완전히 영향력을 잃었다. 그 공백을 부활한 박정희 전 대통령과 백범 김 구, 시민운동 지도자가 메웠다. 김수환 추기경의 영향력은 10년째 요지부동이다. 99누가 한국을 움직이는가여론조사에서 드러난 전문가 집단의 현실 인식이다. 이번 조사 결과는 20세기와 21세기가 교차하는 시기에 한국 사회가 겪는 변화와 혼돈, 강고하게 유지되는 정재계의 힘과 그 속에서 싹트는 새로운 힘을 여실히 보여 주고 있다.

 

대통령 측근 중 10위권 진입 인물 없어

김대중 대통령은 한국을 움직이는 인물’ 1(74.4%)로 꼽혔다. 현직 대통령이 늘 1위를 차지한 그동안의 경향성에 비추어 충분히 예상되었던 결과다. 김대통령의 영향력에 대한 인지도는 대기업임원(85.6%) 언론인(84.2%) 법조인(82.4%) 집단에서 높게 나타났다. 이들 집단이 다른 집단에 비해 김대통령의 힘을 더 민감하게 받아들이고 있다는 분석이 가능하다. 특히 대기업 임원들에게서 지목률이 가장 높게 나타난 것은, 김대통령이 지난해부터 줄기차게 밀어붙인 재벌 개혁의 영향으로 풀이된다. 즉 강도 높게 전개된 재벌 개혁 과정에서 대통령의 영향력을 민감하게 의식할 수밖에 없었고, 그 힘을 가장 절실하게 느낀 집단이 바로 대기업 임원 그룹이었던 것이다.

 

대통령이라는 현직 프리미엄을 갖기 이전에도 김대통령은 한국 사회를 움직이는 핵심 인물로 꼽혔다. 조사 첫해인 89년에는 3, 그 뒤부터는 줄곧 부동의 2위 자리를 고수했다(9739.5%, 9640.6%). 그 자리를 메운 이회창 한나라당 총재의 영향력 순위와 인지도(321.2%)는 김대통령의 야당 시절에 못 미치는 것으로 나타났다. 한 가지 특이한 점은, 예전과 달리 대통령의 핵심 측근이나 여권 유력 인사 중에서 10위권에 진입한 인물이 없다는 점이다. 전문가들은 여권 내부에서 적절한 권력 분산이 이루어지지 않고 대통령 1인에게 권한이 집중되어 있다고 여기는 듯하다.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은 976위에서 2위로 네 계단이나 뛰어오르면서, 라이벌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을 크게 따돌렸다. 현 정권과 우호적인 분위기에서 성장을 거듭하는 현대그룹의 실질적인 총수라는 경제적인 요인과 금강산 관광을 성사해 통일로 가는 새로운 장을 개척한 주인공이라는 경제 외적 요인이 상승 작용을 일으킨 것으로 풀이된다.

 

사실 지난 10년간 정명예회장만큼 정치권력과의 관계에 따라 극명하게 부침을 거듭한 인물도 드물다. 그는 89년부터 92년까지 줄곧 영향력 4위를 고수하다가, 93년과 94년 조사에서는 10위권 밖으로 밀려났다. 92년 대통령 선거에 출마했다가 낙선한 데다 설상가상으로 현대그룹이 김영삼 정권으로부터 강력한 제재를 받자, 그에 대한 지목률이 현저하게 떨어졌던 것이다. 그러나 김영삼 정권과 현대그룹이 화해한 뒤인 94년에 10위로 등장한 뒤로 95년부터 97년까지 3년 동안 6위 자리를 지켰다. 10년에 걸친 여론조사 결과는 추락과 재기와 극적인 도약에 이르는 정명예회장의 역동적인 궤적을 고스란히 담아내고 있다. 3위는 이회창 총재. 이총재가 한국을 움직이는 인물명단에 그 이름을 처음 올린 것은 93. 김영삼 정권에서 첫 감사원장으로 명성을 날리면서 세간의 이목을 집중시킨 해였다. 그 이듬해인 95년 신한국당에 입당하면서 10위로 재진입한 그는 967, 974위를 기록했다.

 

그는 지난해 당 총재로 복귀한 이후 현 정권과 치열하게 투쟁해 정권의 발목을 잡는영향력을 과시하면서 비주류의 반발을 제압하는 데 어느 정도 성공했다. 최근 김대통령이 여야 영수 회담을 제의한 것도 꼬인 정국을 풀려면 이총재와 마주 앉아야 한다는 현실을 인정했기 때문이다. 결국 이총재가 3위로 지목된 데에는 잠재력 있는 대권 후보라는 점과 정국 흐름에 영향을 미치는 야당 총재라는 점이 두루 반영된 것으로 풀이된다. 공동 정권의 한 축인 김종필 국무총리 역시 전문가 집단으로부터 일정한 지분을 인정받았다(413.5%). 물론 그가 주장하는 절반의 지분과는 다소 거리가 있다. 그러나 김총리는 유력한 차기 대권 주자로 거론된 데에서도 나타났듯이, 스스로의 한계를 드러낸 내각제 유보 조처와 자민련의 극심한 내분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잠재력을 인정받고 있다. 내각제 개헌을 배제할 수 없는 정치적 가변성과 공동 정권의 취약성이 JP의 영향력을 유지하는 요인으로 풀이된다.

 

김수환 추기경 10년째 10위권 고수박원순 첫 진입

김수환 추기경(512.2%)은 정치권력보다 훨씬 생명력이 긴 ‘권력자’ 임을 과시했다. 지난봄 서울대교구장 자리에서 물러난 그는 10년째 10위권을 고수하는 신화를 만들었다. 김추기경의 신화는 과거 10년 동안 박철언문희갑최형우박관용박찬종이홍구 등 최고 권력자의 측근이라는 후광 또는 대권 주자로서 경쟁력을 상실하면서 명단에서 사라진 수많은 정치인들과 좋은 대조를 이룬다. 추기경이 이렇듯 10년째 부동의 권위를 유지하는 데에는 복음 정신에 입각해 현실을 증언하려는 예언자적인 자세, 다른 종교 지도자들에 대한 실망감이 복합해 작용한 것으로 풀이된다.

 

은퇴 이후 혜화동 신학교에 머무르는 김추기경은 얼마 전 북한 포용 정책의 당위성을 대중에게 설명해 달라는 정부의 요청을 받아들여 지방 강연에 나서기도 했다. 박정희와 김 구. 이미 역사 속의 인물로 사라진 두 사람이 현실적인 권력으로 재등장한 것은, 이번 여론조사에서 나타난 이변 중 하나였다몇 해 전부터 불어닥친 박정희 증후군과 김 구 추모 열기, 경제 위기를 겪으면서 본격화한 박정희식 경제 발전에 대한 재평가 작업이 영향을 미친 것으로 분석된다. 반면 전직 대통령인 김영삼 씨는 처음으로 순위 밖으로 밀려나는 급격한 퇴조 현상을 보였다. 대통령 직에서 물러난 인물들은 순위에서 금세 밀려나거나 사라졌던 것이 그동안의 불문율이었다.

 

하지만 김 전 대통령의 경우는 30년간 우리 사회에 미쳐온 영향력과 지역 구도를 감안할 때, 그리 쉽사리 영향력을 잃지 않으리라는 것이 일반적인 관측이었다. 그러나 그도 퇴임 대통령의 숙명으로부터 크게 벗어나지는 못했다. 이런 결과는 3김 시대의 종언이 그리 머지않았음을 암시하고 있다. YS 퇴조와 함께 박원순 변호사가 10위권에 진입한 것도 변혁을 예고하는 징표로 받아들여진다. 박변호사는 시민운동 지도자로서는 처음으로 순위에 올랐다. 93년 경실련이 한국을 움직이는 세력으로 꼽힌 적이 있기는 하지만, 지도자 개인이 순위에 진입한 적은 없었다. 이는 시민 권력이라는 말이 나올 만큼 입지가 넓어진 시민운동이 일구어낸 성과라고도 볼 수 있다.

 

세월 따라 부침 거듭한 권력 집단

한국을 움직이는 영향력 있는 집단(세력)’조사 결과는 지난 10년 사이에 일어난 변화를 더욱 실감 있게 전달한다. 89년 첫 여론조사에서는 청와대 비서실(1) 군부(3) 안전기획부(6) 학생운동권(7)이 한국을 움직이는 주요 세력으로 지목되었다. 6월 항쟁 이후 억눌렸던 각계각층의 요구가 폭발적으로 분출하면서 양극단에 선 집단이 서로 힘을 발휘한 것이다. 이듬해인 90년에는 전대협전민련전노협 등 이른바 운동권 3 단체가 ‘영향력 있는 집단’ 456위를 차지했고, 군부가 7위로 그 뒤를 이었다. 그러나 93년에는 경실련(1)과 소비자보호단체(3)가 재야학생 운동권의 자리를 차지하고 나섰다.

 

안기부의 순위가 점점 밀리기 시작한 것도 이 무렵부터였다. 청와대 비서실군부안기부는 97년에 각각 5위와 9위와 10위로 밀려났다. 올해 조사에서 한국 사회에 영향력을 미치는 집단은 정치권(38.2%) 재계(31.6%) 시민단체(28.6%) 언론(25.9%) 여당(14.4%) 종교계(11.0%) 관료 집단(8.9%) 노동계(7.4%) 전경련(7.1%) 한나라당(6.7%) 순으로 나타났다권위주의 정치 체제에서 생명력을 발휘했던 양쪽 세력, 즉 국가정보원검찰군부와 학생재야 단체가 완전히 명단에서 사라진 것이다. 첫해에 1위로 꼽혔던 청와대 비서실 역시 명단에서 탈락했다. 10년 세월이 빚어낸 변화다. 그러나 커다란 변화와 더불어 전혀 달라지지 않은 것도 있다. 지난 10년 사이에 대법원장과 국회의장은 한 번도 거명되지 않았다.

 

올해 역시 마찬가지였다. 삼권분립이 엄격하게 보장되어 있는 대통령 중심제 국가에서는 보기 드문 현상이다. 이는 나라를 통치하는 힘이 제대로 배분되지 않고 있거나, 힘의 균형을 이루어야 할 사법부와 입법부가 제 몫을 찾지 못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정치권이 가장 세력 있는 집단으로 꼽히면서도 정작 입법부의 수장이 명단에 등장하지 못하는 것은, 권력과 역할의 부조화를 극명하게 드러낸다. 변하지 않은 것이 한 가지 더 있다. 여성들은 지난 10년 동안 단 한 사람도 명단에 끼지 못했다. 우리나라가 철저한 ‘남성공화국’ 임을 입증하는 대목이다. 결국 <시사저널>누가 한국을 움직이는가’ 10년 조사가 증언하는 것은 우리 사회가 적지 않은 변화를 겪었지만 여전히 정치인재벌남자에게 편중된 기형적인 사회에 머무르고 있다는 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