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GB
KGB 핵폭탄 서방국 대폭격
뉴스메이커 1999. 10. 7.
영국망명 노스파이 KGB 활약상 담은 <검은 방패> 출간, 미․영․불 등 경악
KGB는 역시 위대하다? 옛 소련 첩보기관 KGB(국가보안위원회)에서 일하다 영국으로 망명한 한 ‘늙은 스파이’가 빼돌린 과거 KGB 문서가 공개되면서 서방 국가들이 발칵 뒤집혔다. 가공할 위력을 보여주고 있는 노스파이의 이름은 바실리 미트로킨(77). 92년 망명한 전직 KGB 문서담당관이다. 조용히 지내오던 그가 갑자기 나타나 세상을 시끄럽게 만든 것은 그가 몰래 빼내온 자료를 가지고 영국의 케임브리지대학의 역사학자 크리스토퍼 앤드루와 공동으로 책을 펴내 알려지지 않은 ‘KGB의 활동’을 까발리고 있기 때문이다. <검과 방패>라는 이 책의 내용이 지난주부터 영국의 유력지 〈더 타임스〉에 연재되면서 미국과 영국, 프랑스는 벌집을 쑤셔 놓은 것처럼 소란스럽다. 이들 각국의 언론들은 연일 KGB의 놀랍고도 무차별적인 활동․공작 능력과 도청 사실 등에 경악하며 자국의 정보기관들의 무능을 비난하고 있다.
존 F. 케네디 전 미 대통령 저격 등 역사 속으로 묻힌 사건들도 새롭게 조명될 정도다. 직격탄을 맞고 있는 나라는 사건의 진원지인 영국이다. 미트로킨의 망명지이자 이번 저서가 발간된 영국은 지금 거의 ‘미트로킨 신드롬’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 영국인들은 시간이 가면서 폭로되는 스파이 사건에 입을 다물지 못하고 있다. 언론들이 이 사건을 다루기 시작한 것은 지난 9월 11일부터였다. 최초 내용은 80대 할머니가 옛 소련을 위해 40년 넘게 간첩 활동을 해왔고, 전직 런던 경찰국 경관이 70년대 KGB 연락책으로 일해왔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문제는 다음부터였다. ‘할머니 스파이’가 빼돌린 정보는 놀랍게도 원자폭탄에 관한 것이었다. 원자폭탄 개발에 참여한 영국 비철금속연구협회의 비서로 일했던 멜리타 노드(여․87)는 1937년 KGB 요원으로 포섭돼 이때부터 각종 정보를 소련에 넘겨주었고 특히 지난 1945년 원자폭탄 제조 관련 문서를 전달, 옛 소련은 이를 토대로 1년 뒤 원자폭탄을 제조했다는 문서가 폭로했다.
그녀의 스파이 활동은 72년 은퇴할 때까지 계속됐다는 것이 문서에 나온 대로 확인됐다. 또 전직 경관인 존 시먼즈는 부패 혐의로 지난 69년 영국을 떠난 뒤 KGB에 의해 채용돼 70년대에 KGB의 연락책으로 활동한 것으로 밝혀졌다. 그의 임무는 영국에 있는 여자 외교관을 유혹해 정보를 빼내는 것이었다고 언론들은 전했다. 그는 지난 80년에 귀국, 부패 혐의로 2년 간 옥살이를 한 것으로 보도됐다. 더더욱 놀라운 것은 이 노파 스파이가 확신범이라는 것이었다. 노드 할머니는 자신의 스파이 활동을 순순히 시인하며 “내가 스파이 노릇을 한 것은 공산주의에 대한 확신 때문이지 돈을 벌기 위해서 한 게 아니었다”라고 증언했다. 그는 “보통 사람에게 더 많은 교육 기회와 의료 서비스를 제공하는 (공산주의) 체제가 무너지는 것을 막기 위해서 스파이 활동을 벌인 것”이라고 당당하게 말했다. 사건은 여기서 끝나지 않고 계속 비화됐다. 공동 저자 앤드루가 매일매일 스파이 혐의를 받고 있는 인물을 지목해 나가면서 정보기관에까지 일파만파 평지풍파를 일으켰다.
영국 정부와 정보기관이 이 소련 KGB 요원이 넘겨준 기밀문서를 의도적으로 은폐해 왔다는 의혹이 불거져 파문이 거세지고 있다. 그는 작고한 노동당 소속 국회의원 2명을 소련의 고정간첩으로 추가 지목하더니 “며칠 내에 12명의 스파이들을 추가로 폭로하겠다”고 공언했다. 문제는 영국 정보기관인 MI 5가 미트로킨의 파일을 통해 노드의 존재를 파악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를 처벌하지 않았다는 데 있다. 국가의 방첩 임무를 전담하고 있는 MI 5가 소련의 핵심 고정간첩으로 활동해 온 노드 문제를 상부에 보고도 하지 않은 채 왜 은폐했는지, 그리고 누가 그 같은 결정을 내렸는지에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MI 5를 거느리고 있는 잭 스트로 내무 장관은 이번 파문을 둘러싸고 야당이 정치 공세를 펴자 지난 13일 국회 정보위원회 답변을 통해 “MI 5가 미트로킨이 제공한 KGB 파일들을 적절하게 처리했는지 여부를 조사하겠다”라고 밝혔다.
스트로 장관은 그러나 자신이 노드 건을 알게 된 것은 지난 12월이라고 사건 은폐의 책임을 MI 5에 돌리고 나선 것이다. MI 5로서는 그렇지 않아도 지난해 스위스로 망명한 전직 요원이 인터넷에 기관의 비밀과 요원들의 신상을 올리는 바람에 골머리를 앓아온 터라 이번 사건에 진저리를 치고 있다. 미국도 ‘미트로킨 파일’에서 자유롭지 못한 상황이다. 처음엔 느긋하게 영국 정보부가 당하는 것을 즐기던 미국인들과 중앙정보국(CIA)도 미트로킨 파일의 미국 관련 부분이 밝혀지면서 갑자기 바빠졌다. KGB가 냉전 시대인 지난 70년대와 80년대 초 미국 내에서 대대적인 도청 작전을 펼쳐 헨리 키신저 전 국무장관의 전화 대화에서부터 특급 비밀무기에 이르는 온갖 정보를 입수했던 것으로 밝혀졌기 때문이다. 워싱턴과 뉴욕의 소련 공관은 도청 작전 본부였으며 지난 1979년 당시 소련의 방위산업체들이 추진하던 사업의 절반 이상이 이를 통해 입수한 서방 정보를 토대한 것이었음이 드러났다.
자료들은 또 KGB가 존 F. 케네디 전 대통령의 암살 사건에 CIA가 연루됐다는 음모론을 조작하고 미국 내 인종 갈등을 부채질하려고 시도했던 것으로 밝히고 있다. 책 〈검과 방패〉에 따르면 KGB는 1974년 리처드 닉슨 전 대통령을 사임케 한 워터게이트 사건과 지난 70년대 중반 몇몇 외국 지도자들에 대한 CIA의 암살 음모가 폭로된 것을 계기로 케네디 대통령의 암살 배후에 CIA가 있다는 추론에 불을 붙이려 시도했다. KGB는 케네디 암살범인 리 하비 오스월드가 나중에 워터게이트 사건 관련자로 언론에 거명된 전 CIA 요원 하워드 헌트에게 케네디 암살을 실행하기 2주일 전 “만나자”라고 전갈을 보낸 것처럼 쓴 편지를 위조해 퍼뜨렸다는 것이다. KGB는 나아가 즈비그뉴 브레진스키 전 백악관 국가안보담당보좌관, 에드가 후버 전 미연방수사국(FBI) 국장, 민권운동가 마틴 루터 킹 목사 등 저명인사들에 대한 왜곡된 정보를 흘려 신망을 떨어뜨리려 시도했다.
브레진스키 안보담당보좌관의 경우 KGB의 포섭 공작에 휘말렸다가 영부인의 도움으로 가까스로 헤어났다는 얘기가 최근 전 백악관 출입기자의 저서에서 밝혀진 바 있어 폭로 내용을 확인했다. 킹 목사와 관련해 KGB는 그가 미 제국주의에 대항해 투쟁하는 것이 아니라 미국의 꿈 실현을 추구하고 있음이 명백해지자 그에 대한 불신을 조장하면서 더 급진적이고 조종 가능한 인물로 교체하려 기도했으며 그가 암살된 후에는 노선을 변경, 순교자로 미화시켜 이용하려 했다. KGB는 이밖에 몬태나주의 한 댐과 뉴욕 항구, 뉴욕주의 한 발전소 등을 파괴하는 계획을 수립하기도 했고, 뉴욕의 한 흑인 거주 지역에서 폭발 사건을 일으킨 후 그 책임을 유태인 단체로 돌리는 음모를 꾸미기도 했다. KGB의 이러한 계획들은 대부분 실패했으나 보잉, 제너럴 다이내믹스, 휴즈, IBM 및 록히드 등의 팩스 통신문을 가로채는 데 성공, 트라이던트, MX, 퍼싱 미사일 체제와 F15, F16 및 B1 등 전폭기, 조기경보통제기(AWACS) 등에 관한 중요한 정보를 획득했다.
KGB는 심지어 워싱턴 시내 소련 대사관에서 대통령이 타는 ‘에어포스 원(공군 1호기)’이 있는 앤드루스 공군기지와 대통령 전용기, 기타 국무장관 등 고위 관리들이 탑승한 공용 항공기간의 교신 내용을 도청하는 데 성공하기도 한 것으로 드러났다. 미트로킨 파일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은 프랑스 역시 마찬가지다. 가뜩이나 ‘스파이의 천국’으로 알려져 온 프랑스는 냉전 시절 KGB가 프랑스의 언론과 방첩 기관에 침투한 데 이어 프랑스를 서방에 대한 냉전 작전의 발판으로 사용했다는 사실이 폭로되자 고개를 떨구고 있다. 프랑스 관련 폭로 내용은 지난 51년 이른바 ‘5명의 거물들’이 일망타진된 뒤 프랑스는 다음 10년 간 서방의 대 소련 블록 정책에 관한 KGB의 주요 첩보 소스가 되어왔다는 것이다. 5명의 거물이란 KGB의 영국인 첩자들이었던 킴 필비, 도널드 맥클린, 기 부르게스, 존 케언크로스, 앤터니 블런트를 말한다.
“냉전 시절 거의 대부분 파리에는 서유럽의 다른 어떤 KGB 거점들보다 훨씬 많은 50명 이상의 KGB 첩자들이 암약하고 있었다”라고 책은 서문에서 밝혔다. 책은 또 미트로킨의 말을 인용, “지난 1970년대 중 가장 높은 평가를 받던 첩자들은 신문기자들이었다”라고 말해 불똥을 언론계로도 튕겼다. 당시 KGB가 침투한 것으로 알려진 프랑스 언론사들 중에는 〈르 몽드〉지를 위시하여, AFP통신, 주간 〈렉스프레스〉 등이 들어있다. KGB는 또한 프랑스 방첩기관인 SDECE 내부에도 제보자들을 갖고 있었다고 이 책은 주장했다. 이들 첩자는 북서양조약기구(NATO)에서 프랑스가 탈퇴하는 데 기여했으며, 이것이 이들의 최대 업적으로 평가받았다는 것이다. 이들은 또 프랑스 사회당 지도자들을 포섭, 전 대통령 발레리 지스카르 데스탱과의 타협을 시도했다. 이 같은 노력이 실패하자 KGB는 지스카르를 전 중앙아프리카 황제 장 베델 보카사와 연결 지은 다이아몬드 스캔들이 미국 CIA의 소행이라며 이간질하려고 했다고 이 책은 주장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