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치
청소년 흡연을 방치할 건가
한겨레21 1999. 9. 23.
청소년 때 흡연을 시작하면 성인이 되어 시작한 경우보다 각종 질병에 걸릴 위험이 매우 높아진다. 그 이유는 일찍 시작할수록 흡연량이 많아지고, 담배의 발암물질에 의한 유전자 손상이 더 잘 일어나기 때문이다. 또한 일단 흡연을 시작한 청소년은 평생 담배에 중독되어 살 가능성이 매우 높다. 우리나라 고3 남학생 흡연율은 세계에서 제일 높고, 여자 청소년의 흡연율도 최근 급증하고 있다. 더욱이 초등학교 때부터 흡연을 시작한 청소년까지 늘고 있다는 보고에서 알 수 있듯이 우리나라의 청소년 흡연 문제는 매우 심각하다.
청소년 흡연율이 갈수록 증가하고 있는 이유는 무엇인가? 그것은 바로 어른들의 무관심 때문이다. 일선 학교에서는 학생 흡연에 대해 속수무책이거나 사실상 방치한 상태이다. 학생은 못 피우게 하면서 여전히 자유롭게 흡연하는 교사들도 많다. 가정에서는 자녀가 흡연하는 것을 알면서도 제대로 훈계하지 못하고 있으며, 청소년들은 언제든지 손쉽게 담배를 구할 수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정부가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고 있다. 정부의 산하기관인 담배인삼공사는 젊은 층의 기호에 맞춰 향과 디자인을 새롭게 개발하고 한 갑에 1천 원인 소포장 담배를 개발하는 데 열중하고 있다. 이렇게 심각한 청소년 흡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우선 흡연 청소년의 금연보다는 아직 담배를 피우지 않는 청소년의 흡연 예방에 더 큰 관심을 가져야 한다.
먼저 학교는 청소년들이 흡연하지 못하도록 매우 강력한 금연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 미국에서는 수많은 주(州)에서 학생뿐만 아니라 교사 등 모든 사람이 학교 내에서 흡연할 수 없도록 하는 강력한 금연 방침을 시행하고 있다. 이러한 방침이 잘 지켜지는 학교일수록 학생들의 흡연율이 낮다. 흡연 청소년을 처벌하는 것도 필요하지만 흡연 예방교육을 교과 과정 속에 편입시켜 흡연하지 못하도록 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 가정에서는 자녀에게 모범을 보여야 한다. 부모가 흡연하면 자녀가 흡연할 위험이 높아지며, 자녀가 흡연하더라도 강력하게 금연을 권고하지 못한다. 그리고 자녀들이 언제든지 고민을 상담할 정도로 부모-자녀 관계를 친밀하게 유지해야 한다.
지역사회에서는 정부 기관 및 민간단체가 힘을 합쳐 청소년이 손쉽게 담배를 구하지 못하도록 환경을 조성하는 데 앞장서야 한다. 예를 들어, 지역 사회 내에 있는 담배 자판기를 모두 철거하고, 담배 가게들이 청소년에게 담배를 판매하는지 수시로 감독해야 한다. 텔레비전을 비롯한 대중매체에서는 청소년들이 본받지 않도록 흡연 장면을 최소한으로 줄여야 한다. 정부와 지방 자치단체에서는 담배 판매가 세수에 도움이 된다는 생각을 버려야 한다. 세금은 더 걷히겠지만 흡연으로 인한 질병 치료에 더 많은 돈이 드는 것을 왜 모르는가? 치료비는 정부의 돈이 아닌 국민들이 따로 내는 의료보험료로 충당하기 때문인가? 정부에서는 청소년 흡연 예방을 위해 담뱃값을 더 올리고, 담배에 좀 더 강력한 경고 문구를 부착하며, 청소년에게 담배 판매를 철저히 제한하는 법률을 시행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