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돼지 폐

soulcs 2024. 7. 2. 05: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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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돼지 폐’로 숨 쉴 수 있을까?

 

뉴스플러스 1999. 9. 16. 

 

인간의 생명유지에 절대적 장기인 폐. 지금까지는 폐에 이상이 생긴다는 것은 곧 호흡곤란, 나아가 건강한 생활과의 영원한 결별을 뜻했다. 그러나 앞으로는 상황이 달라질 수도 있다. 다른 사람 혹은 다른 동물의 폐를 이식, 생명을 연장하는 방법에 대한 연구가 전 세계적으로 본격화되고 있기 때문이다. 폐이식은 장기이식 중에서도 어려운 분야로 꼽힌다. 지난 96년 7월 연세대 의대 영동세브란스병원에서 한국 최초의 폐이식 수술이 이뤄진 이래, 아직 국내 시술 사례도 열손가락 안에 꼽힐 정도에 불과하다. 한국 최초의 폐이식 수술을 받은 환자는 83일간 생존하다 사망했다. 지금까지 국내에서 폐이식수술을 받고 가장 오래 살고 있는 사람은 지난 4월 뇌사자의 폐를 이식받은 양측성 폐기종 환자(56)다.

 

수술 전 30여 년간 호흡곤란증세가 있었던 이 환자는 현재 5개월 이상 생존해 있을 뿐 아니라 직장에 복귀하여 정상적인 생활을 하고 있다. 외국에는 폐이식 후 10년 이상 된 장기 생존자도 적지 않다는 점을 감안해 볼 때, 폐이식이 만성폐질환 환자에게 또 하나의 복음이 될 수도 있음을 알 수 있다. 폐이식이란 한마디로 더 이상 쓸 수 없게 된 허파(폐)를 새롭고 싱싱한 폐로 교체하는 수술이다. 주로 말기 폐질환환자, 특히 그대로 두면 18개월 내에 사망할 것으로 추정되는 환자에게 시행할 수 있다. 호흡운동을 할 때 산소공급이 원활하지 않은 폐섬유증이나 폐기종, 폐동맥 고혈압이나 양쪽 기관지확장증으로 정상적인 사회생활이 불가능한 사람들 등이 이식수술의 대상이 될 수 있다.

 

96년 국내 첫 수술

성공률 85% 넘어 폐이식은 수술 뒤에도 계속 투약이 필요하며 거부반응 여부를 알아내기 위한 기관지경 검사 등 여러 검사를 실시해야 한다. 그러므로 연령으로는 60세 이하, 폐 이외에 다른 전신질환이나 정신질환, 습관성 약물복용 병력이 없는 건강한 환자에게 시행된다. 또 흡연을 하지 않아야 하며 흡연자의 경우 최소한 6개월 이상은 금연한 뒤에 수술받는 것이 좋다. 당뇨병이나 고혈압 등의 질환이 없는 경우가 수술 후 합병증이 적고 회복이 잘 된다. 반면 고령이거나 흡연자, 몸무게가 표준보다 20% 이상 비만인 경우, 고지혈증이나 당뇨병 고혈압 협심증 등을 가진 환자는 수술 성공률이 낮다. 생체 폐이식에선 통상 뇌사자의 폐가 이용되고 있다. 특히 뇌사가 인정되는 구미 각국에서는 뇌사자가 공여한 폐가 널리 이용된다. 폐공여자는 폐 수용자와 가슴둘레, 흉곽 종경이 비슷해야 하고, 20~50세 사이의 심신이 건강한 사람이어야 한다.

 

또 조직적합 항원이 적합하고 혈액형이 동일하며 환자의 혈청과 공여자 사이의 림프구 교차반응이 음성이어야 한다. 이 중에서도 ABO혈액형의 교차반응이 가장 중요하다. 그러나 당뇨병이나 패혈증, 만성폐질환, 흉부손상, 악성종양, 고혈압 등을 앓는 사람이나 흡연자, 복부 및 흉부 대수술을 받은 사람 등은 폐를 공여하고 싶어도 할 수가 없다. 폐이식수술의 성공률은 85%를 상회하기 때문에 수술의 위험성보다 이식장기의 부족이 더욱 큰 고민거리. 특히 뇌사가 인정되지 않는 한국에서는 이식할 장기가 절대적으로 부족하다. 현재 이식이 필요한 사람 중 약 5%만이 필요한 장기를 얻고 있으며 약 30%는 이식을 기다리다가 사망한다. 기증되는 이식장기를 아무리 잘 쓴다 해도 필요량의 약 20% 정도밖에 충족시킬 수 없으며, 장기를 원하는 사람들의 수효는 갈수록 늘어나고 있다.

 

전 세계적으로 돼지나 원숭이 등 다른 동물의 장기를 이용한 이식수술에 눈을 돌리게 되는 이유가 여기 있다. 이종이식에 대한 연구는 20세기 초반에 토끼 돼지 염소 양 영장류 등을 통해 시작됐지만, 약 40년간 답보상태에 있었다. 그러나 새로운 면역억제제가 개발됨으로써 1963년 11월 미국에서 침팬지의 콩팥을 사람에게 이식하는 수술이 시행됐다. 최장 생존기간은 9개월이었고 조직 검사상 급성거부반응의 증거는 없었다. 이를 계기로 1964년 1월에는 침팬지 심장을 이용한 세계 최초의 이종심장이식이 시행됐다. 그 뒤 지금까지 8명에게 이종심장이식이 이루어졌는데 최장 생존기록은 20일이다. 이종이식이 가능한 기증자 후보로는 인간과 가까운 영장류나 구하기 쉬운 가축 등이 꼽힌다.

 

인공 장기는 설치 번거롭고 기능 크게 떨어져

한편으론 인공장기에 대한 연구도 활발하다. 그러나 인공장기는 설치가 번거롭고 기능도 완벽하지 못하다. 이종이식은 인공장기와는 달리 체내에 완전히 장착할 수 있고, 외부 전원이 필요 없다. 이종이식은 동종이식처럼 혈전이나 감염 위험도 작다. 다만 면역반응이 동종이식에 비해 강하게 나타나 면역억제제를 많이 써야 한다는 문제점이 남는다. 그럼에도 유인원이나 돼지의 장기가 이식장기의 부족 현상을 해결해 줄 것으로 전망된다. 물론 이종이식에는 윤리적 문제가 남아 있다. 이종이식을 위해서는 많은 수의 동물이 필요하며 전이 가능한 질병이 없어야 하고 조직구조와 기능이 인간과 비슷하며 혈액형이 같아야 된다.

 

이런 조건을 갖춘 동물로는 침팬지가 가장 유력한데 인간과 유전학적으로 가깝고 급성거부반응을 작게 일으키기 때문이다. 그러나 동물에서 인간에게 전염될 수 있는 바이러스질환 등에 대한 우려는 남아 있다. 최근 들어서는 돼지가 주목받고 있다. 돼지는 매년 수백만 마리가 식용으로 도살되고, 장기 크기가 인간과 비슷하기 때문이다. 동물로부터 전염 가능성이 적다는 것도 장점. 그러나 면역학적인 면은 해결과제로 남아 있다. 한국에서는 필자가 돼지 폐를 개에게 이식하여 좋은 결과를 얻은 바 있고, 영국에서는 유전자조작을 통해 거부반응을 일으키지 않는 돼지 폐를 만들려는 시도가 이뤄지고 있다. 면역학적인 지식이 더욱 발전하면, 실험실뿐 아니라 임상에서도 돼지 폐를 인간에게 이식하는 날이 올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