돼지 폐
인간의 생명유지에 절대적 장기인 폐. 지금까지는 폐에 이상이 생긴다는 것은 곧 호흡곤란, 나아가 건강한 생활과의 영원한 결별을 뜻했다. 그러나 앞으로는 상황이 달라질 수도 있다. 다른 사람 혹은 다른 동물의 폐를 이식, 생명을 연장하는 방법에 대한 연구가 전 세계적으로 본격화되고 있기 때문이다. 폐이식은 장기이식 중에서도 어려운 분야로 꼽힌다. 지난 96년 7월 연세대 의대 영동세브란스병원에서 한국 최초의 폐이식 수술이 이뤄진 이래, 아직 국내 시술 사례도 열손가락 안에 꼽힐 정도에 불과하다. 한국 최초의 폐이식 수술을 받은 환자는 83일간 생존하다 사망했다. 지금까지 국내에서 폐이식수술을 받고 가장 오래 살고 있는 사람은 지난 4월 뇌사자의 폐를 이식받은 양측성 폐기종 환자(56)다.
성공률 85% 넘어 폐이식은 수술 뒤에도 계속 투약이 필요하며 거부반응 여부를 알아내기 위한 기관지경 검사 등 여러 검사를 실시해야 한다. 그러므로 연령으로는 60세 이하, 폐 이외에 다른 전신질환이나 정신질환, 습관성 약물복용 병력이 없는 건강한 환자에게 시행된다. 또 흡연을 하지 않아야 하며 흡연자의 경우 최소한 6개월 이상은 금연한 뒤에 수술받는 것이 좋다. 당뇨병이나 고혈압 등의 질환이 없는 경우가 수술 후 합병증이 적고 회복이 잘 된다. 반면 고령이거나 흡연자, 몸무게가 표준보다 20% 이상 비만인 경우, 고지혈증이나 당뇨병 고혈압 협심증 등을 가진 환자는 수술 성공률이 낮다. 생체 폐이식에선 통상 뇌사자의 폐가 이용되고 있다. 특히 뇌사가 인정되는 구미 각국에서는 뇌사자가 공여한 폐가 널리 이용된다. 폐공여자는 폐 수용자와 가슴둘레, 흉곽 종경이 비슷해야 하고, 20~50세 사이의 심신이 건강한 사람이어야 한다.
또 조직적합 항원이 적합하고 혈액형이 동일하며 환자의 혈청과 공여자 사이의 림프구 교차반응이 음성이어야 한다. 이 중에서도 ABO혈액형의 교차반응이 가장 중요하다. 그러나 당뇨병이나 패혈증, 만성폐질환, 흉부손상, 악성종양, 고혈압 등을 앓는 사람이나 흡연자, 복부 및 흉부 대수술을 받은 사람 등은 폐를 공여하고 싶어도 할 수가 없다. 폐이식수술의 성공률은 85%를 상회하기 때문에 수술의 위험성보다 이식장기의 부족이 더욱 큰 고민거리. 특히 뇌사가 인정되지 않는 한국에서는 이식할 장기가 절대적으로 부족하다. 현재 이식이 필요한 사람 중 약 5%만이 필요한 장기를 얻고 있으며 약 30%는 이식을 기다리다가 사망한다. 기증되는 이식장기를 아무리 잘 쓴다 해도 필요량의 약 20% 정도밖에 충족시킬 수 없으며, 장기를 원하는 사람들의 수효는 갈수록 늘어나고 있다.
전 세계적으로 돼지나 원숭이 등 다른 동물의 장기를 이용한 이식수술에 눈을 돌리게 되는 이유가 여기 있다. 이종이식에 대한 연구는 20세기 초반에 토끼 돼지 염소 양 영장류 등을 통해 시작됐지만, 약 40년간 답보상태에 있었다. 그러나 새로운 면역억제제가 개발됨으로써 1963년 11월 미국에서 침팬지의 콩팥을 사람에게 이식하는 수술이 시행됐다. 최장 생존기간은 9개월이었고 조직 검사상 급성거부반응의 증거는 없었다. 이를 계기로 1964년 1월에는 침팬지 심장을 이용한 세계 최초의 이종심장이식이 시행됐다. 그 뒤 지금까지 8명에게 이종심장이식이 이루어졌는데 최장 생존기록은 20일이다. 이종이식이 가능한 기증자 후보로는 인간과 가까운 영장류나 구하기 쉬운 가축 등이 꼽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