몰카
신혼호텔도 안심 못한다
중앙일보 1999. 8. 31.
아무나 마구 벗기는 ‘1㎜눈’의 폭력
몰카비디오 홍수시대. 음란물의 주종을 이루던 서양 포르노가 시들해지고 본인들 몰래 찍은 평범한 남녀의 연출되지 않은 사랑행위가 비디오로 대량 유통된다. 세운상가 주변의 한 판매상은 “요즘 손님들은 값이 비싸더라도 아마추어들의 라이브 테이프만 찾는다”며 “수요가 늘어나니 생산도 많아지고, 그러다 보니 우리가 취급하는 절반 이상이 이런 것들”이라고 전했다.
안전한 곳이 없다
직장인 M 씨(28)는 최근 인터넷에 들어갔다가 기절초풍했다. 최근 애인과 지방의 한 모텔에 투숙해 나눈 은밀한 행위가 음란사이트 동영상에 생생히 뜬것이다. 지난해말 약혼녀와 비디오방에 놀러 갔다가 몰카에 찍히는 바람에 졸지에 음란비디오의 주인공이 된 회사원 K 씨(30). 친구에게서 빌린 비디오테이프를 보다 시리즈 중 하나의 주인공이 자신인 것을 발견한 황당한 케이스. 최근 검찰. 경찰에 신고된 사례들이다. 그러나 몰카비디오 시장의 규모를 가늠해 보면 자기가 등장하는지조차 모르고 있는 피해자들이 훨씬 더 많음을 짐작할 수 있다. 이렇게 매일매일 생산되는 몰카비디오의 대부분은 유통업자들과 결탁한 전문 제작자들의 소행으로 추정된다.
하지만 개인적 호기심으로 불특정 다수가 몰리는 여자 탈의실이나 공공화장실 등을 찍어 비디오나 CD로 유통시키는 경우도 있고, 불륜현장을 찍어달라는 의뢰인의 부탁을 받은 심부름센터 직원들이 촬영한 것을 파는 예도 적지 않다는 게 서울지검 김진모(金鎭模) 검사의 말이다. 카메라는 객실의 비상등이나 스프링클러, TV스피커의 안쪽 등에 주로 설치된다. 유선으로 건물 안에 몰래 설치된 모니터와 녹화기에 연결돼 사용되기도 하지만 모니터 없이 일반 TV와도 연결이 가능하다는 설명이다. 또 영상무선송수신기를 이용하면 실내에 설치된 카메라에 찍히는 장면들을 건물밖 자동차 안에서도 생생하게 수신해 녹화할 수 있다.
출처 파악 안 되는 점조직 유통
청계천에서 음란비디오를 취급하는 한 판매인은 “신혼여행지의 숙박업소가 몰카 찍기에는 좋은 장소”라고 했다. “테이프의 상당수는 그곳에서 올라온다. 젊은 신혼부부의 상품성 때문이다. 숙박업소 종업원에게 10만~20만 원 정도 주면 협조를 받을 수 있다”는 그럴싸한 주장을 폈다. 그는 서울의 일부 지역이나 근교 러브호텔 중 몇 군데에서도 역시 객실 한두 개에 몰카를 설치해두고 있다고 말했다. 용모가 괜찮은 젊은 커플들이 들어오면 종업원이 이들을 그 방으로 안내해 음란물 주인공으로 만들어 버린다는 주장이다. 대량 복사된 음란물은 생활정보지나 PC통신의 ‘게시판’ 또는 ‘장터’ 난 등을 통해 용산이나 청계천 등에 포진한 소매상들에게 대량으로 팔려 나간다. 광고를 보고 은밀히 연락해 오는 판매상들에게 테이프는 개당 3천 원, CD는 6천 원 정도씩에 파는 것으로 알려진다. 이들 소매상은 청계천 등지를 찾는 고객들에게 적게는 2만~3만 원에서 5만~10만 원까지 받고 팔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어떤 것들이 있나
‘교수와 제자’ ‘××콘도미니엄’ ‘신혼부부’ ‘여대’ ‘비디오방 섹스’ ‘미시주부’ ‘마누라의 여동생’ 등 구매욕을 자극하는 타이틀로 포장된다. 일부는 연출한 냄새도 풍기지만 대부분은 찍히는 사실을 모른 채 벌이는 남녀커플의 성행위가 담겨 있다. 얼굴모습과 대화내용이 또렷해 당사자들에겐 치명적이다. ‘여자탈의실’도 나체로 거울을 보거나 잡담을 나누는 장면이 목소리까지 곁들여져 누군지 금방 확인이 가능할 정도. 낯 뜨겁게도 초․중고 소녀들이 주로 찾는 스티커사진 부스의 단상에서 치마 속을 올려 찍은 ‘업 스커트’도 있다. 수사당국은 이 같은 몰카비디오가 1백50여 종에 이르는 것으로 추정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