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력
“나도 그거 한번 먹어 보자”
뉴스메이커 1999. 9. 2.
세월이 바뀌어도 늘 김포세관 유치품 보관 창고 한구석을 가득 메우는 품목이 있다. 녹용, 웅담에서 곰 발바닥, 백사, 호랑이뼈에 이르는 동서고금의 희귀한 정력제다. 이 때문에 김포세관 유치품 보관 창고는 정력이라면 껌뻑 죽는 한국인의 또 다른 ‘정력’을 보여주는 전시장이라고도 한다. 사실 과학․의학 지식은 하루가 다르게 발전하지만 정력제에 관한 한 첨단 지식은 별로 힘을 쓰지 못하고 있다. 정력에 좋다는 소문만 나면 혐오 식품이 명약으로 둔갑하고 값도 천정부지로 치솟는다. 진시황에 뒤질세라 정력제를 찾아 천릿길을 마다하지 않는 사람도 적잖다. 몇 해 전 국제사회로부터 손가락질을 받았던 한국인의 동남아 ‘보신관광’은 좋은 사례다. 하지만 한국인만이 신비의 정력제에 관심을 보이는 것은 아니다.
성욕, 성적 쾌락, 성 기능을 높이기 위한 약물 연구가 시작된 것은 인간의 성 본능만큼이나 오래됐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주장이다. 그렇다면 시대와 지역을 대표하는 정력제엔 어떤 것들이 있고 또한 그것들의 특징은 무엇일까. 동서양을 막론하고 고대 사람들은 생식과 관련된 것이 정력을 강화시키는 기능이 있다고 믿었다. 인삼, 코뿔소 뿔, 굴, 뱀 등이 이에 속한다. 그 형태가 인체와 흡사한 인삼은 원기를 회복하고 회춘을 돕는다고 해서 수천 년 동안 한국, 중국, 티베트, 인도차이나, 인도 등지에서 애용한 정력제다. 정력제로서 인삼이 가진 효능은 어느 정도 과학적인 검증을 거친 상태. 97년 고려인삼국제학술대회에서 연세대 의대팀은 “발기부전 환자 38명에게 인삼을 3개월 간 투여한 결과 64%가 효과를 보았다”라고 발표했다.
지난해엔 러시아 연구팀이 이와 유사한 연구 결과를 공개한 바 있다. 최근 미 시사주간지 <타임> 등이 인삼의 효능을 소개하고 미국, 캐나다 등 북미 지역에서 때아닌 인삼 바람이 불고 있는 것도 이런 연구 결과와 무관하지 않다. 아프리카 지역을 중심으로 ‘명성’을 얻고 있는 코뿔소의 뿔은 남성의 생식기를 연상시키는 모양으로 주목받았다. 하지만 실제 약리효과는 거의 없다. 굳이 따지자면 뼈에 들어 있는 칼슘 성분이 성욕, 생식 기능과 관련이 있다는 정도다. 굴은 일반 식사를 통해서는 부족하기 쉬운 아연 성분을 많이 가지고 있어 신체 건강을 증진시키고 정력을 보강하는 기능을 한다. 하지만 신비의 정력제라고 하기엔 무리가 있다. 고래로부터 사랑받은 정력제의 또 다른 부류는 정력이 강한(?) 것으로 보이는 동물의 생식기다.
아프리카에서 정력제로 쓰이는 사자의 생식기나 동양인이 즐겨 찾는 해구신 등이 이에 해당한다. 이들 동물은 수컷 한 마리가 여러 마리의 암컷을 거느리고 생활하는 것이 공통점. 하지만 이 역시 강장제로서 기능은 거의 없다는 것이 정설이다. 백합과에 속하는 다년생 풀인 마늘도 5,000년 전부터 정력제로 가치를 인정받은 식품이다. 단군신화에 나오는 마늘 이야기나 이집트 피라미드 벽에 써진 마늘의 효능은 이를 말해준다. 인삼과 함께 마늘도 특유의 강정 기능이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마늘의 약효 성분인 ‘위화아릴’이 혈액을 따라 순환하면서 세포에 활력을 주고 성선(性腺)을 자극해 성 호르몬의 분비를 촉진한다는 것이다.
실제 한방에서는 마늘이 최음제처럼 일시적으로 성욕을 자극하는 것은 아니지만 꾸준히 먹으면 체질을 튼튼하게 해 性 기능을 강화시키는 정력 식품이라고 권하고 있다. 동서고금의 정력제가 갖는 몇 가지 공통점에도 불구하고 정력제와 보양 식품에 대한 기호는 나라와 민족, 시대에 따라 차이도 크다. 최근 말레이시아에서 열린 남성 발기부전 연구에 따르면 각 민족은 성 기능 장애 치료에 각기 다른 믿음을 지닌 것으로 나타났다. 일부 중국인은 인삼, 수퇘지, 호랑이 생식기 등을 담은 술을 마시는 것이 성 기능 장애에 효과적이라고 믿었으며 일부 인도인은 남성의 정력을 증강시키려면 칠면조 다리를 먹어야 한다고 대답했다. 반면 말레이시아 사람은 허브 뿌리와 자무 자루로 된 식물 성분의 제품을 먹고 마사지를 받는 것이 최고라고 확신했다. 또한 아직도 일부다처제가 허용되는 아랍 지역 사람들은 대추야자열매와 양고기를 많이 먹는 것이 비법이라고 믿고 있다.
토마토와 해산물을 열심히 먹으면 70대에도 자식을 볼 수 있다고 믿는 이탈리아인 사이에는 갑오징어의 먹물이 정력제로 소문났고 일본인들은 자라와 장어를, 중국인은 인삼 부레와 사슴 심줄을 최고의 보신 식품으로 친다. 또한 같은 사물을 두고 한쪽에선 정력제로 다른 한쪽에선 정력 감퇴제로 보기도 한다. 토끼의 경우가 그렇다. 〈동의보감〉 등은 토끼에 대해 “맛은 좋으나 많이 먹으면 원기가 상하고 혈맥이 끊어지며 성욕이 감퇴하고 얼굴이 누렇게 되며 윤기가 없어진다”라고 경고하고 있다. 하지만 서양의 속설은 이와는 정반대다. 서양에선 토끼고기는 훌륭한 강정 식품이고 토끼는 정력가의 상징이다. 플레이보이 상품에 토끼가 등장하고 플레이보이 클럽 종업원이 ‘토끼옷’을 입는 것도 여기에서 비롯된 것이다. 중세부터 19세기까지 이집트의 미라 가루가 유럽에선 정력제로 판매됐다는 사실에서 알 수 있듯이 대부분의 정력제는 과학적인 무지에서 근거했다는 것이 전문가의 의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