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견
우리 사회의 마이더스 편견만 있고 배려는 없다.
뉴스플러스 1999. 8. 26.
“… 모두가 똑같은 손을 들어야 한다고 내게 그렇게 말하지 마… 아무것도 망치지 않아… 난 왼손잡이야”. 몇 년 전 젊은이들 사이에 유행했던 노래 ‘왼손잡이’는 다수만이 옳다고 여기는 사회 통념을 통렬하게 반박했다. 우리나라뿐 아니라 세계 모든 문화권에서 인류의 10%를 차지한다는 왼손잡이는 ‘옳은’ 손잡이들에 의해 알게 모르게 ‘핍박’ 받는다. 우리가 사용하는 도구의 대부분, 이를테면 가위, 자동차의 기어, 컴퓨터 자판의 기능키, 화장실의 물 내리는 꼭지 위치에 이르기까지 모두 오른손을 우세손으로 사용하는 이들을 위해 설계돼 있다.
하지만 이런 사례는 왼손잡이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우리 사회는 태생적으로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마이너가 된 이들을 두고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손가락질하는 일이 적지 않다. RH- 혈액형을 가진 사람도 그 피해자들 가운데 하나. 혈액형을 두고 이런 일이 벌어지는 것은 아마 개명한 세상에 우리밖에 없을 성싶다. 우리 인구 1000명당 3명꼴로 분포하는 이 희귀 혈액 보유자들은 텔레비전 자막으로 급히 RH- 혈액을 구한다는 방송이 나간 다음날이면 ‘드라큘라’ 운운하는 주변의 ‘악의 없는 농담’에도 상처를 입는다. 혈액형 자체를 질병으로 여기는 사람들조차 자주 만난다.
▷ RH-라는 이유만으로 파혼당하기도
적십자중앙혈액원의 주선으로 지난 88년 6월 조직돼 급한 순간 서로 피를 나누고 있는 ‘중앙 RH- 헌혈봉사회’ 윤재호 회장(49)에 따르면 몇 년 전 한 여성회원은 혈액형 때문에 결혼이 깨지기도 했다. RH- 여성은 임신과 출산이 불가능하다는 이야기를 듣고 신랑 측에서 결혼을 틀어버린 것. 생물학적으로 모체의 RH- 항체가 태아의 혈구를 파괴해 유산 위험성이 높긴 하지만, 이미 오래전 항체억제제가 개발 돼 이 문제는 말끔히 해결됐다. 윤 회장은 “횡포라고까지 말하고 싶진 않지만, 다수가 소수를 배려하기보다는 오히려 궁지에 몰아넣으려는 가학적 징조마저 있다”라고 꼬집었다. 그러나 이들의 형편은 장애인이나 혼혈아에 비하면 훨씬 좋은 편. ‘국민가수’ 인순이 씨는 몇 년 전 출산 직후 가진 인터뷰에서 아기의 머리카락부터 확인했다고 말했다. 아마도 대한민국 사람이라면 이 말의 의미를 모르는 이는 없을 것이다.
▷ 마이너 포용 안 하는 사회는 창조성 없는 사회
97년판 브리태니커 연감에 따르면 전 세계 인구 58억 400만 명 가운데 가장 많은 신자를 가진 종교는 11억 2600만 명의 이슬람이다. 이 가운데 우리나라의 이슬람교 신도는 3만 5000명 정도. 이들 한국의 무슬림은 종교의 자유가 무한정 허용된 이 나라의 천대받는 ‘이교도’다. 한국인 신자가 이슬람의 다섯 가지 신앙 실천 의례인 오주(五柱)-신앙고백, 하루 다섯 번의 예배, 라마단(이슬람력 9월)의 단식, 희사, 메카 순례 등을 지키기란 불가능에 가깝다. 이를테면 하루 다섯 번의 예배 가운데 가장 중요한 ‘주흐르’(1시 낮예배)를 올린다고 집 밖에서 메카를 향해 절을 했다가는 미친 사람 취급받기 십상이다. 한국이슬람교중앙회 이행래 이맘(예배인도자)은 “생의 완성을 위한 노력은 원래 어려움을 수반하는 법”이라면서 “이슬람 문화를 이질적으로 여기는 까닭에 많은 신도들의 마음고생이 작지 않다”라고 말했다.
이들 우리 사회의 이슬람교 신자가 겪는 고통은 어쩌면 자신의 신념이나 취향에 따라 마이너가 되기를 선택한 사람들이 겪어야 할 어려움의 전형을 보여주는지도 모른다. 성공회대학교 유통정보학과 박창길교수(50)는 20년째 채식 위주로 식생활을 지속하고 있는 채식주의자다. 건강이나 미용, 또는 종교 계율 등 채식주의를 고집하는 다양한 이유가 있지만, 그는 생명에 대한 외경 차원에서 고기를 입에 대지 않는 경우다. 그는 모피는 물론이고 가죽옷이나 가죽구두, 동물의 지방이 들어간 화장품 등 ‘동물학대의 결과물’도 몸에 대길 피한다. 이 때문에 그의 세상살이는 남보다 몇 배 고달프다. 무엇보다 집이 아닌 바깥에서의 식사시간이 곤혹스럽다. 최근 들어 서울 시내에 10여 군데 채식전문 식당이 문을 열긴 했다지만, 매번 그런 곳을 찾아갈 수도 없는 노릇. 동료들과의 회식이나 잔치 초대는 그가 특히 피하고 싶은 순간들이다. “외국에는 고기는 물론, 우유나 꿀조차 안 먹는 채식주의자도 있습니다.
그들 나라에서는 이런 식생활을 고수하려는 사람들의 생활 스타일을 도와줍니다. 그러나 우리는 다른 사람에 대한 배려가 없어요. 오히려 다르다는 것을 이유로 상대를 궁지로 몰아넣기도 하지요. ‘음식’을 왜 안 먹느냐고 공박하는데, 음식이란 이름이 다른 동물에 대한 학대를 정당화하는 근거가 되지는 못합니다.” 신념에 의해 소수가 되길 자청한 그는 “획일화를 강요하는 사회는 당사자뿐만 아니라 사회 전체에도 손해”라고 말했다. 마이너를 포용할 수 있는 힘을 갖지 않은 허약한 사회에서 창조성과 발전이란 있을 수 없기 때문이란 것. 사회의 건강함을 지키기 위해서라도 다수는 소수들이 자기 스타일을 지킬 수 있도록 도와주어야 한다는 주장이다. 한 우화집에 등장하는 구절은 우리 사회 구성원 모두가 음미해 볼만하다. “남에게 함부로 손가락질하지 말라. 상대를 향한 손가락은 둘이지만 나머지 세 손가락은 당신을 향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