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oulcs 2024. 6. 12. 05: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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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화 시대의 빈부 격차

 

한겨레21 1999. 8. 12. 

 

인터넷이 지닌 무한대의 성장 가능성에 대해서는 의견의 차이가 별로 없지만 인터넷의 문화사회적 의미를 두고는 엇갈린 예측이 나오고 있다. 낙관론자들은 정보 고속도로가 전 세계를 마셜 맥루언이 지적한 대로 하나의 마을로 묶어서 유토피아를 만들어낼 것이라고 예측한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정보 고속도로가 가상공간에서 사람들이 실제 사회나 실제 이웃들과는 격리돼 있는 가짜 소속집단’(false community)을 만들어낼 것이며, 좋은 정보와 나쁜 정보를 가리기조차 어려운 혼돈상태를 만들어낼 수 있다고 경고하기도 한다. 또한 마음만 먹으면 맨손으로라도 서부로 달려가서 금광을 캐던 개척시대와는 달리, 정보화 시대에는 특정 계층의 사람들이 도태될 가능성이 높다. 누구나 쉽게 정보를 접하게 되고, 손쉬운 정보의 보급으로 시민들의 참여를 바탕으로 진정한 민주주의가 도래할 거라는 정보화 시대의 장밋빛 꿈은 지금의 현실과는 상당한 거리가 있다.

 

1997년 한 해 동안에만도 전 세계에서 5천만 명 이상의 사람들이 인터넷을 사용했다는 통계가 나와 있지만, 정보화가 가장 잘돼 있다는 미국에서조차도 전체 인구의 25% 정도만이 고정적으로 인터넷을 쓰고 있는 실정이다. 인터넷이 각광받은 이유의 하나는 바로 정보의 민주화였다. 정보가 특정 계층의 소유물이 아니라 일반 대중에 활짝 공개된다는 점에서 좋은 의미에서의 정보 폭발이라고도 했다. 하지만 인터넷을 통한 정보의 빠른 보급으로 시민들의 정치적 관심이나 참여도 높아질 거라는 예상과는 달리, 인터넷이 민주주의의 이상을 구현하는 데 아직까지는 크게 기여하지 못하고 있다는 분석이 잇따라 나오고 있다. 여러 연구에서, 미국에서 인터넷을 쓰고 있는 25% 안팎의 사람들을 분석한 결과, 그들은 이미 인터넷 이전부터도 정치 경제적인 엘리트 집단이었다는 결론이 내려졌다.

 

말하자면, 굳이 인터넷이 없다라도 신문과 방송, 인간관계를 통해서 정치적인 정보를 입수하는 데 전혀 어려움이 없을 계층의 사람들이라는 것이다. 그러니 인터넷이 이전에 정치에 무관심하던 계층을 끌어들이지는 못했고, 이미 엘리트 집단에 속하던 사람들의 정보를 증폭시켜 주었다는 결론이다. 이들이 인터넷을 이용해서 정보를 더 효율적으로 얻는 것은 사실이지만, 인터넷 자체가 일반 대중 전체에 정보를 보급해서 민주주의의 이상이 실현될 것이라는 예측은 현재 상황에서는 요원하다고 하겠다. 인터넷의 보급률이 현재 전화기의 보급률만큼 높아질 때나 돼야 가상공간에서의 진정한 민주주의가 가능한 일이다. 인터넷 시대에는 정보를 많이 가진 부자와 그렇지 못한 빈자의 격차가 심해진다. 인터넷 접속을 제공하는 학교나 조직에 속하지 않은 개인이 가상공간에서 정보를 얻기 위해서는 일단 컴퓨터가 있어야 하고 모뎀도 필요하다. 한 달에 얼마씩 내는 통신료도 감수해야 한다. 당장의 생활을 해결해야 하는 입장에서는 만만치 않은 입장료문턱이다.

 

어떤 계층에서는 인터넷을 통해서 세계 각국의 정보를 안방에서 받아보고 있는데, 다른 계층에서는 컴퓨터 한번 만져보지 못했다면 시간이 지남에 따라 정보의 격차는 더 벌어질 수밖에 없다. 컴퓨터가 중심이 될 미래의 교육과 정보에서 소외된 계층의 자녀들이 겪어야 할 어려움은 쉽게 예측할 수 있다. 신문과 방송이 정보화사회를 찬양하고, 현재에 가능한 정보기술을 알려주고, 미래의 기술 발전을 예측하는 일도 중요하지만, 그런 정보가 모든 대중에 다 의미 있으리라고 추측해서는 곤란하다. 또 한 정보화 시대의 행렬에 참여할 자산이 없는 계층의 존재에 대해서 애써 눈감아서도 안 될 일이다. 가진 자만을 위한 정보사회가 되지 않기 위해서는 사회의 어느 계층에서나 손쉽게 정보를 얻을 수 있도록 공공장소에 컴퓨터를 설치하고 누구나 쉽게 참여할 수 있는 정보화 교육을 실시해야 할 것이다. 인터넷의 장밋빛 약속 뒤에 가려진 정보의 불균등 분배에도 시선을 주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