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햇살 알맞으면 보약 따로 없다

 

주간조선 1999. 7. 29. 

 

자외선 과다노출 피해야… 오존층 파괴로 피부암-백내장 증가

햇살이 우리의 텅 빈 몸 안으로 들어와/ 고통에 겨운 우리의 근육을 움직이고/ 갈라진 우리의 생각을 맺어주도다.베르나르 베르베르의 베스트셀러 장편소설 개미에 나오는 불개미왕국의 여명악이다. 베르베르는 한줄기 빛이 비 쳐들자 다리가 움직이고, 발톱까지 그 온기가 전해지면서, 마침내 하나의 생명이 몸을 추스른다’고 썼다개미의 생명력을 따사로운 햇볕에서 찾은 것이다. 성경 창세기에는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는 첫째 날, 빛을 만들었다고 기록하고 있다. 천하만물 생명력이 빛에서 비롯됨을 시사하는 대목이다. 실제로 빛은 식물에게 있어 생명 그 자체다. 식물의 엽록소는 태양을 받아들여 유기화합물을 생성하는 광합성 작용을 통해 생명을 지탱한다. 식물의 광합성과 유사한 메커니즘을 동물이나 사람에게서도 찾을 수 있을까. 사람의 피부가 비타민D를 생성하는 과정이 어찌 보면 식물의 광합성 작용과 유사하다.

 

사람의 피부엔 프리(Pre) 비타민 D’에 해당하는 물질이 있는데 이것이 빛과 반응해 비타민 D를 생성시킨다. 비타민 D는 칼슘의 흡수에 관계되는 영양소. 사람은 15ng(나노그램)의 비타민 D가 있어야 하며, 그 이하인 경우엔 골화 작용이 떨어져 골다공증 등이 생길 수 있다고 한다. 식물이 튼튼한 둥지를 이뤄 열매를 맺듯, 사람의 골격형성에 영향을 주는 것이다. 신촌세브란스병원 임승길(내분비내과) 교수는 미국 하바드의대 매사추세츠종합병원에서 장기입원자를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57%가 비타민D 부족증이었는데, 대부분 햇빛을 받지 못했기 때문인 것으로 나타났다. 우리처럼 유제품의 소비가 떨어지는 나라에선 비타민D 부족증이 생기기 쉽기 때문에 적절하게 햇빛을 쬐는 게 건강에 도움이 된다”라고 말했다. 햇빛은 또 사람의 기분을 밝고 명랑하게 만든다.

 

반대로 이야기하자면 햇빛을 적게 쬐면 우울증에 걸릴 가능성이 높아진다는 것이다. 우울증 환자는 여름철에 크게 감소했다 가을에서 겨울로 접어드는 시절에 크게 증가한다. 이를 계절성 우울증이라 한다. 아직 햇빛과 우울증과의 상관관계는 과학적으로 설명되지 않고 있다. 삼성서울병원 정신과 이동수 교수는 우울증 환자에게 2500~1만 룩스의 인공 광선을 쬐게 하는 광선치료를 하면 증상이 좋아진다우울증 환자가 아니라도 겨울철엔 누구라도 감정과 활동이 위축되기 마련이기 때문에 틈나는 대로 햇빛을 쬐는 게 좋다”라고 말했다한편 햇빛은 각종 피부질환을 일으키기도 하지만 반대로 특정 피부질환을 치료하기도 한다. 서울대병원 피부과 윤재일 교수는 건선이나 백랍, 피부 임파종 등의 치료에 자외선이 이용되며, 심지어는 원형탈모증 등의 치료에도 빛이 이용된다”라고 말했다.

 

그 밖에 월경 전 증후군 신경성 섭식장애 시간생물학적 장애(시간의 주기적인 반복이 깨어져 나타나는 각종 심신 부조화) 탄수화물 섭식 비만증(비정상적으로 많은 양의 탄수화물을 섭취하고자 하는 욕구가 일어 생기는 비만증) 등의 치료에도 빛이 이용된다. 고려의대 구로병원 정신과 정인과 교수는 강한 빛을 쪼여 인체의 생물학적 주기를 조절하는 멜라토닌의 분비를 조절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최근엔 난치성 편두통의 치료에도 빛이 이용되고 있다. 이탈리아토리노대학 피네시박사팀은 편두통 환자에게 2500룩스 정도의 빛을 하루 걸러 한 번씩 30분 정도 48주간 쪼여준 결과 편두통 증상이 크게 감소했다고 국제학회에 발표한 바 있다. 뇌신경전달물질의 농도를 증가시켜 편두통 증상을 호전시켰을 것이란 게 피네시 박사의 설명이다.

 

그러나 현대인에게 있어 햇빛은 득 보다 실이 되는 경우가 많다. 우선 햇빛은 피부의 적이다. 햇빛 속의 자외선이 주범이다. 급성적으로는 일광화상과 일광 두드러기, 광과민반응(광독성 피부염, 광알레르기성 피부염, 광과민 피부염 등) 등을 일으키며, 만성적으로는 피부노화를 일으킨다. 피부가 탄력을 잃고 쭈글쭈글해지며, 검버섯과 기미 등을 악화시킨다. 서울중앙병원 피부과 성경재 교수는 나이가 들어 피부가 쭈글쭈글해진다고 알고 있지만, 사실은 햇빛의 과다 노출 때문이다피부노화를 일으키는데 나이가 1의 영향을 미친다면 햇빛은 4의 영향을 미친다따라서 햇빛 노출을 최소화하면 나이가 들어도 팽팽한 피부를 유지할 수 있다”라고 말했다. 자외선이 가져다주는 가장 직접적이고 무서운 재앙은 피부암이다. 우리나라에선 발생빈도가 높지 않지만, 피부암은 미국에서 매년 40만~50만 명의 새로운 환자가 발생하는 발생빈도 1위 암. 전체 피부암의 90% 이상이 햇빛에 노출되는 부위에 생기고 있다.

 

예를 들어 자동차 운전대가 왼쪽에 있는 미국에선 신체의 왼쪽 부위에, 운전대가 오른쪽에 있는 영국에선 신체의 오른쪽 부위에 피부암이 더 많이 생기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성경제 교수는 특히 심한 일광화상을 당한 부위에 피부암이 잘 생기는데, 이는 자외선이 유전정보를 지니고 있는 DNA의 수호자격인 p53의 구조에 변화를 일으켰기 때문”이라며 “동남아나 남태평양 등지로의 피한 여행이 확산되고 있고, 인공선탠까지 유행하는 등 햇빛에 노출될 기회가 크게 증가함에 따라 우리나라서도 최근 피부암이 증가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햇빛은 또 백내장의 발병률을 직접적으로 높인다. 예를 들어 해발 4000m에서 사는 티베트 사람들은 고도가 낮은 지역 사람들에 비해 백내장 발생률이 60% 정도 높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신촌세브란스병원안과 임승정 교수는 자외선은 눈의 망막에 유해하므로, 각막과 수정체가 자외선을 흡수하여 시력을 보호한다. 그러나 수정체에 흡수된 자외선은 수정체의 각종 단백질을 산화시키는 작용(광산화작용)이 있어 수정체 혼탁을 일으킨다”라고 설명했다. 임 교수는 해수욕장이나 스키장 등에서 순간적으로 강한 햇빛에 노출된 경우 백내장에 걸릴 위험이 높은 것으로 보고되고 있다자외선이 강한 여름철에는 선글라스나 챙모자로 눈을 보호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햇빛으로 인한 피부암백내장 등의 발병률은 오존층이 파괴됨에 따라 최근 급증하고 있다. 자외선은 파장에 따라 A, B, C 세 종류로 나뉜다. 이중 우리 몸에 해로운 자외선 C는 오존층에서 거의 100% 차단되고, B50% 차단된다.

 

그러나 1985년 남극 하늘에 오존층이 크게 구멍이 뚫렸다는 사실이 처음 발견됐으며, 그 구멍이 점차 커져서 우리나라가 위치해 있는 북위 2050도 사이의 북반구엔 오존층이 27% 정도 감소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이에 따라 지표면에 도달하는 자외선의 양이 412% 증가됐다고 한다. 성경제 교수는 자외선이 1% 증가할 때마다 피부암이 0.52% 정도증가하기 때문에 오존이 27% 감소했다면 피부암이 최대 24%까지 증가하게 된다”라고 말했다. 서울대병원 윤재일 교수는 햇빛이 비타민 D를 생성시키고, 또 인공광선이 몇몇 질병의 치료에 사용되기도 하지만 일반적으로 햇빛은 건강에 나쁜 영향을 더 많이 끼친다야외활동을 할 때는 모자와 선글라스, 선크림 등으로 자외선 노출을 최소화하는 게 좋다”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