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개월
1년을 13개월로 바꾸자
뉴스플러스 1999. 7. 22.
1년 열두 달을 열세 달로 바꾸자. 한 국제기구가 이러한 이색 제안을 내놓아 관심을 끌고 있다. ‘세계 13 월력(月曆) 변경 평화운동’이라는 긴 이름의 이 단체는 최근 1년 12개월로 돼 있는 그레고리안력(曆) 체계를 13개월의 마야 ‘촐킨’(Tzolkin)력으로 바꿔 2000년을 ‘촐킨 원년’으로 삼자며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와 코피 아난 유엔 사무총장에게 공개 청원서를 보냈다. 이 단체가 13 월력을 주장하는 근거는 간단하다. 13 월력이 종래의 그레고리안력보다 자연의 순환 주기와 더 잘 맞는다는 것. 이 단체의 알론조 유리아 대변인은 “현행 달력 체계는 날짜를 불규칙하게 분산시켜 오류가 많을 뿐 아니라 실제 자연 주기와도 잘 맞지 않는다”라고 주장한다. 달이 1년에 13회 지구를 공전하는 것도 13 월력이 과학적임을 보여주는 근거라는 것이다. 생물학적 주기도 마찬가지.
예컨대 여성의 월경 주기는 1년 13회로 마야 문명에서 채택했던 13 월력과 일치한다. 유리아 대변인은 “13 월력 이야말로 가장 과학적인 체제”라며 “현행 그레고리안력의 열두 달을 28일짜리 열세 달로 바꿀 경우 1년은 364일이 돼 딱 하루만이 모자라게 되므로 매년 이 외시간(外時間․Outside of time)을 처리하기는 쉬울 것”이라고 말한다. 올해를 13 월력으로 환산할 경우 외시간은 7월 25일이 된다. 1년을 13개월로 나눌 경우 각 달의 이름도 ‘문’(Moon․月)을 접미사로 갖는 신조어로 바뀌게 된다. 1월은 ‘마그네틱 문’(Magnetic Moon), 2월은 ‘루너 문’(Lunar Moon), 3월은 ‘일렉트릭 문’(Electric Moon) 등과 같은 식이다. 모든 이름은 광범한 논의를 거치겠지만 주로 신비주의적 근거를 가진 지구의 여러 사물들로부터 따오게 될 것이다. 흥미로운 것은 13 월력을 지지하는 사람들이 대부분 과학자라는 사실이다. 지난달 코스트라카 평화대학에서 열린 13 월력 제창을 위한 학회에도 양자물리학자인 마크 커밍스, 러시아의 물리학자인 블라디슬 라브 루고벤코 등 저명한 과학자들이 참석했다.
세계은행, 세계비폭력운동기구 등의 인사들도 눈에 띄었다. 이들은 이구동성으로 “13 월력이야말로 자연의 법칙을 잘 적용한 것이며, 종교의 벽을 넘어 전 세계 인류를 평화로 묶을 수 있는 한 방법이기도 하다”라고 주장했다. 13 월력 체계를 채택하려는 움직임이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교황 그레고리 8세에 의해 현행 12 월력 체계가 정립된 1582년 이후에도 13 월력 체계는 간헐적으로 제기돼 왔다. 예컨대 프랑스혁명 이후인 1793년에는 공화력이 채택됐으나 10년 만에 폐지되고 말았다. 19세기에는 철학자 오귀스트 콩트가 시간 측정의 변혁을 주장하며 다시 13 월력의 불길을 지폈다. ‘실증주의자의 달력’(Positivist Calendar)으로 알려진 그의 제안은 1년을 13개월로 나누고, 각 달은 28일로 하자는 것. 그러나 그의 제안은 타히티에서 사용되던 달력 체계를 기반으로 한 것이었고, 일반의 반응도 시큰둥했다. 20세기 들어서도 그레고리안력을 바꾸기 위한 시도는 그치지 않았다.
1931년 ‘국제연맹’에 소속된 42개국 111명의 대표들이 13 월력 채택을 결의한 것. 그러나 이들의 제안은 로마교황청과 언론의 반대에 부딪혀 무산되고 말았다. 이번에 ‘세계 13 월력(月曆) 변경 평화운동’ 단체가 13 월력 채택을 주장하며 그 청원서를 로마교황청과 유엔에 보낸 것도 이러한 상징적 맥락 때문이다. 13 월력이 일반의 폭넓은 지지를 얻더라도 막강한 종교적 권위를 갖는 바티칸이 반대할 경우 그 채택 가능성은 매우 낮을 수밖에 없다. 이 단체의 바람대로 2000년, 혹은 2001년이 ‘13 월력 원년’으로 자리 잡을 수 있을까? 아직 알 수 없다. 바티칸과 유엔이 아직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어쨌든 분명한 것은 새로운 달력 체계가 채택될 경우 전 세계의 달력 회사들이 ‘밀레니엄 특수’를 톡톡히 누리게 되리라는 사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