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러스
걸렸다 하면 즉시 사람 잡는 바이러스
1999. 5. 27. 뉴스플러스
치명적인 신종 바이러스가 출현해 세계를 긴장시키고 있다. 5월 6일 세계보건기구(WHO)는 콩고민주공화국에서 발생, 63명의 목숨을 순식간에 앗아간 출혈성 열병이 ‘마르부르크 바이러스’에 의한 것으로 추정된다고 밝혔다. 비슷한 시기에 이 바이러스가 우간다의 광산지대에서 광원들을 중심으로 확산돼 수일만에 52명이 사망했다. 고열과 출혈에 시달리다 불과 48시간 이내에 사망하게 만드는 금세기 최악의 바이러스가 등장한 것이다. 더욱 무서운 점은 신종 바이러스의 위협이 단지 아프리카의 몇몇 국가에 한정되지 않을 것이라는 사실이다. 어느 순간 아시아에서 비슷한 환자가 발생할지도 모른다. 바이러스에 의한 전염병은 ‘비자도 국경도’ 없는 존재이기 때문. 마르부르크 바이러스의 정체는 무엇일까. 주로 박쥐와 쥐에 의해 전염되는 것으로 예상될 뿐 숙주와 감염경로에 대해 거의 알려진 게 없다. 단지 감기처럼 공기로 전염되지 않고 환자의 체액을 통해 다른 사람을 감염시키는 것으로 추정될 뿐이다.
‘마르부르크’라는 이름은 독일의 마르부르크대학에서 따온 것이다. 1967년 이 대학의 한 연구원이 우간다에서 수입한 녹색원숭이의 조직을 관찰하다 정체를 알 수 없는 바이러스에 감염돼 사망한 데서 유래했다. 당시 환자 31명 가운데 7명이 사망했으며, 이후 세계 곳곳에서 몇 차례에 걸쳐 비슷한 환자들이 발견돼 왔다. 한 가지 확실한 점은 마르부르크 바이러스가 또 하나의 치명적인 바이러스인 에볼라와 모양이 비슷하다는 사실뿐이다. 에볼라 환자는 1976년 자이르의 에볼라강 유역에서 처음 발견됐는데, 318명의 환자 중 280명의 목숨을 앗아갔다. 환자의 상태는 참혹하다. 모세관이 죽은 혈액 세포로 막혀 곳곳에 멍이 들고, 피부는 물집 때문에 짓물러 젖은 종이처럼 녹아버린다. 시간이 지날수록 눈과 귀, 콧구멍에서 피가 마구 솟아 나오고, 환자는 결국 녹아가는 내장의 검은 찌꺼기를 토하다 사망에 이른다.
마르부르크와 에볼라는 모두 실타래처럼 생겼다. 하지만 이들에 의한 질환이 잘 구별되지 않는다. 그래서 이들을 통틀어 ‘아프리카형 출혈열’이라 부르기도 한다. 치사율이 80%에 이르기 때문에 일단 감염되면 손을 쓰지 못한다. 더욱이 감염 이후 사망까지의 시간이 무척 짧다. 에볼라 환자의 경우 통상 감염된 지 2주 내에 사망한다. 놀랍게도 이번 마르부르크 바이러스는 그 기간을 불과 이틀로 단축시켰다. 과학자들이 바이러스의 정체를 밝히기 어려운 점 가운데 하나는 환자가 금방 사망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왜 갑작스럽게 아프리카 지역에서 마르부르크 질환이 발생한 것일까. 물론 이 바이러스가 누구로부터 퍼지기 시작했는지, 어떤 경로를 통해 전염됐는지는 알 수 없다. 단지 바이러스가 잘 전염되는 상황이 벌어졌다는 점은 분명하다. 그것이 바로 아프리카 대륙에서 벌어지고 있는 각종 전쟁이다. 열대 밀림 속에서 언제 끝날지 모르는 전투에 밤낮으로 임하고 있는 군인들에게 위생관념이 있을 수 없다.
각종 병균이 득실거리는 불결한 환경에 무방비하게 노출된 셈이다. 이들 중 누군가 바이러스에 감염된다면 질병은 군인과 민간인 모두에게 급속히 전염될 수 있다. 사건 발생 며칠 뒤 남아프리카공화국 보건부의 카메론 박사는 “전쟁이 더욱 많은 질병을 낳고 있다”라고 논평하고 1차 세계대전 당시 총탄에 맞아 사망한 사람보다 바이러스에 감염돼 희생된 수가 더 많았다는 점을 환기시켰다. 그는 일례로 앙골라에서 25년 동안 지속되고 있는 정부군과 반정부군 간의 전투 때문에 지난 2개월 동안 수도 루안다에서 50명 이상의 어린이가 소아마비로 사망했고 700여 명이 질병을 앓게 됐다고 밝혔다. 또 분쟁이 일어나고 있는 지역에서 예외 없이 콜레라나 뇌막염과 같은 치명적 바이러스가 창궐하고 있다고 한다.
카메론 박사는 이번 마르부르크 바이러스의 등장 원인 역시 전쟁에서 찾고 있다. 실제로 작년 말 우간다가 콩고민주공화국 북부를 장악하고 있는 반군을 지원함으로써 양국은 적대관계에 돌입한 상황이었다. 콩고민주공화국 국방부 대변인은 “마르부르크 질환이 본국이 고용한 다수의 외인부대를 통해 전염된 것 같다”라고 밝혔다. 원인이 어찌 됐든 이번 사건은, 조만간 현재보다 더욱 강력한 바이러스가 등장할지도 모른다는 점을 시사한다. 실제로 세계보건기구가 90년대 중반부터 강조해 온 사안을 들여다보면 이런 상황을 쉽게 실감할 수 있다. 세계보건기구는 1996년 ‘세계보건보고서’에서 지구가 전염병으로 연간 1700만 명이 사망하는 ‘보건위기’에 처해 있다고 경고했다. 이 보고서는 말라리아 콜레라 결핵 등의 주요 전염병은 적은 비용으로 예방하거나 치유할 수 있는데도 세계 각지에서 급속도로 다시 번지고 있다면서, 이들 전염병과 싸우기 위한 투자를 늘리도록 촉구했다.
또 20세기 흑사병으로 불리는 에이즈나 에볼라 출혈열 같은 전염성 높은 새로운 질병들이 전례 없이 빠른 속도로 생겨나고 있으며, 지난 20년 동안 최소한 30개의 새 질병이 발견됐지만 상당수는 아직 치료방법이 없다고 밝혔다. 1997년 4월 7일 ‘세계 보건의 날’을 맞아 세계보건기구가 내건 표어는 “전염병 시대 다시 오다-우리 모두 관심을, 우리 모두 대응책을”이었다. 또 5월 11일 발표된 보고서에는 작년 전 세계에서 최소한 228만 명이 에이즈에 의해 사망함으로써 심장병 발작 호흡기질환에 이어 치사율 세계 4위를 기록했다는 점이 명시됐다. 일부 학자들이 경고하듯 21세기에는 바이러스에 의한 새로운 전염병의 시대가 도래할 듯한 분위기다. 현재 에볼라나 마르부르크는 ‘다행히도’ 그 치명성에 비해 확산 속도가 느리다. 이 바이러스에 감염된 환자가 빠른 시간 안에 사망하기 때문에 숙주를 잃은 바이러스 역시 함께 사라지게 마련이다.
따라서 환자가 다른 사람에게 바이러스를 옮길 시간이 비교적 짧다. 하지만 이 얘기는 어디까지나 ‘현재’의 바이러스 수준을 전제로 한 것이다. 만일 공기로 감염될 수 있는 새로운 변종이 등장한다면 어떨까. 이에 대한 대비책이 마련돼 있지 않다면 마치 겨울에 감기가 확산되는 속도처럼 빠른 시간 안에 다수가 사망에 이를 것이다. 그 정도는 아니더라도 위험의 가능성은 도처에 깔려 있다. 증상이 심한 환자가 방역망을 피해 비행기에 탑승하고, 그 환자에게서 많은 체액이 분비된다면 옆좌석 승객에게 전염될 수도 있다. 보다 근본적으로는 문명 교류가 활발해지고 인간의 생활권이 확대됨으로써 세계가 더욱 가까워진 만큼 다른 나라의 바이러스와 만날 기회가 많아지고 있는 게 사실이다. 더욱이나 세계 무역 10 대국에 속하는 한국으로서는 아프리카의 사건을 남의 일로만 여길 수 없는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