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oulcs 2024. 5. 16. 06: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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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도 관상용 미인?

 

1999. 6. 3. 뉴스피플

 

깎고, 높이고, 바르고, 굶고. 지금 이 땅의 여자들에게 외모 가꾸기는 지상과제다. 아찔아찔한 현기증속에서 살을 빼고, 뼈를 깎는 아픔을 견디며 아무렇지 않게 또 뼈를 깎아낸다. 남다른 다이어트 비법과 화장술이 잘 사는 삶을 개척하는 비장의 무기로 자리매김한 사회. 무엇이 그토록 우리로 하여금 미인강박증에 허우적대게 하는가. 지난 515일 오후 서울 충정로 문화일보사 홀에서 열린 안티 미스코리아대회’ 장은 발 디딜 틈이 없었다. 페미니스트 저널 ‘if’가 기존 미인대회의 폐단을 꼬집으면서 여성미의 새로운 기준을 제시하고자 마련한 별난 무대였다. 거기선 팔등신의 미녀가 오히려 찬밥이었다. 신체 사이즈를 재는 대신 시종 춤, 노래, 패션쇼, 퍼포먼스로 웃고 떠든 축제. 그날 그들은 구호 하나를 내세웠었다.

 

미스코리아대회를 폭파하자그러나, 그로부터 1주일 후에 있은 한국 최고의 미인대회에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말도 많고 탈도 많은 미스코리아대회는 올해도 변함없이 열광 속에 개최됐다. 세상 한편에서 그토록 목놓아(?) 시비를 걸었건만, 사람들은 밤잠까지 설쳐가며 TV앞에서 목을 뺐고 기어이 미의 여왕을 등극시켰음이다. 깎아놓은 듯한 이목구비에 가늘고 긴 팔다리의 미스코리아 후보들을 보며 여성 시청자들은 무슨 생각을 했을까. 아무리 강한 부정을 해도 누구나 한 번쯤은 품었을 솔직한 희망사항. ‘단 하루만이라도 저런 모습으로 살아봤으면아름다움을 추구하는 것은 인간의 본능이다. ()를 구현하는 작업은 궁극적으로는 인류역사 발전의 원동력이었을 수도 있다.

 

모르긴 해도 그 작업의 역사는 인류역사와 궤를 같이하고 있을 것이다. 그리스 신화만 보더라도 아프로디테가 미의 여신이 되기까지의 과정은 그야말로 작은 전쟁이었으니까. 그러면 왜 인간은 아름다움에 끝없이 집착할까. ()의 본질은 도대체 무엇일까. 한국인의 얼굴 연구작업에 10년 넘게 매달려온 조용진(50․서울교대미술과) 교수는 “아름다워지고 싶고 아름다움을 소유하고자 하는 심리는 결국 쾌감을 느끼고 싶어 하는 인간의 욕망에서 나온다. 다시 말해 예쁘고 잘생긴 이성을 차지하려는 심리 기제는 그로부터 쾌락을 얻어내고자 하는 데에 있다”라고 풀이한다. 성형외과의들은 쾌락을 느끼게 되는 얼굴이 따로 있다고들 말한다.

 

유행가가사처럼 자꾸만 보고 싶게 만드는 기분 좋은 얼굴이 있다는 것이다. 서울 강남구 압구정동에서 개업 중인 김정헌 성형외과원장은 이상적인 미의 기준은 시대적 변화나 사회문화적 환경에 따라 달라진다”라고 전제하고 역사를 거슬러 짚어보면 미의 척도는 당대의 문명주도국이 어디냐에 좌우되는 경향이 뚜렷하다”라고 주장한다. 아름다움에 영원히 절대적인 기준이 적용되는 것은 아니라는 얘기다. 실제로 미인의 조건은 시대나 문화권에 따라 꾸준히 변천해 왔다. 고대 서양에서는 살집이 통통하고 풍만한 여성이 미인대접을 받았다.

 

이는 비너스를 통해 단적으로 입증되는 사실이다. 중세로 넘어가면서 그 기준은 풍만함 대신 호리호리한 몸집 쪽으로 기울어갔다. 그렇게 멀리 갈 것도 없다. 2차 세계대전이 한창일 때 우상이었던 메릴린 먼로에서부터 신디 크로포드, 클라우디아 쉬퍼, 그리고 케이트 모스. 꼬챙이처럼 가죽만 남은 말라깽이 모델의 전형이 케이트 모스다. 우리의 상황이라고 다르지 않다. 조선시대의 기생도나 작품 속에 등장하는 미인들은 하나같이 풍만한 육체를 자랑하고 있었다아담한 몸피에 보름달처럼 둥근 얼굴, 작고 가느다란 눈, 앵두 같은 입술.

 

그러나 이런 기준들이 미인의 이미지와 연결되지 못한 것은 이미 오래전의 이야기다. 그때그때 시대가 갈망하는 미인의 전형이 에누리 없이 투영되는 데가 텔레비전. 최근 여자 탤런트들의 얼굴은 오늘날의 서구 미인형과 거의 일치해가고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된 분석이다. 미인의 얼굴윤곽을 일컬을 때 가장 일상적으로 동원되는 용어가 계란형’. 갸름함의 여부는 결정적으로 얼굴의 가로세로 비율에 달렸다고 골상학연구가들은 정의한다. 한국 여자들 얼굴의 가로와 세로의 최대 길이 비율은 1:1.3. 실제 달걀의 가로세로 비율이기도 한 수치로, 이 정도면 우리가 보통관념적으로 미인형으로 간주하게 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대중의 이상적 미인관이 그대로 투영되는 미스코리아의 평균은 이보다 훨씬 더 갸름해진다. 1:1.5. 이는 밀로의 비너스상과 일치하는 비례이자 서양인들의 평균치에 해당한다. 크게 봤을 때 한국의 미인관은 해방을 전후해서 급격히 달라졌다는 풀이들이 우세하다. 해방 전까지는 북방계가, 이후로는 남방계가 꾸준히 미인의 모델로 선호되는 경향이 나타나고 있다는 것이다. 유난히 작은 턱의 미인이 대접받고 있는 최근의 추세를 세기말적 문화현상으로 파악하는 이들도 종종 있다.

조용진 교수는 세계사를 통해 보면 동서양을 막론하고 세기말에는 남방계의 앳된 인상이 각광을 받아왔다.

 

시대적 분위기가 약하고 부드러운 이미지를 선호하는 쪽으로 쏠리게 되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쉽게 말해 시대상의 변화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미인상은 남성형여성형을 번갈아 왔다 갔다 한다는 얘기다. 좀 더 구체적으로 알아보자. 우선 얼굴을 3 등분한다. 이마-미간부터 코밑(중안)-코밑부터 턱끝(하안). 이들의 기본비율은 1:1:1. 그러나 최근 서구에서는 중안과 하안의 비율이 100:86의 얼굴까지 미인형으로 대접받고 있는 현실이다. 이보다 더 작은 턱을 가진 얼굴은 나올 수가 없을 정도라는 것.

 

이를 한국상황에 적용한다면, 탤런트 황신혜나 김희선이 컴퓨터가 뽑아낸’이라는 수식어를 단 대표미인이 되는 건 자명한 이치인 셈이다. 시대적 상황과 상관없이 태초부터 절대적 미의 기준이 있어왔다고 주장하는 학설이 없진 않다. 그러나 어떻든 한 사회의 발전사를 편의상 초말기로 나눴을 때 중기와 말기에 극도로 미인을 밝히게된다는 미술학자들의 견해는 충분히 설득력이 있다. 서양을 막론하고 남성들의 기호에 맞춰 미인의 이미지가 만들어져 왔다는 사실 역시 부인할 수 없는 부분이다. 미스코리아 대회 폐지를 주장하는 사람들은 바로 이점을 간과하지 않는 것이다.

 

그리고, ‘if’ 편집위원 류숙렬 씨 같은 이는 미인대회 폐지요구에 대한 사회적 편견에 대해서도 문제의 심각성을 지적한다. 여성주의자들과 예쁜 여자들이 서로 적으로 대립하듯 비치는 것 또한 뿌리 깊은 남성중심문화의 산물이라는 주장이다. 미인의 얼굴에 이리저리 자를 들이대며 평균치를 내는 작업은 어쩌면 실없는 일일 수 있다. 미모가 영웅시되는 사회. 온갖 신경줄이 아름다워지기하나에 쏠려있는 미모제일주의. 승산도, 끝도 없는 소모전을 치르고 있음을 한 번쯤 심각하게 고민해 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