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둑
세상의 모든 도둑, 실업자 된다?
시사저널 1999. 5. 20.
미국 펜실베이니아 랭퀘스트 교도소는 다른 교도소에서는 볼 수 없는 첨단 신원 확인 장치를 사용하고 있다. 죄수의 안구를 컴퓨터로 인식해서 신원을 확인하는 것이다. 따라서 예고한 탈옥에 성공한 루팡의 신화는 이 교도소에서 일어날 수 없는 일이다. 이 교도소가 첨단 장비를 설치한 것은 5년 전 일어난 사건이 계기가 되었다. 강간범인 죄수가 자기와 아주 비슷하게 생긴 출소 예정자를 협박해 대신 교도소를 빠져나간 것이다. 출소 예정자는 음주운전범이었다. 한 번의 탈옥도 없었음을 자랑해 온 이 교도소 관계자는 자존심이 상했던지 거액을 들여 첨단 신원 확인장치를 설치했다.
지난 4월 19일 개막된 99년 봄 시카고 컴덱스(첨단 정보기술 상품 전시회)에는 아이리스스캔이라는 회사가 안구를 스캔해 신원을 확인하는 첨단 장비를 선보였다. 랭퀘스트 형무소에서 사용되는 기종도 이 회사가 만든 제품이다. 이 기기가 검사하는 부분은 정확하게 안구의 홍채이다. 홍채의 무늬는 사람마다 독특해 일란성쌍둥이조차 다르다. 컴퓨터 사용자의 홍채 무늬와 인적 사항을 미리 입력하면 외부인의 출입이나 컴퓨터 사용을 막을 수 있다.
신의 영역까지 넘보는 첨단 기술
원천 기술은 아이리스스캔 사가 가지고 있지만, 응용 기술과 상품화에는 전 세계 협력업체가 참여하고 있다. 국내 업체 가운데에는 LG전자가 유일하게 공동 개발에 참여했다. 사람의 신체 특성을 보안에 도입한 바이오메트릭스 분야는 이제 태동 단계이지만 2000년대의 시장성을 내다보고 개발에 뛰어든 것이다. LG전자는 올해 안에 이 기기를 출시하려고 제품을 양산할 생산라인을 구축하느라 바쁘다. 1차 목표 시장은 국방부나 국가정보원처럼 보안이 절대 필요한 정부 기관. 또 이 기기는 인터넷 전자 상거래에도 이용할 수 있다. 전자 상거래 시장이 커지고 있지만 전자상거래 업체들은 아직 보안과 인증 문제를 명쾌하게 해결하지 못해 고심하고 있다.
이 기기는 전자 상거래의 마지막 난관을 해결하는데 돌파구가 될 듯하다. 컴퓨터에 연결된 카메라나 신원 확인 시스템을 통해 사용자의 눈을 검색해 상거래를 인증하는 것이다. 다만 이 경우 소프트웨어와 네트워크 응용 기술을 정비해야 한다는 과제를 안고 있다. 안구 속 홍채를 인식하는 장치로 출발한 이 기기는 시카고 컴덱스에서 컴퓨터 보안 장치로 선보였다. 첩보 영화에서나 볼 수 있던 첨단 신원 확인 장치가 컴퓨터 주변 기기가 된 셈이다. 앞으로 이 장치가 컴퓨터에 본격 도입되면 미리 입력해 둔 홍채의 주인만 컴퓨터를 쓸 수 있게 된다. 사용 권한을 가진 이가 아니면 컴퓨터가 아예 작동하지 않는다.
아이리스스캔 사가 홍채를 이용했다면, 바이오메트릭스아이디 사는 지문의 특성을 응용했다. 컴퓨터에 붙어 있는 지문 인식 장치를 컴퓨터 작동 모드와 연결해 놓으면 미리 입력된 사용자의 지문과 일치해야 컴퓨터를 작동할 수 있게 된다. 지문 인식 시스템 공급 업체인 이 회사는 시카고 컴덱스에서 MV1100이라는 제품을 출시했다. 명함 크기보다 작은 이 지문 인식 장치는 단 몇 초안에 지문을 분석해 지문의 임자를 알아낸다. 세상에 지문이 일치하는 사람은 없다. 따라서 손가락을 잘라 훔쳐오지 않는 한 실제 주인이 아닌 사람이 컴퓨터를 사용할 방법이 없다.
산업 정보전이 치열해지면서 회사 기밀 정보가 빠져나가는 일이 점점 많아지고 있다. 기업들은 출입구에 카드 입력기를 설치해 회사카드를 가진 사람만 출입할 수 있게 하고 있다. 하지만 카드를 분실하거나 도난당했을 때는 보안에 구멍이 뚫리게 된다. 출입 카드를 위조할 수도 있다. 하지만 안구나 지문은 위조가 불가능하고 분실하거나 도난당할 우려가 없다. 출입 카드를 개목걸이처럼 달고 다니지 않아도 된다. 따라서 인간의 신체 특성을 이용한 신원 확인 장치가 개인용 컴퓨터마다 장착될 날이 머지않은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