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oulcs 2024. 5. 5. 06: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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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답한 현실, 인터넷 풍자로 뚫는다

 

주간조선 1999. 4. 29. 

 

인터넷 조선일보의 패러디 사이트인 디지털딴지일보(ddanji.netsgo.com)'의 편집장 김어준(32)씨는 요즘 프로로 전향을 시도하고 있다. 지난해 폭발적인 인기를 모았던 딴지일보가 사업으로서도 성공 가능성이 있는지 검증하는 작업을 시작한 것이다. 올해 초 ‘문턱 하나 넘으면 작업장이 있는재택근무를 청산하고 서울 신촌에 자그마한 사무실을 냈다지난 4월 초에는 유고연방 코소보사태의 현장을 가보기 위해 헝가리와 폴란드를 78일 간 다녀오기도 했다. 현장에는 접근하지 못했지만 폴란드의 아우슈비츠 형무소에서 이번 코소보사태를 불러온 인종 청소의 의미와 민족주의의 문제를 생각할 기회를 가졌다고 한다. 그는 올 들어 한동안 딴지일보의 계속 여부를 놓고 심각한 고민에 빠진 적이 있었다. 우선은 딴지일보 자체로 먹고살 수 있을지가 고민거리였다”라고 한다.

 

주변에서는 책으로 출판된 딴지일보가 15만 부 이상 팔린 만큼 돈방석에 앉은 것으로 보지만, 정작 그의 주머니는 그다지 두둑해지지 못했다. 그러나 이 문제는 지난 2월 딴지일보에 LG전자 등의 인터넷광고가 붙으면서 어느 정도 해결이 됐다고 한다. 또 하나 그의 고민거리는 딴지일보의 편집 방향. 딴지일보가 인기 사이트로 떠오른 뒤 지나치게 가볍다’ ‘욕설이 왜 그렇게 많이 들어가나하는 등의 비판이 쏟아지면서 딴지일보는 최근까지 문화 비평에 가까운 쪽으로 급속히 편집 방향이 기울었다. 그러다 보니 글이 너무 고급화돼 촌철살인의 패러디 맛이 현저히 줄어버렸다. ‘정치, 경제, 사회, 문화, 그리고 언론 등 모든 분야의 모순을 찾아 그 정곡을 깊숙이 찔러댄다는 이른바 딴지일보의 똥침정신이 혼돈에 빠져버린 것이다. 하지만 그는 최근 이런 고민을 툴툴 털었다. 그리고 앞으로 최소한 1년은 딴지일보에 주력하기로 결심했다고 한다.

 

기성 언론이 국민의 불만을 해소하는데 여전히 미흡하고 우리 사회의 경직성과 엄숙주의가 남아 있는 한 패러디는 인기를 모을 수밖에 없다”라고 그는 결론을 내렸다고 한다. 그는 앞으로는 수준 높은 문화 비평과 함께 딴지일보의 진면목인 가벼운 풍자정신으로 다시 돌아가겠다”라고 말했다. 하루 평균 4만 명의 네티즌들이 드나들고 20여 개국 60여 명의 특파원을 두고 있는 이 사이버 공간의 유력풍자신문이 출범 1년 만에 이렇게 스스로 자생력을 갖춰가는 것도 따지고 보면 인터넷 풍자의 저변이 점점 확대돼 가고 있다는 반증이다. 올해 들어서만 패러디 사이트를 포함한 인터넷 풍자 사이트는 게시판 신문 한가닥등 30여 곳이 새로 등장했다. 전체적으로는 80여 곳을 헤아릴 정도가 됐다IMF 직후의 우울한 사회 분위기를 업고 출발했던 인터넷 풍자 사이트 바람이 경제가 다소 호전된 올해 들어서도 좀처럼 수그러들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는 것이다.

 

지난 974월 첫 패러디 신문인 스키조선을 만들었던 웹진스키조(www.truenet.co.kr/schizo)가 최근 계간 형식의 무크지를 내놓는 등 기존 패러디 사이트들은 현실세계로 진출하는 양상도 나타나고 있고, 올해 1월 개그맨 전유성 씨의 캐릭터를 이용해 만든 ‘전유성이 그러진티브이(www.jt.co.kr)'처럼 처음부터 상업성을 겨냥한 패러디 사이트도 나오고 있다. 96년 국내 첫 패러디 사이트인 ’카이스트 왕십리분원, 와이스트(www.mochanni.com/waist)'에 이어 스키조선 등이 등장하던 시절만 해도 패러디 사이트의 제작자들은 주로 대학생이나 청년 문화운동가들이었다. 하지만 최근 들어 패러디 사이트를 만드는 사람은 중고생부터 3040대의 평범한 직장인이나 자영업자, 식당주인에 이르기까지 그 폭이 더 넓어지고 있다.

 

올해 1월 서울 강북구 수유동에 사랑방이라는 식당을 창업한 권영기(38). 그는 창업과 함께 막걸리 한 사발, 쏘주 한잔하면서 요지경 같은 세상을 신랄하고 여과 없이 신문, 방송과는 다른 개뼉따귀 기준으로 짖어볼 수 있는‘사이버 소주방 개소리(members.xoom.com/geasori)'도 함께 열었다경기도 부천에서 팩스신문 서비스업을 하고 있는 강영백(35)씨도 역시 올 1월에 스스로 카타르시스 저널을 표방한 패러디 신문 ‘부처닐보’(www.puchonilbo.co.kr/부처닐보. htm)를 만들었다. 한국판 드러지리포트를 지향한다는 그는 으르고 뺨치는 가십과 독설로 뒤집힌 속을 후련케 해 줄 요량이라고 이 사이트를 개설한 변을 달고 있다. 패러디의 대상도 신문 일변도에서 점점 다양화되는 추세이다.

 

립싱크와 표절에 절은 가수들을 겨냥해 여기는 가수를 바보로 만드는 곳임을 표방한 ‘가수 짓밟기’(myhome.shinbiro.com/~ash34), 문어발 확장으로만 보면 대기업 뺨치는 주식회사 왕따(myhome.shinbiro.com/mondo2), 관료화된 회사를 신랄하게 비웃는 망할 주식회사(galaxy.channeli.net/quad), 한잔 술에 세상 시름을 털어내는 사이버 소주방에, 분규에 휘말린 조계종단을 패러디한 대한불교조계중(my.netian.com/huangks/jung)이라는 이름의 종교패러디 사이트까지 등장했다. 실컷 세상을 향해 욕을 퍼부을 수 있는 ‘욕찌거리’(myhome.netsgo.com/netbiz) 같은 욕설 사이트, 각 지방 사투리로 세상을 실컷 비꼴 수 있는 사투리 한마당(saturi.booriboori.net)도 풍자의 대열에서 빠지지 않는다.

 

김대중 대통령을 요리사로 바꿔버린 청와대 패러디사이트 청기와식당(members.tripod.com/vitaminC/index1.html), 한나라당을 패러디한 헌나라공화국(my.netian.com/~hunara)처럼 정치를 정면으로 풍자하는 사이트들도 한몫을 한다. 영화 ‘8월의 크리스마스‘12월의 석가탄신일로 바꿔버린 패러디 포스트가 있는가 하면, 60대가 듣는 트로토 ‘번지 없는 주막20대의 랩송처럼 들려주는 패러디 라디오도 있다. 온갖 종류에 갖가지 내용을 담은 패러디 사이트들이 가상공간에 둥지를 틀고 앉고 있는 형국이다. 이처럼 패러디 사이트가 계속 확산되는 이유는 무엇보다 누구나 손쉽게 패러디 사이트를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지난해 9월 출범 이후 5만 명의 이용객이 다녀간 서울대학교의 패러디 사이트 구라대학교(hugsvr.kaist.ac.kr/overclas). 명문대학만을 좇는 기성세대의 비뚤어진 세태를 풍자한 이 사이트를 만든 이동호(22전기 및 전자공학과 4)씨가 투자한 시간은 단 이틀이었다. 패러디는 원래 기존 문학 작품의 형식을 모방해풍자적으로 꾸민다는 뜻. 인터넷에서는 이런 작업이 손쉽게 이뤄진다. 서울대 인터넷 홈페이지의 틀을 복사한 뒤 내용만 바꿔 붙이는 이른바 ‘Copy & Paste(복사해서 붙이기)’를 통하면 패러디 사이트는 간단하게 만들어진다. 경영학과를 부실경영학과로, 정치학과는 나이롱정치학과로 바꾸는 아이디어를 내는데 다소 시간이 들뿐이다. 문화비평가들은 이런 패러디의 확산 현상을 풍자의 일상화로 분석한다. 한일신학대 김성기 교수(현대사상 편집주간)인터넷은 누구나 세상에 대해 자기 발언을 할 수 있는 문화민주주의의 시대를 불러왔다면서 이런 패러디 사이트는 점점 더 늘어날 것이라고 예상했다.

 

패러디 사이트의 가장 큰 기능은 기존의 권위에 대한 신랄한 풍자, 야유, 비꼼을 통해 독자들에게 웃음과 카타르시스를 선사하는 것. 직장 생활의 모순을 꼬집은 패러디 사이트 망할 주식회사의 방명록코너에 쌓여있는 수백 통의 편지들은 이를 잘 보여주고 있다. “그동안 쌓인 게 너무 많아서, 스트레스를 많이 받던 중인데, 정말 통쾌합니다.” “너무너무 재미있어요. 직장에서 쌓인 스트레스가 다 풀린 것 같아요” “저 지금 의자에다가 못을 박고 있답니다. 왜냐구요? 웃다가 자빠질 뻔했거든요….”. 역시 이 사이트의 방명록에 속이 시원하다는 내용의 글을 남긴 회사원 이성엽(30)씨는 풍자 사이트는 답답한 직장인들에게 탈출구라면서 그 순간만은 모든 스트레스가 풀리는 맛을 보게 된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이런 일회적인 웃음에 그치지 않고 세상의 모든 고뇌로부터 해방되는 사이버 유토피아를 꿈꾸는 패러디 사이트들도 있다. 패러디 신문 노가리유성일보와 직접 제작한 라디오TV 프로그램을 담은 패러디 방송까지 운영하고 있는 전유성이 그러진티브이’. 이 사이트의 편집장인 기국간 씨는 왜 만들었느냐는 질문에 거짓말처럼 행복하고 아름다운 세상을 사이버 공간에 건설하기 위해서라고 답했다. 실업과 중산층의 몰락, 이념의 상실 시대를 살고 있는 현대인들에게 패러디 사이트는 유토피아로까지 떠오르고 있는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