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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는 웃기는데 정치 풍자극은 운다

 

 시사저널 1999. 3. 25.

 

정계 압력에 시사 코미디 질식후진 정치의 전형

꼬꼬마 텔레토비와 국회의원의 공통점은? 떼를 지어 몰려다닌다. 돔형 집에 산다. 같은 말을 반복한다. 입으로 모든 것을 다한다. 자기가 사람인 줄 착각한다.’ 요즘 호사가들의 입을 통해 조용하지만 빠르게 퍼지고 있는 이른바 텔레토비 시리즈는 과거 사오정시리즈최불암 시리즈보다 훨씬 따갑고 직설적으로 정치권을 꼬집는다. 정치는 코미디이다. 현실과 동떨어진 상황이 빈발하고 사람들을 우스꽝스럽게 만드는 사례가 허다하다. 코미디 같은 정치판은 어느 분야 보다도 풍부한 코미디 소재를 제공한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웃기는 요소가 많은 정치판을 소재로 하는 코미디를 보기 어려운 것이 한국 현실이다. 그런 점에서 요즘 매주 목요일 코미디언 서세원과 탤런트 김지호가 진행하는 KBS<시사 터치 코미디 파일>은 거의 유일한 정치 풍자 코미디 프로라고 할 수 있다.

 

텔레토비 시리즈를 전파 매체에 처음 등장시킨 것도 이 프로였다. <시사 터치>는 텔레토비 시리즈의 반응이 의외로 좋자 아예 고정코너를 둘 생각이다. 이 프로에서 또 하나 볼거리는 김대중김영삼전두환노태우 씨 등 전현직 대통령의 얼굴이 등장하는 대형화면 뒤에서 코미디언 엄용수 씨가 성대 묘사를 하는 코너이다. 지난해 2차 국민과의 대화에서 김대통령은 한 방청객으로부터 “엄용수 씨의 성대 묘사를 본 소감이 어떠냐는 질문을 받고 나보다 더 똑같더라. 상업성이 있으니 흉내를 내는데, 괜찮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대통령은 괜찮을지 몰라도 풍자의 도마 위에 오르내리는 정치인들의 심사는 영 불편한 모양이다. 이 프로를 둘러싼 뒷얘기를 들어보면, 여전히 코미디 같은 한국 정치의 뒷모습을 알 수 있다.

 

이 프로에서 이회창 총재가 제일 좋아하는 음식은 울면이다. 왜냐하면 병역 문제로 아들이, 세풍으로 동생이 고초를 겪었기 때문에!”라고 했더니 한나라당에서 항의 공문이 날아왔고, 국민연금 파동을 신랄하게 비판하면서 보건복지부를 줄이면 보복부니까 보복할지 모르겠다라고 했더니 보건복지부와 국민연금관리공단에서 항의 전화가 쏟아졌다. 국회의원회관의 사우나를 두고 국회에 사우나 헬스클럽은 당연히 있어야지요. 몸싸움 때 밀리지 않으려면 평소에 체력 관리를 잘해야 하니까!”라고 했더니 당장 국회사무처에서 항의가 들어왔다. 이 때문에 방송국 간부들은 <시사 터치>를 녹화할 때마다 노심초사한다고 한다.

 

한국 정치 풍자 코미디의 역사는 일천하다. 거의 없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범한 이후 한동안 명맥을 유지하다가 소리 없이 사라지고 말았다. 당시 인기 프로는 공포의 삼겹살김형곤 씨가 출연했던 <회장님, 회장님>이었다. 그러나 5공 이래 가장 신랄하게 정치권을 풍자했다고 평가되었던 <회장님>은 유형무형의 압력에 못 이겨 90년 막을 내렸다. 당시 회장님 역을 맡았던 김형곤 씨는 “그때 독립운동이나 민주화 투쟁 하는 각오로 출연했었다라고 회상했다. 아침 신문 정치면을 거의 빠짐없이 독파하는 김 씨는 시사 코미디계에서는 사실상 원조격이다. 그 자신이 총선 출마설이 꾸준히 나돌 만큼 정치 성향을 지녔기 때문인지 시사 코미디 프로의 단골 멤버이다.

 

선진국은 정치 코미디 황금기누려

어려운 여건에서 그나마 시사 코미디의 명맥이 유지되어 온 데는 강영원 PD의 숨은 노력이 컸다. <회장님>을 비롯해 <스리랑 부부> <유머 1번지> <시사 터치> 등 코미디프로만 15년째. 특히 시사 코미디를 전공으로 해온 강 PD는 요즘 시사 코미디계의 독립운동가인 셈이다. 그는 코미디가 발전하려면 시사 코미디가 활성화해야 하고, 이를 위해서는 힘 있는 사람들의 의식 구조가 바뀌어야 한다”라고 말한다. 한국 정치 코미디계가 이처럼 황무지 수준인데 비해 선진국은 가히 시사 코미디의 전성기를 맞고 있다.

 

가까운 일본만 해도 코미디언이 뉴스를 진행하는 이른바 인포테인먼트(정보와 재미) 프로가 많다. 미국의 경우 올해 소득 1위 자리를 쟁쟁한 부호들을 제치고 사인 펠트라는 코미디언이 차지했다. 2위도 코미디 작가였다. 독일은 클린턴시라크다이애나 같은 세계적 명사를 소재로 신랄하게 풍자한다. 한국의 경우 전직 대통령을 코미디 프로에서 풍자하기도 쉽지 않다. 당장 전직 대통령 문제 어쩌고 하면서 조심스럽게 다루라는 사인이 들어오기 때문이다. 코미디 같은 정치. 그 정치를 마음껏 풍자할 수 있을 때 한국 정치도 열렸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정치가 코미디의 대상, 즉 우스갯거리가 되지 않도록 질적 수준을 높이는 것이 최선이지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