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oulcs 2024. 3. 28. 07: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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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그날이 기다려진 데이 

 

뉴스메이커 1999. 3. 11. 

 

매달 찾아오는 14일은 신세대들에겐 특별한 날이다. 이름하여 사랑의 날. 14일의 기념일을 214일 밸런타인데이와 3월 14일 화이트 데이 정도로 알고 있는 사람이라면 한참 구세대에 속해 있음에 틀림없다. 1월 14일부터 1214일까지 모든 달의 14일엔 이름이 붙여져 있다. 밸런타인․ 화이트 데이를 제외한 나머지 날들은 대부분 10대를 중심으로 한 신세대 사이에 90년대 중반부터 자생적으로 생겨난 것이다. 사랑의 데이들은 생일보다 중요하고 명절보다 더 의미 있는 날로 그들에겐 본격적인 기념일이자 축제일로 자리 잡아가고 있다. 14일의 기념일은 모두 이성 간의 교제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 좋아하는 이성에게 사랑을 고백하거나 사랑을 다질 수 있는 공식적인 기념일인 셈이다. 사랑의 시작은 214일 밸런타인데이다. 누구나 알다시피 여자가 남자에게 초콜릿을 주며 사랑을 고백한다.

 

몇 년 전부턴 초콜릿뿐 아니라 향수나 라이터도 함께 선물하는 추세. 314일 화이트데이엔 남자가 화답으로 꽃과 사탕을 선물한다. 밸런타인․화이트 데이엔 호텔이나 유명 레스토랑, 카페에서 파티나 패키지여행 프로그램을 내놓기도 하지만 값비싼 비용 때문에 10대들의 참가율은 저조한 편이다. 어쨌든 이 두 날을 거치면서 마음이 맞은 커플은 계속되는 기념일을 통해 사랑을 다지게 된다. 514일 로즈 데이엔 서로 장미꽃을 주고받는다. 로즈 데이에 즈음해 장미꽃 한 송이를 예쁘게 포장한 로즈데이용 장미가 선보이는데 보통 한 송이에 5,000원 정도 한다. 홍익대 앞에서 꽃집을 운영하는 꽃포장 전문가 임성택 씨는 “로즈데이 며칠 전부터 장미꽃 포장을 예약주문하는 대학생들이 많다”라고 전한다.

 

614일은 키스 데이. 서로 사랑을 확인하는 키스를 한다. 특히 이날엔 나이트클럽이나 록카페에서 키스 타임을 만들어주기도 한다. 714일은 링 데이, 혹은 실버 데이로 불리는데 은반지를 선물하는 날이다. 814일 뮤직 데이엔 좋아하는 음악 테이프나 CD를 선물한다. 돈이 없으면 함께 노래방에 가서 노래를 하고 주머니 사정이 허락한다면 나이트클럽에 가서 음악에 맞춰 춤을 추기도 한다. 914일은 포토 데이로 추억에 남을 만한 사진을 찍는 날이다. 10월 14일은 편지 데이. 만남을 자제(?)하고 서로에 대해 깊이 생각해 보는 시간을 갖자는 취지라고. 상대방에게 자신의 마음을 전하는 편지를 쓰는 날이다. ㅅ여고에 재학 중인 박미애 양(18)은 “영화 편지가 히트한 후 작년 편지 데이에 황동규 시인의 시집을 선물하는 게 유행이었다우리 반에서도 시집을 주거나 받은 친구들이 절반은 넘었다”라고 말했다.

 

11월에는 기념일이 두 가지 있다. 1111일 빼빼로 데이와 1114일 무비 데이. 1111일의 숫자 모양에서 따온 빼빼로 데이는 초등학생들도 즐기는 날이다. 좋아하는 친구끼리 빼빼로를 주고받으며 함께 나눠 먹는 날. 14일 무비 데이는 함께 영화를 보는 날이다. 1214일 소프트 데이엔 아이스크림을 먹는다. 특히 이 날 눈이 내리면 결혼에 이를 수 있다고 믿는 것도 요 근래에 생겨난 풍속도다. 새해가 시작되는 114일은 다이어리 데이다. 서로 다이어리를 교환하며 1년을 보람차게 설계하자는 의미를 담고 있다. 밸런타인․화이트 데이를 성공적으로통과한 커플이 사랑을 키워가는 반면 실패자들은 패자부활전을 통해 기사회생을 꿈꾼다. 색깔 시리즈로 나가는 아픔의 데이8월까지 이어진다.

 

414일은 블랙 데이. 밸런타인․화이트 데이에 아무것도 못 받은 남녀가 모여 자장면을 먹는다. 콜라를 마시고 간식으로는 ‘연양갱’을 먹는다. 옷도 검은색으로 통일하는 게 솔로를 탈출하는 지름길이라고. 514일 레드 데이. 블랙 데이에 짝을 찾은 사람들에겐 로즈 데이가 되지만 짝을 못 찾은 사람들은 다시 모여 붉은색의 음식을 먹는다. 벌겋게 지진 김치찌개도 좋고 짬뽕도 좋다. 이 날은 토마토 주스나 당근 주스를 마셔야 한다. 614일은 옐로 데이. 속칭 무슨 일이 안되거나 마음에 안들 때 이라고 내뱉는 말에서 따온 것으로 카레라이스를 먹는 날이다. 714일은 그린 데이. 짝 없는 사람들이 마지막으로 갖는 파티날로 초록색 병에 든 소주를 폭음한다. ‘마지막이다. 안 되면 죽자는 기분으로 이날 폭음하고 나서도 한 달 후까지 짝을 못 구한다면 그땐 정말로 마지막이 된다.

 

814일 블루 데이가 찾아오기 때문이다. 블루 데이는 여러 번의 패자부활전을 거쳤는데도 짝을 못 고를 정도로 무능하다면 이 날 청산가리 먹고 죽어야 한다는 농담에서 유래된 것이다. 신세대들에겐 자신들의 감성과 개성을 담아 만든 이런 기념일이 즐거울 뿐이다. 평소 쑥스러워서 잘할 수 없던 것도 이런 날들을 핑계 삼아 재미있게 보낼 수 있기 때문이다. 문화평론가 하재봉 씨는 “이런 날들은 누가 만들라고 해서 한 것도 아니고 그들 사이에 저절로 생겨나 공감대를 얻으며 확산된 놀이 문화이자 의미 있는 축제라며 기성세대가 이 문화를 존중해 주고 그들의 축제가 신명 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 바람직하다”라고 조언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