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F
40대 위기인가 기회인가?
주간조선 1999. 1. 28.
IMF사회 주도층 부상에 실직 위험 겹쳐... 새 사회질서 만들어야 할 세대
‘위기의 세대인가 기회의 세대인가’. 1950년대 1인당 국민소득 5만 3000원이었던 극빈 국가를 40년 만에 1만 달러로 끌어올린 [한강의 기적]의 주역들. 가난의 쓰라린 기억과 풍요의 달콤함을, 독재의 암울함과 민주화의 감격을 모두 아는 세대. 그 40대들이 IMF 이후 또다시 부침의 갈림길에 서 있다. IMF를 거치며 재계와 금융권, 심지어 학계에서까지 40대 사장과 임원, 학장들이 대거 등장하고 있지만, 다른 한편에서는 50대와 함께 구조조정의 매서운 칼바람을 맞아 실직 가장으로 전락하는 세대 또한 40대들이다. 양극단을 몸으로 체험하는 것은 어찌 보면 우리 40대들의 숙명 같다. 40대의 부침은 구조조정 바람이 휩쓸고 간 재계에서부터 불고 있다. 지난해부터 본격화한 각 기업들의 세대교체 바람은 재계에 40대 조기 부 상론을 불러일으켰다.
IMF에 뒤이은 대규모 구조조정 과정에서 사회 리더 격인 50대들이 대거 퇴진한 자리를 40대들이 차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해 12월 3일 현대그룹 인사에서 47세의 나이에 사장으로 발탁된 이계안 자동차 부문 기획조정실장. 이 사장은 부사장급이던 현대그룹 구조조정본부 경영전략팀장에 임명된 지 10개월 만에 다시 승진, 1년 만에 2단계를 오르는 초특급 승진으로 사장 자리에 올랐다. 더구나 그의 승진은 88년 48세의 나이로 사장이 됐던 박세용 현대종합상사 회장에 이어 10년 만에 탄생한 현대그룹 40대 사장이라는 점에서 재계의 세대교체를 상징하는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IMF 이후 겪는 우리 사회의 주요 변화중 하나는 리더의 변화다. 튈 수만 있다면 40대는 구조조정의 수혜자라는 것은 이 같은 시각에서 나온 것이다. 이계안 사장과 SK 유승렬 부사장 외에도 재계에는 이미 40대 주자들의 부상이 눈에 띄고 있다.
현대그룹 금강개발산업 이병규 대표이사 부사장과 현대전자 김세정 전무, 삼성 반도체총괄부문 진대제 대표이사 부사장, 삼성생명 황영기 전무와 대우중공업 종합기계부문 추호석 사장도 재계를 대표하는 40대 리더로 꼽히고 있다. 보수적 색채가 강한 학계에서도 세대교체의 조짐이 감지되고 있다. 지난해 초 김대중 대통령의 자문교수 출신으로 한국개발연구원장에 취임한 이진순 박사와 윤원배 금융감독위원회 부위원장은 학계 출신의 40대들로 취임 당시 그들의 [젊은] 나이 때문에 의외로 받아들여지기도 했다. 대학에서도 40대 교수들이 처장급 이상의 보직을 맡는 사례가 늘고 있다. 40대 보직교수 기용의 선두는 건국대학교다.
지난해 9월 1일 총장에 선출된 축산학과 맹원재 교수는 40대 교무위원을 10명이나 기용, 학교관계자들을 놀라게 했다. 49세의 오인환 자연과학 대학장과 47세의 박태규 학생복지처장을 제외하면 모두가 40대 초․중반의 소장 교수들이다. 총장의 핵심 측근이라 할 수 있는 기획조정처장에도 46세 동갑인 강병근 서울캠퍼스 건축공학과 교수와 현근 충주캠퍼스 행정학과 교수가 임명됐다. 숭실대학교는 부총장을 40대로 임명했다. 97년 3월 어윤대 총장이 정보과학대학 오해석 교수(48)를 부총장에 전격 발탁한 것. 오 교수는 자신의 발탁을『대학 사회에서는 보기 힘든 파격이었다』고 회고했다. 오 교수의 부총장 취임 이후 정병희 기획실장(47․산업공학과)이 기용되는 등 40대 교수들이 잇달아 보직을 받았다.
오 부총장은『대학에서의 40대 기용은 나이와 연륜을 대접해 온 대학들도 변화하고 있다는 증거』라고 평가했다. 실제로 오 부총장이 기용된 이후 숭실대는 대학도서관을 미디어센터로 명칭을 바꾸는 등 대학 정보화 사업을 벌여나가고 있다. 또 실속 없는 연구소들을 줄이기 위해 3개 연구원만 학교가 직접 지원하고 나머지 연구소는 설립과 폐지를 자유롭게 하는 대신 연구 업적에 따른 매칭펀드 개념으로 지원방법을 바꿔 경쟁 체제를 도입했다. 서강대와 성균관대 중앙대 홍익대 한양대 이화여대 숙명여대 등에도 1~2명씩의 40대 학장이 나타나는 등 대학의 40대 보직 교수는 점차 확산되고 있다. 사회 분야에서 지난해 가장 두드러진 활약을 보인 사람은 참여연대 경제민주화위원회 위원장으로 소액주주 운동을 벌이고 있는 고려대 장하성교수(46). 장 교수는 『사회운동 분야에서도 40대들에 의한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40대들의 사회운동이 과거보다 전문화되고 있다}며 『분야를 막론하고 명망 있는 학자들을 약방의 감초식으로 끌어들여 벌이는 사회운동은 실천력이 없다』고 지적했다. 장 교수는 『앞으로도 소액주주 운동 한 가지만 밀고 갈 생각』이라고 말했다. 이 같은 변화는 참여연대와 경실련 등 사회단체들의 조직 구성에서도 나타난다. 참여연대 김민영 사무국장은 『사무처장을 맡고 있는 박원순 변호사와 조희연 정책위원장(성공회대 사회학과 교수), 차병직 변호사 (사법감시센터 부소장), 손혁재 의정감시센터 부소장, 김칠준 변호사(작은 권리 찾기 운동본부 실행위원장) 등의 40대들이 각자 분야에서 활동하고 있다』고 말했다. 경실련도 이에 못지않다.
이진순 KDI 원장과 윤원배 금융감독 부위원장은 모두 경실련 출신의 40대 학자들. 우리 민족 서로 돕기 운동본부 이용선 사무총장과 행정개혁 시민연합 심대균 사무총장, 경제 살리기 범국민운동본부 심철영 사무처장 등이 모두 경실련 출신의 40대 들이다. 그러나 이처럼 40대들이 부상하는 이면에서는 훨씬 더 많은 40대들이 위기에 내몰리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40대의 부상과 침몰이 가장 극명하게 나타나는 곳이 지난해 빅딜과 대량 감원의 홍역을 치러낸 은행권이다. 서울은행은 대량 감원 와중에 45세의 이석희 씨를 이사 대우로 영입해 은행권에 충격을 줬다. 시중은행의 한 관계자는『은행의 인사구조를 아는 사람이라면 45세 이사가 얼마나 파격인지 알 것』이라고 말했다. 1년 전만 해도 45세는 임원은 고사하고 신참 차장이거나 고참 과장이 대부분. 지점장은 꿈도 못 꾸는 나이였다. 지점장이 되려면 40대 후반은 되어야 하고, 53~54세의 고참 지점장도 많았다. 하지만 이 같은 인사는 올해 들어 완전히 무너졌다.
조흥은행에서는 고영철 씨가 지난해 49세의 나이로 이사에 선임됐으며, 주택은행은 과장을 지점장으로 내보내기까지 했다. 은행권의 한 관계자는『한은행에서 2000명 이상씩 내보내는 대규모 감원을 실시하다 보니 나가는 40대들이 많았던 반면, 남아있는 사람들은 54~56년 생이 지난해 대거 지점장으로 승진하는 등 희비가 엇갈렸다』고 말했다. 40대에서의 이런 양극화 현상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도 크다. 서울대사회학과 임현진 교수는『지금의 40대가 아니더라도 과거와 현재, 지역에 관계없이 40대는 기존의 가치대로 흘러가는 것에 익숙한 세대』라며『문제는 우리 사회를 오래도록 지배해 온 공동체 문화와 성장 신화가 깨진 자리에 적자생존이라는 새로운 조건이 40대들에게 집중되고 있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우리나라의 실업률 변화 추이를 보면, 65년 7.3%이던 실업률이 75년 4.1%, 85년 4%, 95년 2%로 해마다 낮아지다가 지난해 1월에는 7.3%로 높아졌다.
통계상의 수치로만 볼 때 경제개발 초기인 30년 전 수준으로 돌아간 것이다. 게다가 40대의 실업률은 IMF 직전인 97년 11월 1.5%에서 1년 만에 6.1%로 4.6포인트가 올라 30대와 50대의 증가치인 4.4포인트보다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50대가 자주 걸려 50견이라 불리는 어깨통증이 요즘은 40견으로 불리는 것도 40대 고뇌의 다른 모습이다. 세연 통증 클리닉의 최봉춘 원장은『최근 들어 50견으로 병원을 찾는 환자가 40대로 젊어지는 추세』라며『지난해 IMF이후 특히 40대들이 전체 환자의 40%나 될 정도로 많아졌다』고 말했다. 최 원장은『운동을 권해도 바빠서 못한다고 하소연하는 40대들을 보면 측은한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좌절과 희망을 함께 경험하고 있는 오늘의 40대가 IMF 이후 한국사회에서 갖는 의미는 무엇일까. 서울대 임 교수는 『20~30대는 IMF 이후 새로운 환경에 적응할 시간적 여유가 있지만 40대는 그럴 여유가 없는 것이 문제』라고 지적했다. 그는『이 때문에 IMF적 질서 수용 여부를 두고 세대 내부의 갈등까지 표출되고 있는 상황』이라며『그러나 40대는 어느 사회에서나 중추가 되어 왔다는 측면에서 IMF 이후 새로운 사회질서를 만드는 것도 40대의 책임』이라고 지적했다. 그들의 어깨에 ‘포스트 IMF’의 한국사회가 걸려 있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