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체
인체도 낮과 밤 은 딴판
중앙일보 1999. 1. 13.
인체도 낮과 밤을 가린다. 대뇌 깊숙이 위치한 시상하부 (視床下部)에 밤낮을 교대로 움직이며 생체리듬을 주관하는 생체시계가 있기 때문이다. 태엽 역할을 하는 것은 송과선에서 분비되는 멜라토닌 호르몬 (그림참고). 밤이 되면 망막에 맺히는 빛의 양이 줄어들면서 멜라토닌 분비량이 증가하는 반면 아침이 되면 줄어든다. 사람이 밤에 졸린 것은 멜라토닌 호르몬이 수면유도작용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취침 땐 어둡게, 기상 땐 밝게 조명을 유지해 주는 것이 빨리 잠들고 빨리 깨는 방법이다. 밤낮으로 달라지는 것은 멜라토닌 호르몬만 있는 것이 아니다. 노원 을지병원 내분비내과 전재석 (全在錫) 교수는 “밤엔 자율신경 중 편안할 때 작동하는 부교감신경이 우세하게 작동해 인체는 휴식에 들어간다”라고 설명했다. 예컨대 밤엔 심장박동과 혈압이 떨어지며 호흡이 줄어들고 동공이 축소되고 기관지가 수축한다. 반면 낮엔 긴장할 때 작동하는 교감신경이 우세하게 작동해 혈압이 올라가는 등 본격적으로 활동할 준비를 한다.
따라서 밤에 혈압이 떨어지는 것은 생리적 현상이며 전혀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강북삼성병원 가정의학과 김철환 (金喆煥) 교수는 “정상적으로 누구나 오후 10시부터 오전 6시까진 혈압이 10~20㎜ 정도 떨어진다”라고 강조했다. 오히려 밤에 혈압이 떨어지지 않는 것이 문제다. 金교수는 “고혈압 환자 3명 중 1명은 밤에 혈압이 떨어지지 않는데 이들은 정상적으로 밤에 혈압이 떨어지는 고혈압 환자에 비해 심장병과 뇌졸중 등 합병증에 걸릴 확률이 훨씬 크다”라고 설명했다. 밤에 기침이 심해지는 것도 같은 원리. 밤엔 기관지가 수축해 있으므로 천식 등 호흡기 질환이 있는 이들이 발작적으로 기침을 하기 쉽다는 것. 여기엔 다른 이유도 있다. 신촌세브란스병원 호흡기내과 김세규 (金世珪) 교수는 “밤엔 차갑고 건조한 공기가 기관지를 자극하거나 누워 자게 되므로 가래가 배출되지 않아 기침이 많이 나오게 된다”라고 설명했다.
특히 방바닥만 뜨거운 재래식 온돌난방구조는 차갑고 건조한 공기를 만들 수 있으므로 기침이 심한 사람들은 주의해야 한다. 청소년기 밤에 충분히 잠을 자야 키가 큰다는 옛말도 의학적으로 근거가 있다. 金교수는 “키를 자라게 하는 성장호르몬이 낮보다 밤에 집중적으로 분비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새벽녘 혈당이 올라가는 것도 성장호르몬 탓. 성장호르몬이 혈당을 내리는 인슐린의 작용을 방해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당뇨환자들이 아침에 혈당이 조금 올라가는 것을 지나치게 두려워하지 않아도 된다고 전문의들은 말한다. 가려움증도 밤에 심해지는 경향이 있다. 밤엔 땀의 분비가 줄어들고 낮보다 피부의 감각신경이 예민해져 사소한 자극에도 쉽게 반응하기 때문이다. 입냄새도 밤에 심해진다. 서울대치과병원 구강진단과 김영구 (金榮九) 교수는 “밤엔 침의 분비가 줄어드는 데다가 코 보다 입으로 숨을 쉬는 경우 더욱 입안이 마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따라서 잠자리에서 일어난 후 물을 충분히 마시는 것이 입냄새를 없앨 수 있다. 속 쓰림이나 가슴앓이도 밤에 심해진다. 밤엔 위와 식도를 연결하는 괄약근이 느슨해지면서 위산 일부가 식도로 역류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대책은 베개를 높여주고 취침 서너 시간 전에는 음식물을 먹지 않는 것. 심근경색증 발작도 밤에 주의해야 하는 질환. 특히 새벽에 왼쪽 가슴이 뻐근하게 아파오면 심근경색증일 가능성이 크다. 서울중앙병원 순환기내과 박성욱 (朴成昱) 교수는 “아직 정확한 원인은 모르지만 밤에 심장혈관이 수축하고 혈전과 같은 혈관 부스러기가 잘 생기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라며 “고혈압, 고령, 흡연자 등 심장병 고위험군에 속하는 사람이 갑자기 새벽 무렵 가슴이 아프다면 위중한 경우이므로 바로 병원 응급실을 찾아야 한다"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