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oulcs 2024. 2. 12. 06:39
728x90
반응형

공포놀람, 그것은 본능

 

한겨레신문 1998. 12. 10.

 

동료들과 높은 산이라도 올라가면 아래를 내려보기 무섭다며 굳이 위만 쳐다보고 등산하는 친구들을 볼 수 있다. 또 공포영화를 보며 재미있어하는 사람이 있는 반면 공포에 질려 제대로 보지 못하는 사람도 있다. 이렇듯 유난히 두려움을 느끼는 사람을 신경정신과에서 보는 일은 매우 흔하다. 공황장애를 앓고 있거나 불안신경증이 있는 사람들이 도대체 저는 왜 불안합니까하고 물어 올 때면, 비록 불안이 인간이 근원적인 정서이기는 하지만 그 이유를 납득시키기 어려운 경우가 많다.

인간은 태어나면서부터 불안이라는 정서를 가지고 있다 태아가 출산이라는 과정에서 모체로부터 떨어지는 순간 나타나는 분리불안을 인간의 근원적 불안이라고 하는데, 어떤 대상에서 떨어지는 것에 대한 공포감을 느끼는 것은 전 인류가 가지고 있는 공통적인 불안 요소다.

 

이렇게 모든 사람이 공통으로 느끼는 불안도 있지만, 사람과의 관계에 두려움을 느끼거나 특정 동물을 무서워하는 등 사람마다 독특한 불안감을 가지는 경우가 있다. 심지어 사람과 눈을 마주치기 싫어하는 대인공포증이 일본의 문화 관련 증후군으로 소개될 정도로 불안의 범위는 매우 넓다한의학에서는 불안을 크게 두 가지로 나눠 설명하고 있다. 하나는 공포, 또 하나는 놀람이다. 흔히 공포는 어떤 대상을 알고 있으면서도 참지 못하는 것이고, 놀람은 대상이 명 확지 않은 상태에서 갑작스럽게 맞닥뜨려 나타나는 현상이다. 이런 정서는 모두 기의 변화와 관계가 있는데, 공포는 기를 아래로 끌어내리고 놀람은 기를 어지럽한다고 설명한다.

 

이처럼 감정을 기로 해석하는 한의학에서는 그 치료법에서도 기의 작용을 응용하고 있다. 공포에 해당하는 기의 변화와 반대되는 것은 바로 분노의 감정인데, 분노를 기를 상승시키는 작용을 한다. 그러므로 어떤 것에 공포를 느끼는 사람이라고 하더라도 화를 내게 되면 공포의 감정이 일시적으로 없어지게 된다. 또 놀람으로 인한 기의 변화와 반대되는 것은 생각의 작용으로, 생각은 기를 안으로 뭉치게 한다. 따라서 놀라는 이유를 곰곰 히 생각해 풀 수만 있다면 놀람은 점차 사라지게 되는 것이다. 불안과 관련된 질환은 매우 다양하다.

 

가장 일반적으로 나타나는 것은 특정 대상에 대한 두려움이다. 또 사람과의 관계에 불안감을 가지고 있는 경우가 많은데, 대인공포증이나 사회공포증이 그것이다. 갑작스럽게 죽음에 대한 불안감이 쌓이는 경우는 공황장애라고 부른다. 어떤 일에 쫓기듯 일하는 모습을 보기도 하는데, 이는 강박신경증으로 설명된다. 그밖에 충격 받은 뒤 적응을 잘하지 못하고 불안감에 휩싸이는 경우는 외상 후 성 신경증이라고 한다. 불안은 사람이 가지고 잇는 원초적 본능으로 잠재적으로 누구나 가지고 있다. 그러나 불안이라는 증상은 또 다른 신체증상을 유발하고 이런 증상이 다시 불안을 가중시키기도 한다. 우선 불안은 심각한 증상이 아니라 자연적인 본능이라고 생각하자. 그러면 불안이 더 이상 다른 증상을 유발하지 않고 잠시 후 사라질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