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레니엄
세기말 현상 또다시 ‘고개’
중앙일보 1998. 12. 9.
새 천년 (밀레니엄) 이 다가오면서 지구 종말을 믿거나 ‘컴퓨터 2000년 표기문제 (Y2K. 밀레니엄 버그)’ 등으로 대혼 란 이 초래될 것이라는 불안감이 확산되는 등 여러 가지 세기말적 현상이 지구촌 곳곳에서 나타나고 있다.
◇ 종말론 신봉집단 극성 = 지난 10월 말 미국 콜로라도주 덴버의 ‘컨선드 크리스천서’라는 종말론 신도집단 1백여 명이 갑자기 증발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이들의 교주 몬트 킴 밀러는 지난 10월 10일 덴버가 지진으로 사라질 것이며 자신은 내년 12월 예루살렘에서 순교할 것이라고 예언한 터였다. 실제 신도 중 10여 명이 지난달 이스라엘에서 발견돼 미국과 이스라엘 경찰이 교주 밀러의 행방을 쫓고 있다. 지난 3월 미국 텍사스주 갈랜드시 에서는 1백40명의 대만계 종교집단이 “신이 나타나 TV방송에 출연한다” “내년에 아시아에서 핵전쟁이 일어난다” 는 등 가당치 않은 예언을 내놓아 물의를 일으키기도 했다. 8월에는 흑인 예수의 재림을 믿는 미국의 ‘데이비드의 집’이라는 단체가 영국의 미들 랜드 지방으로 원정 와 신도를 물색한다는 소식이 전해져 영국경찰이 긴장하기도 했다.
이 같은 종말론 단체들은 미국 내 최소 7백여 개, 영국 내 5백여 개에 이르는 것으로 추정된다. 미국 보스턴 대 밀레니엄 연구센터 리처드 랜더스 소장은 적어도 수만 명 이상의 종말론 신도들이 내년 말 지구 종말에 대비해 예루살렘에 모여들 것이라고 예상했다. 전문가들은 이 같은 사교집단의 경우 예언이 실현되지 않으면 인위적으로 실현하기 위해 집단자살 등 극단적 방법을 선택할 가능성이 크다고 우려하고 있다. 지난해 3월 해일 봅 혜성과 함께 종말이 올 것이라고 믿던 ‘헤븐스 게이트 (천국의 문)’이라는 사교집단 조직원 39명이 집단자살을 선택한 것도 이런 우려를 더해 주고 있다.
일본에서도 최근 지난 95년 지하철 독가스 사건을 일으켰던 오움 진리교가 세기말 분위기에 편승해 교세를 다시 확장하고 있다는 경찰의 발표가 있었다. 교주 아사하라와 함께 구속됐다 석방된 측근 1백70여 명이 아사 하라의 셋째 딸(10)을 ‘주재자’로 옹립해 도쿄 (東京). 이바라기(茨城) 등에서지 부 및 도량 (道場) 재건작업이 한창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들은 이미 수도권 일대에 5개의 거점을 추가했으며 지방에서도 세를 확산시키고 있는 것으로 경찰은 파악한다. 오움 진리교 재건에는 아키하바라(秋葉原). 나고야(名古屋) 등에 이들이 갖고 있는 컴퓨터매장의 수입이 밑받침이 되고 있다. 일본 범죄심리학자들은 “세기말의 종말론 확산이 오움 진리교 부활의 토양”이라고 지적한다.
◇ Y2K 우려. 점성술 인기 = 이 같은 세기말 현상은 단순히 종말론 집단에만 해당하는 것이 아니다. 미국에서는 일부 주민들이 2000년에 이르면 Y2K로 컴퓨터망이 마비돼 식료품 유통체제가 붕괴되고 도시에서 폭동이 발생할 것에 대비해 시골로 대피할 준비를 하고 있다. 현재 Y2K에 대비한 준비물과 은신처 목록을 소개한 웹사이트도 수백 여 개에 이르며 비상식량 업체들이 짭짤한 수입을 올리고 있다. 프랑스에서는 밀레니엄을 맞아 ‘점성술’ 이 높은 인기를 누리고 있다. 잡지뿐 아니라 일간지들도 앞다퉈 운세란 을 신설하고 있으며 온라인 점성술도 큰 호응을 얻고 있다. 이 같은 현상은 자신의 미래를 불안하게 느끼는 사람들이 늘어가기 때문인 것으로 분석된다. 또한 올해 ‘딥임팩트’ 나 ‘아마겟돈’ 같은 혜성충돌 영화들이 인기를 끈 것도 세기말적 분위기와 무관치 않다.
◇지구 종말은 과연 오나 = 학자들은 1천 년 전에도 지구 종말론이 광범위하게 펴졌지만 허구에 지나지 않았다고 지적하고 있다.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도 지난 4월 성 베드로 광장에서 행한 미사강론에서 “금세기 말에 지구의 종말이 닥칠 것이라는 예언은 잘못된 것”이라고 공식 부인했다. Y2K와 관련해서는 오는 11일 유엔이 첫 국제회의를 여는 등 국제사회의 대응이 활발하다. 일찍부터 Y2K에 대비해 온 미국 금융계에서는 별다른 문제가 없을 것이라고 밝히고 있다. 미처 대비가 안된 국가와 회사들의 컴퓨터시스템 오작 동 위험이 남아 있고, 일부 혼란도 예상되지만 사람들이 먼 곳으로 피해야 할 만큼 큰 재앙이 닥칠 확률은 거의 없다고 관계전문가들은 입을 모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