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출소
“파출소 갑시다” 대신 “지구대 갑시다”
조선일보 2004. 08. 11.
경찰법 개정안 통과… 파출소는 추억 속으로 / 지구대는 범죄 단속… 치안센터는 대민봉사 전담
경찰 “출동 빨라져” “인원만 줄어” 엇갈린 반응
누군가와 싸움이 났을 때 “파출소로 가자” 는 말은 이제 통하지 않는다. 대신 112에 신고해 경찰과 함께 순찰차를 타고 ‘지구대’로 가야 한다. 경찰은 “시민들의 바로 옆에 경찰이 늘 대기 중”이라고 말한다. 10일 정부는 국무회의에서 파출소를 없애고 지구대를 설치하는 ‘경찰법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경찰 차원에서의 지구대 설치는 작년 10월부터 이미 시행돼 오고 있으나 법적인 뒷받침이 없던 것을 이번에 보완한 것이다.
서울 관악구에 사는 A 씨는 자정 넘어 동네 주민과 싸움을 벌이다가 파출소를 찾았다. 하지만 파출소 간판이 ‘치안센터’로 변해 있고 더욱이 문까지 닫혀 있었다. A 씨는 “무슨 파출소가 이 모양이냐” 고 투덜거리다 훨씬 먼 곳에 떨어진 ‘지구대’로 가 시시비비를 가렸다. 예전엔 관악구(관악경찰서 관할)엔 16개 파출소가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5개 지구대(관악산․신림․봉천․낙성대․당곡)와 11개 치안센터로 변했다. 지구대는 파출소처럼 24시간 돌아가지만 치안센터는 오전 9시~오후 11시(농촌은 오전 9시~오후 7시)에만 운영된다.
역할도 다르다. 파출소는 싸움을 말리러도 가고(단속․범죄 진압), 길 모르는 사람을 안내도 해주고(대민봉사) 했지만 이제 지구대는 단속․범죄 진압, 치안센터는 대민 봉사에 전념한다. A 씨처럼 싸움이 벌어졌을 경우, 치안센터로 가봐야 다시 순찰차를 타고 지구대로 가야 한다는 뜻이다. 고소․고발장 접수, 도난 신고, 미아 신고 같은 일도 치안센터가 맡는다.
파출소를 이렇게 바꾼 이유는 파출소를 그저 지키고 있는 일에 경찰 인력을 낭비해 왔기 때문. 경찰은 “파출소 지키는 인력 때문에 휴가자 또는 경조사로 인한 결근자라도 있을 경우 위급한 사안이 생겨도 출동 인력이 턱없이 부족했다” 고 밝혔다. 지구대에는 40명 내외의 경찰을 집중시켜 늘 순찰을 돌게 하고, 치안센터에는 1~2명(민원담당관)만 근무시킨 뒤 밤에 문을 닫으면 인력을 훨씬 효율적으로 운영할 수 있다는 얘기다.
하지만 홍보가 덜 된 상태다. 서울 신림9동 파출소(치안센터) 앞에서 28년간 장사한 최동화(여․59)씨는 “지구대로 바뀌었는지 잘 몰랐다. 그런 게 있었나?” 고 반문했다. 반면 이를 알고 있는 인근 상인 조연식(48․신림9동)씨는 “신고한 뒤 불과 몇 분 안 됐는데 여러 대의 순찰차가 달려왔다” 며 “치안센터는 위압감이 사라지고 주민들의 사랑방이 된 느낌”이라고 좋은 평가를 내렸다. 경찰들의 반응도 조금씩 다르다. 남부경찰서 관할 난곡지구대 홍진국 지구대장은 “현장에 가는 속도가 빠르고 가용 순찰차도 3~4대가 되기 때문에 초기 대응 능력이 많이 향상됐다”며 “가용 인원이 많아 범인의 예상 도주로를 신속히 차단할 수 있어 검거 능력도 향상된 것을 체감한다” 고 말했다.
그러나 익명을 요구한 치안센터 경찰관은 “파출소 4개가 통합된 지구대라면 인원이 100명 가까이 있어야 하는데 개편이 되면서 인력을 확 줄인 것 같다” 며 “근처에서 사건이 터지면 지구대는 멀고, 치안센터에는 한 명밖에 없고, 답답하고 어렵다” 고 말했다. 경찰은 지난 91년과 99년 각각 광역파출소 제도와 기동순찰제로 파출소를 개편하려고 했지만 지역 치안이 불안해졌다는 여론 때문에 중단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