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분증
英 전자신분증 도입
동아일보 2004. 04. 27.
“테러 예방” vs “인권 침해”
영국이 ‘전자 신분증’ 도입 문제로 들썩거리고 있다.
영국 정부는 이번 주부터 지원자만을 대상으로 전자 신분증 발급을 시작할 계획이다.
영국에서 여권이나 운전면허증이 아닌 주민증 형식의 신분증이 도입되는 것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처음. 특히 이번에 도입되는 신분증은 생체 정보까지 수록한 이른바 ‘전자 신분증’ 이어서 인종차별과 사생활 침해를 우려하는 시민단체의 반대가 만만치 않다.
▽영국 정부 “테러 방지 위해 필요” = 데이비드 블렁킷 영국 내무장관은 25일 BBC 방송에 출연해 “신분증 발행을 위한 법안을 이번 주 의회에 상정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영국 정부는 이번 주부터 1만 명의 지원자를 대상으로 신분증을 시험 발행키로 했다. 전자 신분증에는 홍채, 지문, 얼굴 모습 등의 생체정보가 집적회로(IC) 칩에 저장된다.
영국 정부는 2008년까지 총 31억 파운드(약 6조 3400억 원)를 들여 성인 80% 이상이 이 신분증을 소지하도록 할 계획이다. 신분증 발행은 미국의 요구로 발급할 예정인 ‘생체 정보 수록 여권’ 과는 별도로 추진된다.
영국 정부는 9․11 테러 이듬해인 2002년 7월부터 신분증 발행 계획을 추진해 왔다. 생체 정보를 수록한 전자 신분증으로 테러리스트들의 신분 위장을 막고, 테러를 방지할 수 있다는 명분이었다.
▽시민단체 “사생활 침해” =그러나 생체정보가 입력된 신분증에 대한 반대의 목소리도 만만치 않다.
시민 인권단체인 ‘리버티’는 “피부색 등 신체정보를 공공연하게 구분 지어 수록한다는 것 자체가 인종차별을 악화시키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시민단체들은 또 “모든 개인정보를 한 장의 카드에 수록하는 것은 사생활 침해 문제를 야기할 수 있다”라고 보고 있다. 일각에서는 개인정보를 정부기관이 남용할 가능성도 있다고 지적한다.
테러 방지의 실효성에도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외국인의 경우 영국에 3개월 이상 머물 경우에만 전자 신분증을 발급받도록 돼 있는데, 테러리스트라면 이 규정을 교묘히 피해 신분증 발급대상에서 빠질 수도 있다는 것이다. 발급비용 일부를 국민이 부담하는 것도 문제. 신분증을 발급받기 위해 영국 국민은 35파운드(약 7만 1000원)를 내야 한다. 영국에서는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안보상의 이유로 국민 신분증 제도를 시행한 적이 있으나 1952년 이 제도를 폐지했으며, 이후 주민증 형식의 공식 신분증은 발급하지 않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