肝 이식
며느리가 시어머니에 肝 절반이상 이식
한국일보 2004. 03. 20.
“생모 같은 시어머니께 당연한 도리” / “어머님, 많이 힘드셨죠. 얼굴이 좋아져서 다행이에요.”
“얘야 정말 고맙다… 사랑한다.”
19일 낮 서울 강남구 일원동 삼성서울병원 3층 외과 중환자실. 간경화 말기 환자인 이성숙(52, 여)씨는 휠체어를 타고 병실을 방문한 며느리 이효진(29, 경기 시흥시 매화동)씨의 두 손을 꼭 잡은 채 말을 잇지 못했다. 10시간가량 진행된 간 이식수술을 무사히 마친 시어머니 이 씨는 며느리의 목에 꽂혀 있는 주삿바늘이 안쓰러운 듯 연신 굵은 눈물을 흘렸다. 결혼 2년 차 주부인 이 씨가 시어머니와 함께 수술대에 오른 것은 지난 16일 오전 7시. 야채 도매업을 하는 남편과 결혼한 직후 학습지 방문교사로 맞벌이 생활을 하며 시부모를 모셔온 이 씨는 4년째 간경화 증세로 투병하고 있던 시어머니의 고통에 항상 마음이 아팠다.
지난해 12월에는 증세가 급격 히 악화해 이식수술 외에는 치료법이 없다는 판정이 나왔지만 이 씨의 시댁 식구 대부분 간염 보균자여서 간 이식이 불가능했다. 이 씨는 ‘혹시나’ 하는 마음에 남편을 설득해 지난달 30일 간 기증을 위한 조직검사를 받았고, 병원 측으로부터 기증 적합 판정을 받았다. 이 씨의 기증 의사를 알게 된 친정 부모님은 물론이고 시어머니조차 “절대 그럴 수 없다” 고 반대했지만 이 씨의 효심을 꺾기엔 역부족이었다. 결국 이 씨는 수술대에 누웠고, 의료진은 이 씨의 간 60%를 잘라내 시어머니에게 성공적으로 이식했다.
여느 고부(姑婦) 사이처럼 이 씨의 시집살이 역시 쉬운 것만은 아니었다. 직장 일 때문에 때때로 “집안일에 소홀하다” 고 꾸중을 들을 때면 서운한 적도 많았다. 이 씨는 그러나 “시어머니는 저를 친딸 이상으로 아껴주셨고 늘 정성스레 뒷바라지를 해주셨다” 며 “며느리로서 당연한 일을 했을 뿐”이라고 겸손해했다. 수술 전 이 씨는 이식대상자 선정 사유서의 공란에 ‘그분을 사랑합니다’라고 적었다. 시어머니 이 씨는 “둘째“ 며느리에게 몹쓸 짓을 한 것 같다” 며 “퇴원한 뒤에 며느리가 좋아하는 음식을 많이 해주고 싶다” 고 눈시울을 붉혔다.
간 기증을 걱정했던 이 씨의 남편과 친부모도 이 씨의 아름다운 효심에 감동했다. 남편 구본식(30)씨는 “넉넉하진 않지만 퇴원하면 함께 국내 여행이라도 다녀오고 싶다” 며 이 씨의 손을 꼭 잡았다. 친어머니 오영자(52)씨는 “속이 많이 상했지만 딸이 생명을 구하는 일을 몸소 실천해 대견스럽기만 하다” 며 활짝 웃었다. 수술을 집도한 삼성서울병원 이식외과 조재원(47) 교수는 “이 씨의 희생이 고부간의 인식을 바꾸는 계기가 됐으면 좋겠다” 고 말했다. 이 씨는 “시어머니가 오래오래 사셨으면 좋겠다” 며 “빨리 건강을 회복해 1년 뒤에는 첫 아이를 갖고 싶다” 며 얼굴을 붉혔다.